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백암 파이브이모션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 동안 우리 가족은 용인 백암에 위치한 파이브이모션에서 지냈다. 3일 동안 최저 기온은 10도, 최고 기온은 25도로 아주 덥지 않고 아주 춥지 않은 좋은 날씨다. 하지만 약간은 덥고 약간은 쌀쌀하기에 반팔, 후디, 플리스와 함께 아이가 있는 우리 캠프 사이트에는 난로까지 한 번에 등장하는 기온이기도 하다. 아웃도어에서 보내는 시간을 위해 더 좋을 순 없는 기온이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이 미숙했고 정신없었던 탓에 완벽한 날씨의 감사함을 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캠핑이었다.
트렁크가 정돈되지 않은 채로 가득 찼고, 짐들을 내리는 방법, 캠프사이트를 준비하는 순서, 텐트 안 물건들과 컨테이너를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법, 텐트 밖 체어와 테이블을 놓는 위치, 불을 피우는 방법 모든 것이 미숙했고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없었다. 바깥 환경과 우리 생활 패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준비한 용품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잘못 사용되었으며 정리는 끝이 없었다. 그날의 감정은 당황스러움이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행복감도 함께 컸다. 캠핑을 결심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좋은 위치를 발견하고 예약하는 과정들이 우리 가족을 설레게 했고, 미숙함으로 인한 당혹스러운 순간들은 작은 이벤트들이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의 모든 시간들이 행복했고 즐거웠다.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캠핑도 이곳이었다. 수목원을 매입하여 캠핑장으로 구성한 곳으로, 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각각의 존 별로 특색이 있는 곳이었다. 첫 캠핑에서 전체를 둘러보며 D존에 머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다음 예약 때 이곳을 예약했다. D존에는 총 다섯 개의 사이트가 있고 각각의 사이트는 구분되어 있으며 존의 전체면적이 충분히 넓었으므로, 각각의 사이트는 독립적이었고 필요한 만큼의 고립감이 있었다. 우리는 D존의 끝 4번 사이트에 머물렀고 이곳의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있어 따로 그늘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고 산 깊은 곳에 있는 느낌이 나는 차분한 사이트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딸은 텐트를 피칭할 때도, 물건들을 옮길 때도, 식사를 할 때도 모든 걸 돕고자 했고 거들고자 했다. 작은 것들 위주로 딸에게 부탁했고 팀의 일원이 되어 즐거워하며 더 도와줄 게 없는지 물어보는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캠핑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빠른 사이트 준비와 철수가 즐거운 캠핑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이라는 예상이었는데, 느리더라도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겁고 포근한 시간 될 수 있었다.
이곳은 수목원이었기에, 캠프사이트를 둘러보는 산책은 수목원을 산책하는 것과 같았고, 꽤 긴 코스들 덕에 조금은 트레킹의 느낌도 났다. 긴 산책코스를 따라 많은 식물들과 자연의 구경거리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딸은 쉬지 않고 사이트 전역을 산책했다. 덕분에 허기진 딸은 평소 잘 먹지 않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우리가 늘 소망하는 잘 먹는 아이가 되어 주었다.
캠핑을 준비하며, 머릿속에 많은 순간들을 시뮬레이션했었는데 그중 생각만으로도 설레었던 장면은 아침에 일어나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이었다. 4월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 중 가장 인상 깊었고 캠핑의 모티브가 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째 날 아침은 적당히 쌀쌀했고 텐트 안은 난로로 훈훈했다. 문을 개방하면 시원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있었고, 계획대로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렸다. 원두 양은 얼마큼 갈아야 하는지, 입자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물은 한 번에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무작정 이 과정을 스스로 하고 싶었고, 아무 생각 없이 진행했고 커피의 농도는 거의 사약과 같았다. 커피 맛에 대한 지식은 없었고, 커피를 내리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 없던 상태였는데, 결과물의 수준은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있을 모든 캠핑의 아침이 기대될 정도로 과정 하나하나가 즐거웠다.
