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항상 가까운 곳에..)
"아, 누가 또 휴지 넣었어?"
무슨 팝콘 터지는 것도 아니고.
빨래를 하나하나씩 털 때마다 하얀 휴지가 부슬부슬 벚꽃비처럼 내린다.
'헉. 또.. 나인가..'
휴지통이 없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서 나는 '왼손, 오른손, 왼손, 오른손'을 되뇌며 휴지통으로 향한다. 나의 왼손에는 하수구에서 건져 올린 머리카락들과 이를 감싼 휴지가, 오른손에는 세탁기에 넣을 빨랫감이 들렸다. 두 손을 절대 합체해서는 안 된다. 이번마저 합체하면... 나는 세탁기가 고장 나기도 전에 내 일상부터 고장 나 버릴 수도 있다. (가족들 손에...)
나에게는 잊지 못할 개떡 사건이 있다. (일전에도 다른 연재에서 언급한 바가 있어 잠시 빌려 적자면..)
"아니 버스카드, 누가 또 쓰고 안 가져다 놨어?!"
잔뜩 골이 나고 화가 난 표정으로 로 팀장이 주위를 훑는다. 하필이면 업무용 버스카드를 최근에 사용한 사람이 '나'다.
"아니, 카라. 버스카드 안 갖다 놨어? 어디 있어, 응!!?"
(카라는 그 직장에서의 내 이름이었다. 입소자 인권 보호 차원이었는데 직원들도 필명을 썼다.)
"네에???"
헉. 분명히 거기 넣어 놓은 것 같은데.. 내가 깜빡했나. 이번엔 그래도 분명 넣은 것 같은데.. 아... 아닌가??
"아니 썼으면 제자리에 갖다 놔야지, 뭐 하는 거야, 어?"
내가 나를 확신하지 않으니 타인도 나를 불신해 버린다.
"아니 쓰고 제대로 좀 갖다 놓으라니까!"
팀장의 외침이 나에게 날카롭게 꽂힌다. 이리저리 뒤적여 봐도 버스카드는 안 나온다. 휴.. 대체 어디에 둔 걸까.
"어머, 로 팀장. 그거 내가 잠깐 썼었어. 갖다 놓는 걸 깜빡했네."
갑자기 자기 고백을 시작하는 다른 방의 민 팀장이다. 순간 안도해 보지만 물음표가 떠오른다. 왜 로 팀장은 다짜고짜 나부터 의심했을까, 왜 아까 나는 자신 있게 "저는 거기 분명히 갖다 뒀는데요!" 왜 말을 못 하냐고... 저 카드는 네가 안 가져갔다고 왜 말을 못 해...
그 뒤로 로 팀장은 내게 사과를 했을까?
아니, 아니다. 민 팀장의 말을 듣고 머쓱했을 법도 한데 우리 방으로 들어오며 이리 말했다.
"아휴. 개떡 같아!"
그렇게 나의 어설픈 덤벙이.. 결국 개떡이 되고 말았다는..
덤벙계의 슬픈 전설이다.
하긴. 억울해할 수도 없었다. 나조차 나를 못 믿으니 주변 사람들도 나를 못 믿는다.
이건 반신반의도 아니다.
50%도 못 채우는 믿음이다. (꽤 절대적인 믿음이랄까?)
아, 참.
세탁기 휴지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범인은??
역시 범인은 모두의 짐작대로...
나..였다. 하지만 달라진 점도 있다!
너무 많은 휴지로 가족들의 빨래를 크게 망친 후... 나는 절대로 주머니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손수건'만 넣는다. 손수건은 그대로 빨려도 되니까. 그래서 매번 손수건이 바지 주머니 속에서 옹색하게 구겨진 채로 세탁된다.) 심지어 때론 주머니 없는 옷을 선호하기도 한다. 넣으려야 넣을 수도 없을 테니까!
덤벙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차선책이라도 세워야 한다.
적어도 나의 덤벙은 '나 자신'에게만 피해를 주어야 한다.
그나저나..
언제쯤에야 나의 덤벙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