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지난 10월부터 새로운 회사에 출근을 하고 있다. 역시 무엇이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익숙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익숙한 일을 하는 것보다 바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늘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면 너를 위한 글을 쓸 수 없을 거야.
원래 아빠는 올해 너를 달리기 유모차에 태우고 10km 대회라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돌이 지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달리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어서, 돌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 돌이 지난고 몇 개 대회를 신청해두었고 나가고 싶었는데, 니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는 코감기가 자주 걸려서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아쉽지만 괜찮아. 밥도 잘먹고 잘놀고 잘자면서 튼튼해진 원이랑, 2020년에 달리기 대회에 나가면 되니까! 그리고 올해를 그냥 보내기는 아쉬워서 고민을 하다가 너랑 같이 달리기 대회 응원을 나가기로 했다. 너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우리집에서 마라톤 대회 응원을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아. 잠실종합운동장이 출발지나 골인지인 대회들은 우리집 근처 도로가 곧 대회 코스니까, 대로로 나가기만 해도 달리기 대회 때 달리는 사람들을 보거나 응원할 수 있어.
아빠는 글 제목에 적은대로 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속도, 성별, 달리기 실력은 상관이 없고, 아빠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어. 지금 우리가 보는 앞에서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충분히 박수와 응원을 받을 만하지 않니? 아빠랑 같이 니가 응원을 하러간 첫 달리기 대회는 2019년 11월 3일 열린 JTBC 서울마라톤이란다.
이른 아침, 니가 좋아하는 지게(도이터 컴포트 에어)를 타고, 풀코스 러너들이 지나갈 수서역으로 갔다. 응원하는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 되지만 대회에 참가하는 러너들은 새벽같이 집에서 나와야 한다. 너도 수서역에서 봤겠지만 여러가지 준비를 해서 응원을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동호회나 러닝 크루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나 깃발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지나가면서 먹을 수 있는 음료나 음식을 준비해준 사람들도 많았다. 너는 아빠랑 너의 실물을 무척 궁금해하는 '달리지예' ' 러닝 크루들과 같이 응원을 했단다. 너는 달리기 대회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 들리는 음악에 맞추서 귀엽게 춤을 추기도 했지.
아, 주로에서 응원을 할 때 지켜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어. 아는 러너를 응원하기 위해서 주로 통제선을 넘어서 나와서는 안되. 누군가 매우 힘들게 달리고 있을 때, 툭 튀어나와있는 응원 인파는 생각보다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반가운 마음에 주로에 뛰어들어 함께 달리거나 하는 것도 안돼. 응원도 좋지만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부주의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아빠는 생각해.
이렇게 흥겨운 응원을 받은 주자들이 완주를 마치고 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신다. 힘들게 완주를 한 사람도, 목이 쉬어라 응원을 한 사람도 즐겁게 함께 하는 식사나 술은 평소보다 더 맛있을 거야. 그리고 달리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단다.
잠자는 토끼도 잘못이지만 발소리 죽이고 몰래 지나가는 거북이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토끼를 깨워 함께 가야 합니다. - 신영복 -
주로에서 응원을 하는 것도 좋지만, 아빠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응원은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완주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함께 달려주는 거란다. 달리면서 한 발을 내딪는 것조차 힘이 들때, 누군가 내 옆에서 묵묵히 달리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힘이 된다. 함께 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페이스를 포기하고 달려야 하는데, 정해진 페이스로 달리는 것도 힘들지만, 페이스가 왔다갔다 하면서 달리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지.
아빠는 지난 주 토요일에 긍정하프마라톤 대회에 나갔어. 회사 일로 러너 인터뷰를 하러 간 것인데, 오랫 만에 10km 코스도 달려서 완주를 했다. 오랫 만에 달리는 거라서 후반에 페이스가 느려질 각오를 하고 처음에 좀 무리해서 빨리 달렸다. 예상대로 반환점을 돌기 전에 아빠가 추월했던 러너들이 다시 아빠를 지나쳐 갔다. 문제는 반환점을 돌고 나니까 힘이 들더구나. 페이스는 그런대로 유지를 했는데, 아빠가 듣기에도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달리고 있었지. 그렇게 6km 지점을 달리고 있을 때, 아빠 옆에서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던 분이 아무 말없이 덱스트로 에너지 스포츠 타블렛(Dextro energy sport tablets) 하나를 주셨어. 얼굴도 못보고 말로만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타블렛을 덥석 받아먹고 나니까 신기하게도 힘이 나더구나. 그 분은 타블렛만 전해주시고 아빠보다 빨리 달려서 멀어져 갔다. 코스를 달리면서는 나의 정말 작은 행동 아니 몸짓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응원이 될 수도 있게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진 제공: 굿러너컴퍼니
아빠는 우리 원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즐겁게 달리면 좋겠다.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을 챙겨주면서 부상없이 오래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빠도 너랑 같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달리도록 노력할께. 회사를 다니면서 꾸준히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니가 눈을 뜨기 전에 새벽 달리기를 하는 것 뿐이라서 쉽지는 않다. 그래도 아빠가 새벽에 눈을 떠서 달리도록 노력해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