아직 바깥에서의 생활에 체계가 없었으며, 준비한 용품들도 두서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캠핑에 차분함은 거의 없었다. 체어 크기는 텐트와 테이블에 맞지 않았고, 소프트한 형태의 물품들을 정리할 수 있는 스토리지는 없었으며, 우리 옷들은 여러 개 가방에 흩어져있어 필요한 것들을 찾기 어려웠다. 불안감에 안 가져와도 되는 것들을 잔뜩 가져왔고, 가져와야 하는 것들을 놓고 온 것도 있었다. 정리의 연속이었고, 정리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밤에 빛이 거의 없는 숲에선 어떤 조리개값과 셔터스피드, ISO로 촬영해야 하는지 몰랐고, 단렌즈를 쓰는 나는 물리적인 제약이 큰 캠프 사이트에서 촬영 시 어떤 구도로 접근해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그리고 딸의 산책은 끝이 없었으므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캠핑이었다.
그럼에도 매 순간이 즐거웠다. 정신없는 와중에 혜원이와 내가 모두 무엇 인가를 해야 할 때에는, 집에서 가져온 딸이 좋아하는 색칠놀이 공책을 잠시 준 적이 있었는데 한참을 몰두하는 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외에서는 먹는 것도, 집에서 하던 루틴 한 놀이도, 사소한 장난감도 새롭게 느껴지는 것인 것 같기도 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순간들이었나 보다. 이후 캠핑에서도 색칠놀이와 색종이 접기 등 간단한 딸의 놀이도구들은 매번 챙겨 다니게 되었고, 혜원이가 내가 모두 딸을 케어하지 못하는 순간마다 귀중한 놀이상대 역할이 되어주었다.
딸의 낮잠은 캠핑을 준비함에 있어 우리 부부의 걱정거리 중 하나였는데, 우리 딸은 낮잠을 못 자면 저녁 이른 시간부터 대단히 예민해지고 세상의 모든 짜증을 혼자서 부리는 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딸은 매 주말 집에서 낮잠을 재우기 힘든 아이였다. 어린이집에서만 잘 자는 아이였는데, 캠프사이트에서도 놀거리, 호기심 넘치는 것들, 수많은 산책들 덕분에 낮잠을 재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쉴 틈 없고 파이팅 있는 오전을 보내서인지 우리 딸은 둘째 날 오후 쉽게 잠에 들었고 덕분에 혜원이와 나는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밖에 나와 의자에 앉아 숲냄새를 맡고 새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딸의 낮잠에 대한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함께 했다. 이날 이런 생각을 해서인지 이후의 캠핑에선 딸의 낮잠은 거의 실패했고 5월 파이브이모션에서 이 생각을 했던 나를 자책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생긴 징크스 중 이런 것이 있다. 무엇이든 예상외로 나와 혜원이 뜻대로 순조롭게 흘러가고 그 현상이 지속될 때, 그것에 대해 언급을 하게 되면 그 순간 흐름은 깨지고 우리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대세가 전환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더 작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수 없이 많이 증명되었고 역학적으로 진리에 가까운 법칙이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므로 이것을 징크스라고 생각하며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아(주된 원인은 내 입방정) 원망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어쨌든 그날 하루만큼은 평온했고 순조로웠으며 우리에겐 선물 같은 시간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기에 그 시간이 선물인지 몰랐을 뿐이다.
아직 틀과 시스템이 잡히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캠핑은 2박 3일의 일정도 짧게 느껴지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그 안에서의 혼란한 시간들, 행복한 시간들, 즐거운 시간들, 긴장되는 시간들은 우리 가족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이었으며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들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제대로 된 사진 하나 찍을 수 없었던 첫 번째 캠핑보다는 차분했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더 깔끔하고 정리된 바깥 생활을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도 생각하게 되는 3일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캠핑 모두 같은 곳에서였기에 장소가 주는 포근함도 있었다. 이후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편안함은 아마도 혼돈이 있던 첫 몇 번의 캠핑이 이곳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