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문장 사이로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책 읽는 법>을 읽는데 눈에 밟히는 문장을 만났다.
바쁘면 책과 멀어지는 것은 책을 만드는 편집자도 여느 직장인이나 다를 바 없다. 심지어 나는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조차 일의 연장처럼 느껴져 책과 멀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남 걱정할 정도로 어린이책을 열심히 읽던 때가 그리웠다.
나는 왜 이 문장 앞에 서성였을까. "책을 열심히 읽을 때가 그리웠다"는 문장에 마음으로 밑줄을 쫙 그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읊조리는 목소리, ‘책을 읽고 싶다'였다.
김겨울 작가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에서 1년에 160권을 읽었다고 했다. 1년에 160권? 실화인가 할 정도로 입이 쫙 벌어지는 숫자다. 한 번은 김겨울 작가의 일상 브이로그를 본 적 있는데, 정말 열심히 책을 읽고 틈틈이 읽고, 읽으면서 요약하고 다시 읽고. 그 밀도 있는 행위들이 힘들어 보였지만 또 행복해 보였다.
나도 1년에 100권 넘게는 아니지만 젊은 날에는(?) 필사가 가득한 독서일기장과 읽은 책을 기록하는 다이어리가 있었다. 커다란 박스에 넣어 창고에 두었는데 추억상자가 됐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특별하지도 명석하지 않은 내가 그나마 책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건 20대 때 열심히 썼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그런데 서른 중반에 다다르자 지금껏 내가 살아온 만큼의 시간으로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고 느꼈다. 특히 회사 다닐 때 더 절절하게 느꼈는데, 내 안의 모든 걸 다 닦아 쓴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외주 편집자로 일하면서 그동안 회사는 온실이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밖은 얼마나 춥고 매서운가. 내가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고, 낱장으로 흩어진 글들로 책을 만들었다고, 매달 숨 가쁘게 책을 출간했다고, 그런 변명 속에서 진짜의 나를 바라보게 됐다.
처음에는 물만 줘도 잘 자라. 씨앗이 원래 가진 힘으로 쭉쭉 자라다가 어느 순간 멈춰. 그런 다음에는 뜨거운 봄볕이 있어야 해. 아무리 실내가 따뜻하더라도 안 돼. 창밖으로 들어오는 빛은 봄볕만큼 뜨겁지 않잖아. 태양빛을 쫙 받아야 쑥 크거든.
기르던 완두콩이 일제히 성장을 멈춰 아빠에게 답답한 마음에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내가 전화로 그래도 집이 따뜻하다고 재차 이야기하자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햇빛만큼은 아니라고. 아무리 따뜻해도 아니라고. 근데 아빠의 대답이 내 이야기처럼 들렸을까.
지금까지는 이렇게 일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외주자니까 내가 책임지고 책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주 일을 받고 불안했는데 이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읽고 써야 한다.
물론 지금의 바깥은 이십 대와 다르다. 그러니까 집에 텅 빈 냉장고를 채워야 한다. 비누와 치약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설거지와 빨래가 밀리지 않아야 한다. 아이 등하원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매달 생활비 지출을 관리해야 한다. 온수가 아닌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살아가야 한다.
이 소란에도 이 난리에도
문장 속으로, 창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편집공부하자
#교정교열공부하자
#엄마 프리랜서의 고단함
#서른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