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May 04. 2024

열정이 식은 후에 오는 감정들

사랑

일이 바빠서 sns를 할 시간이 없는데도, 언젠가 구독해 놓은 어떤 사람의 글이 알람으로 계속 떴다.

알람설정을 해제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두고, skip 만 계속하다가,  그냥 찬찬히

읽곤 하는데... 호불호가 갈리는 글들을 요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는다.


연세가 있으셔서 가끔은 가르치려 드는 그런 글의 문맥이 폭력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던 과거와 달리

 아무 선입견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읽는다. 짧은 글을 다 읽고 나면, 아주 잠깐 긴 몰입의

순간을 경험한다.  댓글을 달아야 하는 책임도 없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야 하는 일도 없고,

그저 하나의 글만을 읽었는데도, 잠시 평온한 긴 시간을 선물로 받은 듯한 뿌듯함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 많은 감동적인 과 책들의 홍수 속에 많은 글들은  머릿속에 집어 놓고 있고,  반박자 느리게

쉬는 쉼도 없이 사람들의 소통의 설렘과, 열정 속에서 퐁당 빠져들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오늘 아침 그다지  감동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한 사람의  글을 읽고 나서도, 느끼게 되는 이 많은 사유들의

흔적은 반드시 좋은 글이어야 할 필요가 아닌,  하나의 고립된 시간 속에서 만난 글이라는 이유이다.


맛있는 음식을 계속 찾아서 맛집을 탐방하면, 미식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맛없는 음식만 늘어나는

미각의 섬세함을 잃어버리는 모순에 빠지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이다.  같은 된장찌개만 계속 먹으면서

된장과 무, 그리고 양파, 파, 멸치의 우려진 모든 맛의 세계에 끝도 없이 빠지고, 다른 맛을 동경하지 않고,

된장찌개 안에서 계속맛을 탐닉하는 사람 또한 나다.

하나의 세계 속에서 몰입하는 특성을 지닌 사람이 나다.


그런 나에게 이런 고립된 향유의 시간은 하나의 글만으로도 수많은 가치과 철학, 사유를 스스로 생산해 내는

그런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뻑을 하게 된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장르의 글을 매일 알람이 뜨면 읽고, 감동이 아닌 하나의 소중함의 가치를 얻는다.

이 글은 지금의 유일한 시간 속에 들어온 손님인 것이다.  오고 감이 자유로운 손님은 만남을 기약하지 않는다.

다시 오겠다던 약속을 하고 떠난 손님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는 조선시대의 전설의 고향 같은 여인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애석하고 안타까운 이 이야기는 자신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풀어놓지 못하고, 하나의 대상으로만 못 박아 놓고,

가두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히지만  어리석은 이야기처럼 여겨지다가도 아름답게 여겨지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하나의 믿음이 광기나

집착이 아닌 순수한 몰입과 완전히 그 감정을  소유하고, 완성했다는 의미에 있다.  우리는 결국 이런 감정을

하나의 순수한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사람을 소유하면 할수록

반대로 가는 것이 마음이라는 속성이다.  한 사람을 매력에 이끌려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의 감정에 중독되어  

잠시 자신을 잊는 시간은 동시에 많은 자아들이 깨어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자아들의 대환장 파티와도 같다.


사랑의 감정이 짜릿하다고 착각하는 사이 이 자아들이 무의식에서 준비를 한다.

사랑이라는 축제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이제 축제에서 소외 된 비루한 자아들이 자신들이 주인공이 될 시간을 애타게 기다린다.

소유의 사랑이 끝나면, 감정도 끝이 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이제 주인공들이 등장할 차례다.

실연의 아픔은 내면에서 또 다른 축제를 벌인다. 사랑이 지나간 뒤풀이를 이렇게 벌인다.



내 심장을 느리게 뛰게 하는 소중한 것들은 소유하지 않는 그런 즐거움이다.

한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반드시 이 글을 읽어야 할 필요가 없는 자유를 느끼고, 그럼에도, 하나의 글이 가치 있게

느껴지는 건.  그 사람이 글을 쓸 때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글들을 읽을 때는 내 취향의 글을 읽기 위해, 건성건성 읽던 그런 시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의 서사를 상상하고, 그 서사 안에서, 그 느낌을 포착하고, 잠시 그 사람의

시간 속에 몰입되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호감이 가는 대상이 아닌데도 한 사람이란 우주를

느낀다는 건 어쩌면 대단한 일인지 모른다.  내 마음 안에 특정한 사람만이 가득하면 느낄 수 없는 충만함이다.

배타적 독점권에 지배당하면서 한 사람의 마음 안으로만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강렬했던 시간의 아찔함은

내 평온한 시간을 온통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런 강열한 감정의 순간만큼  또 은은하게 내 일상으로 들어오는

많은 것들이 있다.  짜릿했던 감정들은  소외당하면서 뒤에서 대환장 파티를 벌이고 있었던

감정들과의 소통이다.  이 고약한 감정들과 공존하는 감정은 또 그 은은한 시간의 소중함을 함께 소환해 준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그때 느꼈었던 그 강렬했던 감정을 우리는 더 사랑한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아니 사랑을 시작할 때도  내   발목을 잡았던 건 언제나 결핍과 연약함이었다.

결핍과 연약함은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안에는 내 선천적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그 아름다움이 없이는 그 어떤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이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내가 경계하는 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고립시키고,  혼자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시간이 언제나 필요하다.

누군가의 좋은 글을 찾아 헤매지 않고,  감동을 찾지도 않고, 열망하지도 않고,

그저 내 시간 안에 들어온 우연 같은 것을 즐긴다.

기다림으로 애타는 것들은 없다. 아름다움으로 끌어당기는 열망도 없다.

하나의 된장찌개를 씀 씀 하게 먹는 그런 식탁에 앉듯이  정갈한 입맛을 다시면서, 오늘의 밥상 위에 차려진

매일 먹는 맛을 또 음미한다.

오늘 나라는 시간 안에 들일 손님들을 생각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사람에게 열광하는 나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