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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아내를 탐했다.

프롤로그

by 봄해
쿵!


늦은 밤, 무언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이들은 자면서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자고 있는 아이를 안아 화장실로 향했고, 아이들을 하나씩, 차례로 소변을 보게 하고 다시 잠자리에 눕혔다. 뒤척이는 아이들 뺨을 어루만지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아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 방에는 막내에게 젖을 물린 채 아내가 잠들어 있었다. 하루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난 모습이었다. 나는 아이를 가만히 아내 품에서 떼어내고, 자세를 바로잡아 눕혔다. 그리고는 아내의 발끝 쪽으로 돌아서 그 발을 조심스레 주물렀다. 말 한마디 없이도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손끝에 마음을 실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창밖엔 어둠이 깊어가고, 집 안은 고요했다.





이른 아침, 식탁 의자에 아내가 앉아 있었다. 단발로 짧게 자른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몇 년째 화장기 없는 얼굴엔 기미가 조금씩 보였다. 늘어진 티셔츠, 흐릿한 눈빛, 피곤에 절어 무표정한 얼굴. 화려함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버텨내는 삶의 흔적들이었다. 매일같이 아이들 뒤를 쫓아다니며 충혈된 눈으로 터질 듯한 하루를 아무 말 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때, 방 안에서 막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는 말없이 몸을 일으켜 방으로 향했다. 아이의 울음을 들은 그 순간, 아내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슴은 흘러나온 젖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티셔츠에는 젖은 얼룩이 번졌다. 그 모습은 남루했고, 고단했다. 아내는 익숙한 손길로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렸다. 아이의 입은 바쁘게 움직였고, 작은 몸은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렇게 한쪽 젖을 다 내어주자, 아내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반대쪽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쪽은 함몰된 유두 때문인지, 아이의 입이 자꾸 미끄러졌다. 젖을 물기 어렵고 당황스러웠는지, 아이는 잠시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다시 애써 입을 맞췄다. 두 눈은 젖을 찾으며 위로 향했고, 눈을 껌뻑이며 집중하는 그 표정이 작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진지했다. 아내는 자세를 다시 고쳐 앉았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물 수 있도록 팔에 힘을 주었다. 그 사이 아내의 목덜미엔 땀이 맺혔고, 허리와 어깨는 점점 더 굳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아내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아이만을 바라보며, 그 작고 끈질긴 입술이 결국 제대로 젖을 물 때까지, 아내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 순간의 아내는 말없이 단단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을 돌보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 번째 모유 수유에 부대끼며 몸은 지쳐 있었지만, 아내의 얼굴에는 묘한 평온과 기쁨이 스며 있었다. 말라가고 닳아 있는 듯한 몸 너머로, 내가 닿을 수 없는 강인함과 따스함이 아내 안에 깃들어 있었다. 아내는 힘들어하면서도 모유 수유를 좋아했다. 아이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그 순간들을 뿌듯해했고, 하루하루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건네며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네 남매의 육아는 만만치 않았다. 때로는 지쳐 보였고, 숨이 가빠 보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아내를 탐했다.

이상하게도, 그 모든 모습이 왠지 모르게 뭉클하고, 아름다웠다. 젖은 옷자락도, 땀이 흐르는 목덜미도, 고단함이 스민 마른 어깨와 지친 표정마저도 아름다웠다. 육아에 깎여나간 듯한 몸짓 하나하나 낯설 만큼 애틋하게 다가왔다. 아내는 거칠어진 일상 속에 있었지만, 그 거침 속에서 나는 여전히, 아니 어쩌면 더 깊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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