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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Oct 03. 2024

브런치 주소를 묻지 마세요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작가 되기'를 신청해야 하고 그 신청에 탈락할 수도 있다는 설정은 나의 도파민(?)과 염려증을 동시에 자극했다. 이런저런 감언이설로 브런치 플랫폼에게서 작가 승인을 얻어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우쭐한 마음을 지니기도 하였다. (임용고사에 일곱 번 떨어진 사람이니 이런 '합격'이 얼마나 달콤했었겠는가.)


그러나 그 당시의 나, 좀 더 자중했어야 한다. 어쩐지 자꾸만 '신이 나서' 주변에, 아니 사방팔방에 브런치에도 글을 쓰고 있다고 알리고 다녔다. 급기야 내가 쓴 글을 남들에게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공유한 글은 다음과 같다.


https://brunch.co.kr/@springpage/22


뭐 자랑할 것이 있다고 공유까지 했냐 싶은데, 당시 브런치는 연재나 응원 시스템이 없었다. 다만 '알림'을 통해 '조회 수가 1000회를 넘었습니다(?)'와 같은 아름다운 경고(?)를 보내 주곤 하였다. 물론 조회 수가 10회 넘기기도 힘든 글을 몇 달이고 써 대던 나였다. 그러다 그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1만 회가 넘었습니다! 라는 소식을 전달받았고 '브런치 나우'에 계속해서 내 글이 얼마간 올라가 있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는 고만 그것에 고무되어 버렸다.



<어이, 동생. 심심할 때마다 이 글에 들어가서 조회 수 좀 높여 봐. 어디까지 가나 보게.>



나는 급기야 조회 수 조작을 (소소하게) 가족들에게 시도하기 시작했다. 나의 타깃은 동생과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제부 씨였다. 제부 씨와 부모님은 얼떨결에 브런치를 깔았고 브런치 작가가 될 생각도 없는 네 사람은 내 덕분(?) 혹은 내 푸시push 탓에 브런치 앱을 깔고 브런치에 자기소개까지 쓰고야 말았다.



결과는?



물론 내 글은 1만 회에서 더는 움직이지는 않았고 나의 도전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그 뒤로도 몇 번 정도 '2000회, 5000회를 넘었습니다!'에 속아(?) 가족들에게 두세 번 자랑스레(?) 내 글을 공유했고, 나의 네 분에게 열혈 독자가 되어 줄 것을 강요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1년간 브런치 휴지기 후.. 냉담을 끝내고 브런치에 돌아와서 이제는 '나만 아는' 이야기로 신나게 글을 써댈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나의 브런치 독자 가운데 하필 그들 '네 분'이 아직도 버젓이 나의 독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분들이 너무나 쉽게 내 글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어쩌지. 어쩌지. 아 그때 괜히 내 브런치 글 공유했어ㅠ 괜히 구독까지 하라 그랬어. 아, 내 브런치 주소를 알리지 말았어야 는데.... 아고고.'



<바쁘신 데다 염려가 있는 상황인 것 아는데 내가 브런치에 뭐 좀 응모 한번 해 보려고 글을 발행할 작정이어요. 이해 바랍니다.>


나는 동생에게 정중하게 이런 문자를 보낸 적도 있었다. 룰루랄라 상황이 아닐 때 나의 '새 글 알림'이 가족들에게 번진다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그래, 잠입이다!



나는 우선 부모님 휴대폰에 잠입했다. 잠입은 물론 쉬웠다. 나는 패턴이고 뭐고 부모님의 휴대폰을 내 휴대폰 주무르듯 할 수 있다. 내가 당신들 휴대폰을 들고 있어도 이마트 출석체크나 카카오톡 대리 확인 등을 는 줄 알기 때문에 그분들을 손쉽게 속일(?) 수가 있었다. 나는 얼른 전체 보기 화면으로 가서 브런치 앱을 찾아 꾹 누른 후 '삭제'를 눌러 쥐도 새도 모르게 브런치 앱을 죽였다(?). 내 부모님 휴대폰에서 브런치 앱이, 내 브런치 주소가, 나의 과거 및 잠정 미래가 영구히, 온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미션 클리어!


문제는.. 동생네였다. 애들 키우느라 바쁜데 언니, 혹은 처형이라는 사람은 매일 글이나(?) 쓰고 있으니... 때때로 나의 글이 그들에게 '일기장 강제 오픈'이 되지나 않을까 심히 염려되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동생네 휴대폰까지 잠입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 때마침!!


<나 휴대폰 바꿨어.>


동생의 새 소식! 게다가 제부 씨까지 얼마 후 휴대폰을 바꾸었다!! 이런 겹경사가!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브런치 앱을 삭제했거나 아예 깔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1년간 브런치 활동을 안 한 덕(?)에 동생네도 브런치를 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여차하면 이런 문자를 보내려고 늘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이다.


<브런치 앱 새로 깔지 마. 있었다면 삭제해.>


(동생은 1년이나 지난 일이므로 브런치가 뭐야, 라는 심정이기도 겠지만 나에게는 절체절명의 기로일 수 있다.)



자, 여하튼 이제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아무도 모르게 '가족 욕'도 좀 해 가며 글을 쓸 수 있는 기회!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글' 구축 기회!



사실, 이전에 우리 동생 님은... 내가 브런치에 시를 쓰기 시작하자,


"1연이랑 2연은 괜찮은데 갑자기 3연에서 웬 존댓말? 일관성이 없잖아. 그리고 뒤에 좀 이상해. 어쩌고저쩌고.."


엄마에게 이런 동생의 만행을 고자질했더니 "뭐, 어때? 분석 잘하는 동생이 글에 의견도 주고 좋네!" 이렇게 심히 파지티브한(긍정적인) 해석을 내려 버리셨다. (에잇.)




그러나! 이제는 자유다!

자유로운 글쓰기! 이제 날개를 달고 더 더 자유롭게 글을 쓸 것이다!!!



<추신>
그런데 들려온 슬픈.. 소식.
친구1: 내가 요즘 네 브런치에 안 들어갔었네?
친구2: 너 브런치에서 이름이 뭐였지?



오, 노우!

브런치 주소를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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