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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Oct 14. 2023

더워지기 직전인 6월 말 숲속 캠핑

강원도 평창 용평 휘게 포레스트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2박 3일 동안 우리 가족은 평창에 위치한 휘게포레스트에서 지냈다. 3일 동안 최저 기온은 16도, 최고 기온은 30도로 조금은 덥고 약간은 선선한 날씨였다. 아직 많은 캠핑을 가보지 않은 비기너 가족인 데다 언제나 이불을 발로 차고 덮지 않는 아이가 있는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공기를 데우기 위해 이 기온에도 난로를 챙긴다. 이제는 조금 체계가 잡혀있고, 정리가 되고 틈틈이 여유가 생기는 우리 가족이었다.


  몇 번의 캠핑을 다니며 잘못 준비했거나 최적화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정리했고, 고민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가로 구매했다. 트렁크는 여전히 가득 찼지만 질서가 있었고, 사이트에 도착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어디에 무엇을 두어야 하는지, 불은 어떻게 그리고 언제 피워야 효율적인지 조금은 알게 되어 이전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는 이상적인 모습과 거리가 좁혀졌지만 여전히 갭은 존재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것들을 예상할 수 있었고 통제할 수 있었으며, 예기치 못한 일로 무엇인가를 극복해야 하는 순간들은 줄었다.





 이곳은 여러 존으로 구분되어 있는 곳이고, 모든 존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지낸 곳은 숲 속 존이었다. 잘 정돈되고 관리된 캠프사이트는 방문객들을 더없이 편하게 해주는 곳이었고, 자연 속에서 머문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인프라가 있는 곳이다. 숲의 평지가 주는 개방감이 있었고 무척 울창한 나무들이 주는 고립감도 함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었으며 우리 가족이 선호하는 사이트 타입이었다.


 딸은 여전히 팀의 일원으로서, 작은 역할이라도 담당하고자 했으며 나와 혜원이는 늘 딸이 해낼 수 있는 과제들을 부탁한다. 사이트를 정리하며 필요한 도구를 건네주는 것이라던가, 힘든 아빠를 위해 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던가, 가벼운 짐들을 텐트 안으로 옮긴다던가 하는 일들이다. 딸이 우리 부탁을 들어주고 나면 우리는 모여 하이파이브하고 환호한다. 나와 혜원이는 딸이 참여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참여하는 이 과정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난 캠핑보다 더 난이도 있는 과제를 해내는 딸을 보며 '그새 컸나', '천천히 크는 것도 좋은데'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딸은 옥수수를 좋아하고, 마침 6월이라 혜원이는 초당옥수수를 준비해 왔다. 우리가 가진 냄비에 옥수수를 쪄서 딸과 함께 먹었고 가족 모두가 즐거웠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는 무엇인가를 계획할 때, 더 나은 방법 또는 방향이 있고 지금은 최선이라 생각되는 그 방법 또는 방향을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실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옥수수의 경우엔 조리방법이 찌는 것이고, 찌기 위해선 내가 캠핑에 가지고 다니는 냄비보다 더 밀폐되고 적당한 다른 도구들이 알맞다는 생각을 한다. 중형 세단에 모든 짐을 넣어야 하는 우리 가족은 최소화된 부피의 캠핑 용품 이외의 다른 것들은 물리적으로 가지고 다닐 수 없다. 내가 가진 도구들은 옥수수를 찌기 위해 최적화된 것이 아니므로, 나 혼자 계획했다면 옥수수는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내린 결정들이 늘 틀려왔듯이, 이번에도 틀린 생각이었다. 옥수수는 맛있게 쪄졌고 우리 가족은 옥수수 하나로 특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부족하고 잘못된 사고를 하는 나를 채워주어 어쩌면 가질 수 없었던 행복한 순간을 혜원이가 만들어 준 것이다. 나를 보완해 주고 로하에게 선물 같은 순간을 만들어주는 혜원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그리고 한편으로, 잘못된 방식인걸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그나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속도는 느리겠지만 개선은 되고 있고 곧 가속도도 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여러 자연환경이 함께하는 곳인데 그중 계곡을 많은 가족들은  좋아했고,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우리는 많은 시간을 계곡에서 보냈다. 물길을 새롭게 만들기도 했고, 계곡을 따라 탐험도 했고, 작은 물고기들을 잡기도 했다. 그리고 딸은 통에 물 또는 흙을 담아 옮기는 아주 단순한 놀이도 체감상 두 시간 이상은 했다. 한동안은 내가 텐트로 돌아와 쉬고, 또 한동안은 혜원이가 텐트로 돌아와 쉬면서 우리는 휘게 포레스트에서 지내는 시간 중 많은 시간을 계곡에서 보냈다. 맑고 시원하고 아이들이 놀기 좋은 수심의 계곡이었다.


 2박 3일 캠핑을 준비하며 늘 넉넉한 시간일 거라고 예상하고 계획하지만, 막상 캠프 사이트에서 보내는 2박 3일의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놀거리가 많아 늘 아쉬움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편이다. 이번 캠핑도 그랬다. 계곡에서의 놀이에 심취한 딸은 마지막 날까지 계곡에서 놀고 싶어 했고, 마지막날은 보통 짐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음에도 우리는 번갈아가며 딸과 계곡을 찾았다. 도시로 돌아가면 만날 수 없는 자연환경이기에, 캠프사이트에서는 같은 놀이라도 딸이 원한다면 계속하는 편이다.





 용평에 있는 이곳의 숲 속 존은 나무가 울창한데, 그 밀도가 아주 적당해 답답함은 없고 쾌적한 숲의 느낌을 많이 준다. 각 사이트별로 간격도 적당해 각자의 사이트가 적절하게 고립되어 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곳이 아닌 인상이고,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딸은 아직 어려 모닥불 앞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기는 아니지만,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도 즐겁다. 가까운 미래에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 요즘의 관심사 등을 조잘조잘 이야기해 혜원이와 내가 '벌써 이렇게 컸네' 하는 순간이 올 텐데, 그런 상상은 나를 늘 즐겁게도 슬프게도 한다. 딸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나를 즐겁게 하고, 그때가 되면 지금의 아기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한다. 우리 딸은 아직 아기지만, 작년 사진만 봐도 훨씬 어린 모습에 그때로 잠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 한편으론,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나가버릴 수 있으니 많은 시간 함께하고 서로에게 집중하여, 디지털화할 수 없는 것들(감정, 느낌 등)을 잘 기억하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짐정리는 꽤 체계가 잡혀 이전보다 효율화되었다. 아직 시간은 꽤 걸리지만, 나름의 순서가 생겼고 요령이 생겼다. 텐트를 정리하다 보니 작은 곤충들이 꽤 보인다. 이제는 곤충들이 나올 시기가 됐으며 우리 가족은 나오지 말아야 하는 시기가 된 것으로 받아들였고, 2주 후로 예약해 놓은 영월의 캠프사이트 예약을 취소했다. 우리 가족은 이제부터 여름동안은 다른 방법으로 놀이와 휴식을 하고 더위가 끝날 때즈음, 오늘 같은 기온이 돌아왔을 때 다시 캠핑하러 나올 계획을 세웠다. 서해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강원도 용평은 무척 먼 곳이었지만, 이곳만이 줄 수 있는 자연환경, 안락함과 포근함이 있었으므로 딸에게 곧 다시 올 거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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