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에게 간은 없었다
이미지 출처: ChatGPT 생성형 AI — 실제 인물이 아닌 ‘상징적 인물’의 표현입니다.
관덕정 광장. 북가죽 위로 빗방울이 터졌다. 펄럭이는 무당의 무명 소매가 허공을 가르며 빗물을 쳐냈다. 검은 우산들이 멈춰 섰다. 우산살 끝에 맺힌 빗물이 구두코 앞 시멘트를 때렸다. 먹빛 얼룩. 여자가 우산대를 기울였다. 고개가 꺾였다. 정수리 위로 허연 귀 두 개가 솟아 있었다. 빗물에 젖은 살갗이 아래로 처졌다.
빳빳한 근무복 깃이 목덜미를 긁었다. 축축한 구두 밑창이 계단 바닥에 들러붙었다 떨어졌다. 땀 한 줄기가 셔츠 안으로 스며들었다. 손가락을 꺾어 서류 가방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사무실 문이 열렸다.
“비 온대요. 일찍 움직이시죠.”
이수가 차 키를 허공에 들어 올렸다. 내 어깨뼈 위로 가방끈이 걸렸다. 차 문이 닫히고 와이퍼가 앞 유리를 반원 모양으로 쓸고 지나갔다. 잔비가 다시 유리에 들러붙었다. 조수석에 앉아 서류철을 열었다. 첫 장. 건조한 종이 표면에 시선이 박혔다. 운전석의 이수가 가속 페달을 밟았다.
“오늘 건물은 작습니다. 오래 안 걸릴 거에요.”
띡, 띡. 방향지시등 전자음이 울리며 속도가 꺾였다.
동화여관, 사용승인일 1944년 3월 21일
숫자 몇 자리가 종이 위에 남았다. 검지 끝이 숫자 배열을 한 번 쓸고 지나갔다.
“증축이나 변경 흔적은 없네. 가설건축물만 까보자.”
이수는 웃으며 핸들을 툭 쳤다.
“어제 목관아 점검을 못 했습니다. 행사 전에 하고 갈게요.”
내 손가락이 플라스틱 덮개를 밀어 서류철을 닫았다. 차창 밖으로 빗바람이 비스듬히 긁고 지나갔다. 차가 관덕로를 지나 동문시장 앞 모퉁이로 꺾였다. 광장에 쳐진 천막들 위로 빗줄기가 쏟아졌다. 주차장 바닥에 타이어가 끌렸다.
“이수야, 펌프실 어디 있지?”
이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목관아 한 켠 건물 앞. 붉게 녹슨 자물쇠. 쇳덩이를 돌려 풀고 문을 젖혔다. 붉은색 펌프와 굵은 배관들이 각을 세운 채 얽혀 있었다. 금속 관들이 한 방향으로 뭉쳤다. 둥근 압력계의 검은 눈금.
“수동 스위치 올립니다.”
이수의 뭉툭한 손가락이 스위치를 돌리고 버튼을 눌렀다.
윙—. 바닥의 시멘트가 진동을 먹고 낮게 울렸다. 금속이 깨어났다.
“이제 자동으로 돌립니다.”
펌프가 멈췄다. 스위치가 자동으로 넘어갔다. 딱. 회로가 붙었다. 멈춰야 할 펌프가 계속해서 돌아갔다. 떨리는 기계음이 고막 안쪽을 긁고 올라왔다. 밀실의 공기가 팽창하며 가슴뼈를 내리눌렀다. 굵은 배관이 몇 번 크게 울렸다. 나와 이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가 서로의 시선이 부딪혔다.
“우우웅—”
진동이 천장으로 타고 올랐다. 기와가 흔들렸다.
“쿵. 쿵.”
진동과 다른 두 개의 둔탁한 박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수의 팔꿈치가 내 갈비뼈를 쳤다. 철관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살덩이가 몸을 뒤집는 듯한 울음. 압력계 바늘이 치솟았다. 내 손이 정지 스위치를 향해 허공을 찢었다. 스위치에 닿기 전, 바늘이 멈춰 섰다.
모터의 회전음이 끊겼다. 막혀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아. 배관 터지는 줄.”
펌프실을 나오자 빗소리를 뚫고 북소리가 울렸다. 광장에 늘어선 어깨들. 북가죽의 장단이 빗방울을 안고 광장을 덮었다. 펌프실 시멘트 바닥의 진동이 젖은 구두 밑창을 타고 올라왔다. 사람들 어깨 사이.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검은 우산 끝에서 물이 떨어졌다.
뼈마디가 불거진 손가락이 우산대를 쥐고 있었다. 손목. 어깨. 여자의 정수리 위. 허연 귀 두 개가 솟아 있었다. 젖은 살덩이. 빗물이 귀 끝에서 뺨으로 굴러내렸다. 여자의 까만 동공이 내 안구에 꽂혔다. 둥—. 북이 울릴 때마다 흰 귀 끝이 떨렸다.
팔꿈치를 빼 이수의 옆구리를 쳤다.
“저 여자… 머리 위. 보여?”
이수의 미간이 구겨졌다.
“네?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들이마신 공기가 기도에 막혀 들어가지 않았다. 눈꺼풀을 비비고 다시 떴다. 귀는 그 자리에 솟아 있었다. 사람들의 틈을 가르고 발을 뻗었다. 북이 한 박 먼저 치고, 징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종이탈을 쓴 무리가 광장을 휩쓸며 출렁였다.
물결 속에서 여자의 허연 귀가 수면 위로 솟았다 잠기기를 반복했다. 종이 장식이 아니었다. 피가 도는 살덩이가 빗물을 맞고 흔들렸다. 시선이 그 귀에 박혀 풀리지 않았다.
뒤에서 이수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지사님 도착하셨대요. 얼른 가요.”
턱이 옆으로 당겨지고 북소리가 밀려났다. 펼쳐진 우산들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리며 벽을 만들었다. 내가 고개를 다시 돌렸다. 여자가 서 있던 자리. 빗물만 수직으로 꽂히고 있었다. 손끝 감각이 죽었다. 피가 돌던 살덩이는 거기에 없었다.
먼저, 프롤로그의 문을 열어 주세요.
이 작품은 잊혀서는 안 될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며 쓰였습니다.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