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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Sep 04. 2020

두려움이 꽃피고 지다

텅 빈 마음

어째서 그 생각을 못했던 걸까?

나는 나의 두려움에 무지 했다.


글은 고의 전환으로 만들어진 마음의 기록이다.  나의 생각들을 뾰족 하게 만들기도 하고,  둥글게 만들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의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내가 얼마나 멋진  존재인지 점점 성숙되어가는
스스로에게 도취되었던가!  마음이 부러질 일이 다시는 없을 줄 알았다.
관계에서도 마음이 얼마나 단단해졌는가를 스스로도 늘 인식할 만큼 명료해져 가는 마음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은  내안의 문제였던 건강염려증인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 무너졌다.

 한순간에   마음이 무너지고
고통의 늪에 빠졌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두려움을 치유했던 방법은  바른길로 가고 있었지만  나의 방식이 아닌
타인들이 지금껏 다루어 왔던 방식에 의존했던 것 같다.
받아들이고 잊어버리고 알아차리고 그렇게 함께 친구처럼 사이좋게 같이 가지고
다독거리면서 지내왔었다. 하지만 나의 친구는 나보다 강했다. 자신의 권력을 늘 나에게 증명해 보였다.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이 아니던가!
그러면 나의 인식의 전환으로 다르게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그 기분 나쁘고 생각만으로도 몸이 소스라치는 이 감정의 근원을
알아차리고 기다릴게 아니라, 이 감정 자체를.  두려움의 근원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생각을 미처하지 못했다.
왜냐면 두려움이란 으례 이런 형태라는 관념적  생각이 진리처럼 머리에 박여 있었다.
한 번도 두려움의 형태를 스스로 정화시키고 다른 방향으로 환시키는 창조적 시도를 하지 않았다.
두려운 생각이 아름답고 , 가장 선한 순간이고 ,
심지어 숭고하며, 신성이 나에게 손을 잡는다는 이런 생각에 도달하지 못했다.

마치 두려움의 감정은 신성불가침적인 것마냥 두려워야 하는게 마땅하다고 여기는것만 같았다.

 나를 향해 모든 중심으로 마음을  열어두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의 환이 이제서야 만들어진 건 이 또한 고통의 선물인지 모른다.
나의 마음은  무슨 생각이라도 나에게 맞게 창조하고  바꾸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다.
나의 마음의 근원이 공하며 분별없고 고요함 그 자체라는 근본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자기 긍정의 시작은 나의 두려움의 기억을 이제야
세상 사람들의 두려움의 관점이 아니라
나의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바라보며 바꾸기 시작했다.
두려울 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감정을 아름답고 선하며 숭고하고 이타적 인마음이며
신성이 나에게 손을 잡는 순간이라고 인식하자 마음은 조금씩 누그러져 갔다.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트라우마 라면 다른 형태로 변형시켜서라도 온전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이자라는 생각이 만든 확장된 생각이었다.
나의 두려움이 타인을 향한 이타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상 나의 두려움은
정말 고귀한 감정이 확실했다.
이 아름답고 고귀하며 숭고한 마음에 마음이 왜 공포를 느껴야 하는지
반문해 본다.  이  순수한 정에 내가 왜 그렇게  긴 시간  고통받고 있었는지 반문해 본다
이제야 마음이 자유로워 지는 건가!  인식의 전환의 힘은 무섭다.
바로 자신감을 찾은 마음은 자아의 회복에  강한 의지를 불태운다.


이 또한 조용히 지나가리라~~~
역시 고통은 바로 깨달음이 발견되는 장소임이 확실하다.
내 마음이 창조해낸 갖가지 인식은 내 몸을 진정시키고 가볍게 만든다.


과거의 기억들이 만든  두려운 생각이  와도 이제는 반응하지 않는다.
새로운 두려움도 다른 감정들로 바꾸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두려움을 꽃으로 바꾸고
다시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와서는
아무런 분별없이 다시
무심해진다.
하지만 다시  혼란한 마음 틈새로 가서 나의 왜곡된 생각들을 정화시키러 간다.
그리고 다시 무아인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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