국악개론 '사직제례악' 감상 보고서
‘어째서 청각은 지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를 위한 문구실을 하는가? 어째서 청각적 세계는 그 시초에서부터 다른 세계로 연결된 특권적 관문에서 이루어지는가? 존재는 공간보다 시간에 더욱 얽매여 있는가?’
- 파스칼 키냐르, 『음악 혐오』 p. 120 -
신과 연결되고 싶은 열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제단을 세우고 제물을 바친다. 기도하고 복을 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상할 수 없음에 대한 체념이 아니다. 땅이 선사한 것들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축복이다. 대지의 은총이 내리길 바란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어머니요, 태초의 신은 가이아다. 그녀는 땅의 여신이다.
사직社稷. 국어사전을 보면 ‘나라와 조정’을 이르는 말이 우선한다. 토지신과 곡신穀神을 뜻했던 두 글자가 ‘나라’와 다름없게 됐다. 땅의 안정이 나라의 안정이다. 그리하여 왕들은 두 신들에게도 제사를 지낸다. 종묘가 국가 이념의 핵심인 예에 가닿는 성소라면, 사직은 현실을 풍요롭게 하는 제단이다.
종묘와 사직은 신의 공간이다. 신을 부르기 위해서는 소리가 필요하다. ‘부르다’ 자체가 소리를 전제한다. 사직 제례에서 불리는 첫 말은 호격呼格이다. “지극하신 곤원이여! 至哉坤元!”
제례 중에 들리는 가사는 32자다. 한 글자에 한 음만이 들린다. 하늘과 땅이 짝이 되듯, 글자와 음이 짝이 되었다.
파스칼 키냐르는 자신의 에세이 제목을 ‘음악 혐오’라 하였지만, 그 기저에는 음악의 마력에 대한 두려움과 불가항력이 담겼다. 세이렌의 노랫소리. 인간은 노래에 매혹된다. 현악기의 전신前身은 활이다. 대상을 쫓고 사로잡는다. 현에서 울리는 소리는 활의 본질을 담고 있다. 귀는 감을 수 없다. 소리를 피할 수 없다.
그리하여 신을 부르기 위해서 음악을 연주한다. 신조차 그저 지나치지 못하게. 서양 음악에서 ‘느리게’를 의미하는 Andante는 ‘걸어가는 듯하게’를 의미한다. 사직 제례 역시 느리다. 타이탄이 걸어가는 듯하다. 장엄하게. 그리고 국왕은 신을 맞이한다. ‘영신迎神’ 한다.
영고靈鼓. 영은 ‘신령 靈’을 의미한다. 신령한 북이다. 팔면八面하며, 8개로 이루어졌다. ‘8’은 세상 만물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다. 『주역』의 64개의 괘는 세상의 운동 원리를 설명한다. 이 64개의 대성괘는 8개의 소성괘로 조합한다. ‘8’은 편만하고 가닿지 않는 것이 없다. 신 역시 그러하다. 부재하듯 어느 곳에서 존재한다.
소리를 통해서 문턱을 넘는다. 신도, 우리도. 사직 제단에서 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신을 부른다. 춤을 춘다. 노래한다. 그리하여 신이 강림한다. 제례악이 들리는 순간, 듣는 이들은 장엄함에 빠져든다. 신의 현존을 느낀다. 그러나 제례가 끝나면 모두 떠난다. 신은 강림지를 어루만지고, 신의 자녀들은 신이 흩뿌린 흔적을 좇는다. 곡식을 수확하여 삶을 이어간다. 산다는 것은 이처럼 신성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YceQecRds0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