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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13. 2019

댓글 안 달 거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아버지 시간

-아버지, 전쟁 안 나요.

무 자르듯 아버지 말을 자른다. 내 안에서 만든 말이 건조한 공기를 타고 아버지에게로 무심히 가 닿는다. 내가 이 말을 꺼낸 건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디오 작은 건 얼마나 하나?

 남북이 화해 무드가 아닐 때면 아버지께서는 소형 라디오의 가격을 내게 물으신다.

-왜요? 라디오 하나 사시게요?

-아니, 전쟁이라도 나면 TV도 안 될 테고 전기나 인터넷도 다 끊길지 모르는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라디오로라도 들어야 하잖아.



아버지가 말하는 그 전쟁, 안 일어나요. 나는 이렇게 말대꾸하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TV에 나오는 북한의 동향에 종종 귀를 기울인다. 반면 나는 전쟁에 무감한 세대다. 총 쏘는 일은 영화, 혹은 게임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로 안다. 나 같은 세대는 아버지가 내세운 ‘라디오 구입 명분’이 왠지 탐탁지 않다. 아버지, 나도 마흔 해나 살아봤는데요, 전쟁이란 거, 웬만해서는 쉽게 안 일어나던데요?     





칠월 땡볕에     



칠월 땡볕에,

길에서

허리가 두 동강 난 지렁이를 본 적 있는가.

그 뒤틀리며 몸부림치는

지렁이의 몸짓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2005. 4. 8.     



아버지는 두 동강 난 지렁이를 보며 두 동강 난 나라를 생각하셨던 걸까. 나는 시국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인데 우리 아버지는 나랏일에 촉각을 기울이신다. 나라가 몸부림치며 뒤틀릴 때마다 나라 사정을 당신의 사정이나 되는 양 걱정하신다. 나는 그게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설마 전쟁이란 것이 실제로 일어나겠느냐고 느긋한 마음만 먹는다.

  


"너희들 전쟁이 얼마나 비극인 줄 아냐?"     



삶에는 이런저런 비극과 희극이 교차한다. 아버지에게 제일 큰 비극은 전쟁이다. 아버지의 그런 기준에서라면 나는 희극 쪽에서만 살아온 셈이다. 아버지에 비해 짧은 생을 산 나는, ‘전쟁’이 일상이 되는 일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아버지는 아주 어릴 적 전쟁을 겪으셨지만, 남도 끝에 붙은 섬에서 자라셨기에 직접적인 전쟁의 피해는 안 겪으셨다. 그런데도 유년에 다녀간 전쟁의 위용은 조금쯤 막연한 공포였나 보다. 아버지의 형들은 군대에 가야 했고 그 당시 군대는 ‘가면 돌아올 수 없는 무서운 곳’이라는 소문이 흉흉했다. 설령 돌아온다 해도 성한 몸을 보장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육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소식은 발 없이 달리는 말처럼 섬 전체를 공포로 물들였을지 모른다. 당시 조금쯤 붉은색이었을 그 공포, 어쩌면 아버지는 그 비극의 색깔에 맞서기 위해 라디오가 내어 주는 안전한 소리가 필요하셨나 보다.

출처: pixabay



띠딕.

아버지의 전쟁 비극론을 건성으로 듣고 있는데 내 휴대폰에서 알림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는 휴대폰에 깔아 둔 앱에서 나오는 소리들이다.     


'님의 글을 읽으니 정말 공감이 가네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귀로는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두 눈으로는 온통 이름도 모를 사람들의 댓글에 배시시 웃는다. 재작년, 십오 년 만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고작 6명의 이웃으로 이십 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한 명 두 명 이웃이 늘어났다. 이것이 바야흐로 ‘사회적 소통’이라는 걸까. 내가 먼저 가서 ‘서로이웃’을 신청하기도 하고,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이야기, 혹은 다른 이야기로 소통하는 것도 꽤 재밌었다. 특히 같은 내용의 책 쓰기 수업을 들었을 전국의 블로그 이웃들과 하나둘 이웃을 맺어갈 때면 ‘글쓰기’로 같이 공감하고 더불어 소통하는 일이 그렇게 신이 날 수 없었다. 한창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의 느낌까지 들었다. 도토리를 선물하듯 블로그 이웃들에게 공감과 댓글을 정성껏 선물했다.


출처: pixabay



지금은 블로그를 넘어 브런치라는 앱에 중독된 상태다. 운 좋게 아버지 글을 팔아(?) 조회수를 높이 올린 후로 내 손가락은 '브런치 나우'의 '브런치 인기글'에 아예 살다시피 한다. (내 글이 당연히 없는데도 괜히 그곳을 살핀다.) 내 브런치로 놀러 와 공감 버튼을 꾹 눌러 주면 그게 심히 감사해서 나도 재빨리 그네들의 브런치로 답방을 가서 공감 버튼을 마구 누른다. 누군가 내 브런치를 구독이라도 해 주는 날에는 그분이 아직 작가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감사의 마음으로 구독하기를 누르곤 한다. (언젠가 그분이 첫 글을 발행할 때 내가 첫 하트를 눌러 드려야지, 마음먹는다.)



이렇게 ‘좋아요’라는 표시의 하트를 마구 남발하는 것이 내가 브런치나 블로그의 이웃들에게 전할 수 있는 정성이라 믿었다. 반대로 아무도 내 글에 하트를 안 달아 주면 괜히 내 글이 머쓱해지는 느낌이 들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서서히 브런치계의 관종(관심종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출처: pixabay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그날도 나는 한창 타인의 브런치 및 블로그가서 공감 누르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내 쪽으로 슬며시 걸어오신다. 응? 아버지, 나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작은 라디오 가격 혹시 알아봤냐?


