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달프와 전도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느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전도서 7:14 -
In the day of prosperity be joyful, and in the day of adversity consider; yea, God hath made the one side by side with the other, to the end that man should not find out anything that shall be after him.
반지의 제왕을 다시 읽고 있다. 명작은 여러 번 읽어도 즐겁다. 처음 읽을 때, 무심코 흘려보냈던 대목들이 다시 읽을 때면 시선을 사로잡곤 한다. 이때야말로 재독의 묘미가 드러난다. 반지의 제왕의 특징 중 하나는 문답의 호흡이 느리다. 느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다. 가령 간달프가 17년 만에 절대 반지의 진위를 파악하고 돌아온 후, 프로도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원서로 20쪽을 차지한다. 그 20쪽 동안에 프로도와 간달프는 절대 반지의 행방, 골룸의 생애, 사우론의 귀환, 그리고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그중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 있어 적고 싶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잠언이 되어 줄 이야기이기도 하다.
프로도: 간달프와 요정들은 골룸의 그런 끔찍한 일들을 보고도 그를 살려 보냈다는 건가요? 골룸은 적과 오크들만큼이나 사악해요. 그는 죽어 마땅하다고요.
Do you mean to say that you, and the Elves, have let him live on after all those horrible deeds? Now at any rate he is as bad as an Orc, and just an enemy. He deserves death.
간달프: 죽어 마땅하다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그러나 살아 마땅한 자들은 죽고, 죽어 마땅한 자들은 살아 숨 쉬고 있네. 프로도 자넨 그들 각자에게 마땅한 것을 줄 수 있겠나? 그렇지 않다면 함부로 죽음을 선고할 수는 없을 거야. 왜냐하면 많은 현자들도 모든 것의 끝을 알 수 없거든.
'Deserves it! I daresay he does. Many that live deserve death. And some that die deserve life. Can you give it to them? Then do not be eager to deal out death in judgement. For even the very wise cannot see all ends.
필요한 만큼만 말을 잘라내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마치 모든 것에 있어서 판단을 유보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간달프는 이어서 말한다. 골룸이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는 것은 빌보의 선한 연민에 기인한다는 것. 빌보가 골룸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빌보는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고 칼을 거둔 채 그에게서 벗어난다. 그리고 간달프는 이어서 말한다. 이 거대한 흐름에서 그가 아직 할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빌보의 연민이 많은 이들의 운명에 관여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직감은 맞았다.
구약의 '전도서'는 히브리어로 'קהלת (qōheleṯ)'라고 한다. 즉 일설에 의하면 전도서는 '현자의 서'로 불린다. 전도서에도 유사한 말이 나온다.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오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장래의 일은 알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들 중 몇몇이 가면을 쓰고 선지자先知者 행세를 하며 타인에게서 폭리를 취한다. 씁쓸하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프로도처럼 판단을 내린다. 그 판단이 빠르다고 해서 모두 틀린 것이 아니다. 통찰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판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합리적으로 여겼던 선택이 미처 헤아리지도 못한 채 타인과 스스로를 옭아맬 때도 있다. 그 곤란함이 극에 달해 몸과 마음이 부서질 것 같다면 간달프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중간계에서 으뜸 가는 현자이니까.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