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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Apr 02. 2021

'임신'아는 '척'해서 죄송합니다

내 생에 첫 임신 경험기

나름 배움에 관대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배우는 것에 굉장히 호의를 갖고 많이 참여한다. 

이러한 스스로의 관성 때문에 '임신'에 대해서도 많이 안다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모두가 걱정하는 노산의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주변에 친구들을 비롯해서 지겨우리만큼 임신과 출산을 하는 사람들을 경험했으니 나름 배경지식이 있다고 자부했던 것 같다. 

'나는 무수히 많은 케이스를 들었노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이런저런 개인적인 계획들을 세우며 임신 전에 기존의 생활처럼 바쁘게 살기를 계획했었다. 대학원 논문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했고 다니던 직장을 그래도 유지하며, 결혼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서툰 집안일도 훌륭히 해낼 수 있다고 그렇게 말이다. 

임신을 하고 생활을 재정비하게 됐다.

그런데 임신 2개월 차에 접어드니 입덧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거의 아파보지 않았던 나는 기약 없는 불쾌함과  헛구역질, 힘없음에 하루하루 지쳐갔다. 

토를 하는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으나(심한 사람은 하루에 몇 번씩 토도 하고 몸무게도 7~8킬로그램 정도 빠지고 링거를 맞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입덧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 전 단계까지는 간 것 같았다. 


일단 식욕이 싹 없어져서 하루 종일 배가 고프지 않았다. 먹을 것을 보면 저것은 음식이요, 나는 그냥 목석이요. 하면서 자아 분열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먹고 싶지 않은데 아이 때문에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일은 정말 곤욕스러웠다. 하루 종일 굶고 싶은데, 그러한 본능을 저 멀리 내팽개치고 '먹어야 아이가 산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그 순간순간들....


그리고 왜 밥때는 이렇게 자주 오는 것인가?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세 끼의 식사를 허락하셨나.

게다가 억지로 먹고 나면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앉으나 서나 힘들었다. 마치 파도가 엄청 세서 마구 잡이로 흔들리는 배 위에서 이리 데굴, 저리 데굴하는 탑승자의 심정과 같았다.  


하루 종일 불쾌감을 참다가 저녁에 8시나 9시면 지쳐서 잠이 들었다. 임신 초기 3개월 동안 내 평생에 잘 수 있는 잠을 다 잔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애초에 계획했던 나의 원대한 계획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계획대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시키기보다는 일에 질질 끌려다니며 해내기에 바빴고 창의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임신 후에 모든 일을 잘해야겠다는 강박을 버리기로 했다.(출처 : pexels)

그래서 결국, 나는 모든 일을 잘하려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기로 했다. 내 삶에서 많은 일들을 잘하지 말고 그냥 하는 데에 의의를 갖기로 결정한 것이다. 뼛속까지 한국인이라 나 또한 많은 일들을 '잘해야지'하는 욕심을 늘 부리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창조의 섭리는 위대하여 나의 이러한 계획과 생각을 점점 무용지물로 만들고 내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였다. 내 몸은 점점 아이에게 맞추어 바뀌어 갔다. 처음에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아이는 점점 자라며 자신의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태반을 만들고, 동그란 모양에서 점점 사람 모양이 되어갔다. 이렇게 아이는 동그라미에서 점점 사람 형태를 갖추어 가느라 바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논문이나 일, 그리고 집안일은 부수적인 일일 뿐이었다. 


이러한 아이의 고군분투에 발맞추어 엄마인 나 또한 우선순위가 재정비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살포시 내 삶의 중요함을 내려놓고 아이의 고군분투의 과정에 함께 발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아이를 임신한 엄마의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임신은 단지 힘들고 어려운 일, 입덧을 하고 아이가 점점 자라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고 내가 이제까지 편하게 누리던 본능을 거스르며, 내가 아닌 아이에게 필요한 일을 행해야 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세계를 모르고 임신의 겉모양만 알고 있던 나는 단지 아이가 내 뱃속에 있다는 것만으로 내 삶을 내가 아직은 통제할 수 있다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임신을 겪으면서 한 아이의 창조 과정을 내 통제 하에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마치 이를 다 아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섣부른 조언을 한 것도 부끄러웠다. 정말 이는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남들보다 배움에 더 관대하다고 임신도 다 안다는 어리 석음을 범하다니,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다. 


임신 하나도 몰랐으면서 아는 척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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