‘아, 맞다, 맞다, 아버지 라디오!’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동안 내 블로그는 이웃이 쑥쑥 늘어났고, 브런치 구독자도 5명쯤 늘었다.


-아직 못 알아봤어요.

 ‘못’이 아니라 ‘안’ 알아본 거 아니냐고 스스로를 잠시 꾸짖는다.

-지금 주문할게요.

-아니다. 그냥 둬라.



아버지가 한 발짝 물러나신다. 말씀을 꺼낸 지가 언젠데 알아보지도 않았다. 라디오라는 단어를 삶에서 아예 지운 게으른 큰딸. 이런 수준의 관심과 열의라면 일을 더 맡겨 봐도 소용이 없다고 느끼셨을까. 아버지는 라디오 구입 건에 대해 더는 압력을 넣지 않으신다.


-그냥 둬. 안 사도 돼.


이번에는 한 발짝 물러서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이 바닥에서 발을 빼려고 하신다. 이럴 땐 딸인 내가 바싹 두 걸음 더 다가서야 한다. 얼른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쇼핑몰로 재빠르게 들어가 광적으로 ‘클릭질’을 시작한다.



-오, 가격대가 괜찮네요. 비쌀 줄 알았더니.

-그래?

 아버지가 미끼를 무신다. 내 목소리에 관심의 레이더를 켜신다.


-이어폰도 하나 할까요?

-뭔 이어폰까지.

-아, 맞다. 나, 이어폰 새 거 하나 있었다! 휴대폰 샀을 때 상자 속에 들어있던 걸 요 며칠 전에야 발견했거든요!

-그래? 그럼 하나 줘 봐라.



-아버지 여기요.

 아버지는 새 이어폰을 꽂아 음악을 들어 보시더니 음질이 상당히 좋다고 만족하신다.

-아부지, 이 디자인은 어떠세요?

 나는 노트북을 아버지 눈 쪽으로 돌린다. 여러 개의 소형 라디오가 아버지 눈 안에 들어간다.

-뭐 아무거나 해.

-아무거요? 내가 이렇게 되묻는 순간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그 세 번째 것이 제일 낫긴 하네. 그걸로 해라.


출처: pixabay


넵, 아버지! 나는 경쾌하게 외친다. 아버지도 사실 취향이 있으셨던 거다. 나는 아버지는 늘 '아무거나'를 선호하는 줄로만 알고 아버지 품에 '아무거나' 안겨 드렸다. 이번 라디오는 아버지께 '아무것'이 아니길 빈다.






자자, 그건 그거고, 그나저나, 내가 라디오 사느라 잠시 들어간 내 sns 공간들.. 거기서 공감이나 댓글, 알림 메시지 좀 확인해 볼까?


출처: pixabay


오늘따라(아니 오늘뿐 아니고 거의 매일같이) 내 브런치 앱은 아무런 알림 메시지도 없다. 여러 작가님들이 브런치북을 발행했다는 소식들만 줄을 잇는다. 사실 내가 올린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사가 아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바쁜 삶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느라 바쁘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이나 구독자를 챙길 틈이 없으리라.




그때 아버지가 따끈한 보리차를 데워 내 앞에 갖다 놓으신다.

-뜨거운 물 마셔라.

-네. 감사합니다.

-훈 작가, 잘 돼 가냐, 글 쓰는 거?

-잘 됐다가 안 됐다가 막 그래요.     



아버지가 슬쩍 내 노트북을 쳐다보신다. 나는 댓글을 쓰고 있는 건데 아버지는 내가 글을 쓰는 줄 아신다. 글도 안 쓰고 딴짓을 했으면서 글을 쓰는 척을 한다. 아버지에 이어 엄마까지 내 목소리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어리고? 핫한 인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은 지금 평균 연령 예순둘의 세 식구니까.) 그러다 나는 슬슬 이 얘기 저 얘기를 시작하고 미주알고주알 내 일상을 풀어놓는다. 어느새 부모님이 내 앞으로 바싹 모여든다. 세상 제일 굳세고 열렬한 내 관객들이 내 이야기를 내 면전에서 깊이깊이 청취한다. 나는 그분들의 얼굴에서 진한 색깔의 하트 공감을 받고, 진심이 담긴 댓글도 느낀다.      



문득 내가 놓쳤던 것들을 생각해 본다. 타인의 글을 훑다가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님의 삶은 읽어 내리지를 못한다. 내 삶이 바쁘다고, 내 일상이 녹록지 않다고 어리광을 부리며 부모님의 라디오를 잊고 부모님의 목소리를 자꾸 제쳐 둔다. 항상 그 자리에서 있었던 목소리였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잊는다.     


오늘도 부모 사랑에 대해서만 유독 기억 상실증을 앓는 나. 가끔은 엄마, 아버지에게 짜증도 부리려는 나.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실 때 느긋하게 잔반이나 먹고 있는 나. 평생 남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남의 글에만 댓글을 달아 온 나.

이제 아버지, 어머니의 삶에 댓글을 달고 공감을 눌러야 할 때이다.
내게는 내 옆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의 삶 자체가 소중한 글이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이 딸내미가 아버지 삶에 ♡ 백만 개 눌러 드릴게요.
♡♡♡♡♡♡♡♡♡♡♡♡♡♡♡♡♡♡♡♡♡   

 오늘은 글에 하트가 금세 달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엄마, 아빠 포함 최소 하트 두 개 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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