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문

토끼에게 간은 없었다

by 이유진 봄해

토끼에게 간은 없었다

이미지 출처: ChatGPT 생성형 AI — 실제 인물이 아닌 긴 귀를 가진 ‘상징적 인물’의 표현입니다.

성적 착취와 폭력이 직접적으로 묘사됩니다.



바깥으로 향한 적 없는 경첩. 문은 안쪽으로만 무겁게 열렸다.


방 모서리에 대야 세 개. 물. 장갑. 빈 쇠통. 빈 대야 바닥엔 말라붙은 검붉은 얼룩이 층을 이뤘다. 복도 끝에서부터 군화 밑창이 시멘트를 찍고 들어왔다. 일정한 간격. 번호가 불리고 발이 문턱을 넘었다.


굳은살 박인 손이 대야에서 장갑을 집어 들었다. 굵은 손가락이 고무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생고무막이 살갗에 들러붙어 말려 올라갔다. 장갑 안쪽은 앞사람이 남긴 체액으로 끈적였다. 탁한 피임 고무 냄새가 공기에 엉겨 붙었다.


긴 귀를 가진 여자가 철제 침대에 내던져졌다. 등뼈가 차가운 철판을 때렸다. 핏기 빠진 뺨 위로 식은땀에 절은 머리카락이 들러붙었다. 두 귀가 딱딱한 철판 위에서 꺾여 짓눌렸다. 귀 끝이 침대틀 쇠 모서리에 긁혔다. 살갗이 찢어졌다. 동백의 붉은 피가 멈추지 않았다.


형광등이 한 번 떨렸다. 녹슨 철제 침대, 그 위로 뻣뻣한 흰 천이 덮였다. 다리가 바깥으로 꺾여 벌려졌다. 위에서 찍어 누르는 하중이 복부를 완전히 짓눌러 고정시켰다. 장갑 낀 차가운 손아귀가 맨살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질긴 고무가 피부를 문지를 때마다 찌걱거리는 마찰음이 울렸다. 복도의 군인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다리 더 벌려.


“汚い朝鮮女.” (더러운 조선년.)


순서가 바뀔 때마다 군화가 바닥을 긁고, 거친 손아귀가 가슴팍을 쥐어짰다. 위에서 내리꽂히는 하중에 철제 침대 다리가 시멘트 바닥을 긁어댔다. 끼익. 끽. 덮인 천이 위아래로 펄럭일 때마다 비릿한 피 냄새와 땀 냄새가 훅 끼쳐 아래로 꺾였다.


짓눌린 눈꺼풀이 강제로 닫혔다. 푸른 감이 매달린 마당. 빨래를 걷는 엄마. 잿물 냄새와 마른 볕의 냄새. 그러나 하중이 천 위에서 골반뼈를 짓이길 때마다, 마당은 뒤집혀 부서졌다. 시야가 끊어지고 차가운 쇠침대 위로 다시 팽개쳐졌다. 몇 번이나. 다시.


꺾여 짓눌린 귀에서 벌건 피가 터져 나왔다. 거친 무릎이 그 귀를 뭉개듯 밟았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 비명이 긁혀 나왔지만, 군화 밑창은 멈추지 않았다.


“汚い朝鮮女.”


금속 기구가 부딪히는 소리. 장갑이 살에서 쩍 벗겨지는 소리. 군화 밑창이 바닥을 끄는 소리. 좁은 방 안에서 소음들이 차례대로 겹치고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배 안쪽에서 열이 치솟았다. 아랫배가 척추 쪽으로 꺼지듯 안으로 당겨졌다. 빈 대야 바닥에 검붉은 핏덩이가 쏟아졌다. 벗겨진 장갑이 물통에 처박히고, 탁한 누런 액체가 수면 위로 번졌다.


그녀의 간은, 끝내 빼앗겼다.


용궁—붉은 햇발로 바다를 물들인 제국. 자라는 긴 귀를 가진 그녀들의 손목을 잡아 배에 태웠다. 때로는 등을 밀었고, 때로는 말도 없이 긴 귀를 움켜쥐고 끌고 갔다. 간이 필요했다. 군인들의 배를 채울 간이.


생고무가 마찰하는 소리가 방을 채웠다. 무게에 짓눌려 꺾인 숨소리만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혔다. 새벽빛이 들자, 맨몸 위로 뻣뻣한 흰 천이 덮였다. 핏물이 고인 대야가 비워졌다. 금속 기구들이 쇠 쟁반 위로 돌아갔다.


어두운 막다른 복도 끝. 펜촉이 종이 표면을 긁었다. 이름은 적히지 않았다. 찢어진 장갑의 개수. 교대 시간. 빈칸은 숫자로만 채워졌다. 다음 번호가 불렸다. 군화가 문턱을 넘었다. 덮였던 흰 천이 다시 벌어졌다.


그 아래 빈 공간. 펜촉이 다시 종이 표면을 긁고 지나갔다. 검은 잉크가 남긴 문장 한 줄.


「간은 없었다.」


이 작품은 잊히지 말아야 할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며 쓰였습니다. 성적 착취와 폭력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동화적 모티브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비극을 드러내기 위한 반(反)동화로 쓰였습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