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 국제캠핑장
유난히 더웠던 여름 동안 우리 가족은 캠핑하지 않았고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더위가 물러갈 즈음인 9월 1일부터 2일까지 1박 2일 동안 인천에 위치한 송도국제캠핑장 B구역에서 지냈다. 2일 동안 최저 기온은 20도, 최고 기온은 29도로 무덥진 않았지만 더위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시점이었다. 바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적절한 기온이 돌아왔는지 몰랐기에 9월 초 이곳에서의 캠핑은 우리 가족의 새로운 캠핑시즌에 앞선 일종의 파일럿이었다.
집과 가까운 캠프사이트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저녁까지 함께 시간 보내고 혜원이와 딸은 집으로 돌아간 후 다음날 아침 다시 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더위가 걱정되었는데, 너무 더우면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있기에 마음이 놓이는 일정이었다. 덕분에 짐은 간소화되었고 마음도 홀가분한 캠핑이었다.
길었던 여름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기에, 지난 캠핑에 정해놓은 기준인 최저기온 10도 때에 진입하지 않았음에도 더 기다리지 못하고 캠핑을 나왔다. 피크가 지났음에도 아직 한낮에는 더운 날이었는데도, 준비를 마치고 오랜만에 밖의 느낌을 느끼니 더 들뜨는 우리 가족이었다. 밤은 혼자만 보낼 예정이었기에 큰 텐트를 가져오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가 머물 공간의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곳은 도심에 있는 캠프사이트라서 숲 또는 산이 주는 고요함과 고립감은 없다. 하지만 바다가 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는 곳으로, 높은 접근성이 있어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곳이다. 캠핑을 시작하기 전에도 종종 이곳에 와 체어와 테이블을 펴놓고 식사한 후 돌아가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낯설지 않고 마음이 편안한 곳이다.
이곳은 서해안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트 덕에 멋진 일몰과 함께할 수 있다. 이날은 운 좋게 하늘이 맑았고 해가 지는 동안 멋진 노을을 만날 수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장애물 없이 펼쳐진 시야에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은 흔치 않은 인프라라고 생각된다. 약간의 걱정을 하게 만들었던 한낮의 더위도 꺾이고, 곧 선선한 날씨가 시작될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저녁 날씨였다.
우리 가족은 멋진 노을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가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이사오기 전엔 누리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멋진 노을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멋진 노을이 있을 때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채우는 노을사진을 업로드한 친구들 중 대부분은 이곳 서해안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전에 살던 도시의 친구들, 또 다른 곳에 살고 계신 부모님, 그리고 다른 여러 지역들의 지인들이다. 멋진 노을은 이곳이 아닌 어느 곳에 있어도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동안 나는 멋진 하늘에 관심이 없었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결혼생활이 시작된 시기가 내가 이곳에 온 시기였고, 혜원이와 내가 사랑하는 딸이 태어난 시기도 내가 이곳에 살고 있던 시기였다. 이곳에 살고 있을 때 멋진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다.
딸은 가끔 관심을 보이며 카메라를 만지는데, 그럴 때면 원하는 구도를 잡게 해 주고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도와준다. 높은 빈도로 멋진 결과물이 나오는 편이다. 내가 딸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딸의 시선의 높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의 눈높이는 내가 자주 잡는 구도와 거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 찍은 사진은 나에게 늘 신선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와 혜원이는 언제나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하는데, 딸이 찍은 사진을 보면 딸이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도 내가 딸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자그마한 키와 순수한 눈으로 보는 세상은 멋지고 흥미로운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우리 딸은 어떤 일에 흥미를 보이다가도 나 또는 혜원이가 신기해하며 다가가면 흥미를 거두고 다른 재미난 일을 찾곤 한다. 우리 딸이 사진에 흥미를 보이는 것이 반가운데 많은 사진을 부탁하지 않는 이유이다. 가끔 원할 때 놓여있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면 좋겠고 흥미를 거두지 말고 늘 관심을 두었으면 한다. 이날 카메라를 들고 본인의 시선으로 엄마를 찍어준 딸이 고맙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너머에는 수도권에 공급될 LNG가스를 저장해 두는 LNG 기지가 있다. 그곳이 밤에도 밝은 빛들을 비추고 있는 덕에 캠프사이트에서 바라보는 밤바다는 심심하지 않다. 많은 바다들은 밝을 때 멋진 분위기를 선사하고, 어두울 땐 캄캄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편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우리 가족은 바다와 모닥불을 보며 오랜만에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여름은 힘이 빠진듯했고 우리 가족이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될 우리 가족의 아웃도어 라이프를 기대했고 어떤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오랫동안 쉬다 나온 우리 가족의 오랜만의 캠핑 밤은 이렇게 흘러갔고 혜원이와 딸은 집에 갈 준비를 마쳤다. 인사하고 돌아와 혼자의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의 캠프에선 종종 혼자 있는 시간이 있었고, 보통은 혜원이와 딸이 먼저 잠이 든 경우였다. 혼자 텐트 밖에 나와 그날의 사진들을 정리하고 편집하거나, 가져온 책 또는 잡지를 읽는다. 사진을 편집하다 보면 찍을 때는 몰랐던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내가 놓친 우리 가족의 표정이라던가, 자연 속의 아름다움 들이 그것들 중 하나이며 기억되지 않을 뻔한 순간이 찍힌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이날 밤도 다르지 않았다. 사진을 편집했고, 가져온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 정리와 편집을 마친 후, 책도 적당히 읽고 모닥불의 장작이 모두 숯이 되어있을 때 즈음 잘 준비를 했다. 모든 캠핑의 첫날은 금방 잠들지 못했고 깊이 잠들지도 못했기에 이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집에서 처럼 쉽게 잠들었고 푹 잤다. 평소와 달랐던 건 나 혼자였던 것, 이너텐트가 아닌 야전침대를 사용했던 것 등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작용한 덕분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밖에 나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덕분인지 모르겠다.
다른 바다에 있으면 꼭 눈으로 보지 않아도 파도가 만드는 소리 덕에 바다의 느낌을 받는다. 이곳은 잔잔하기 때문에 청각이 전해주는 바다의 느낌은 없고 시각이 전달하는 바다의 이미지만 있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 밖에 나와 잔잔한 바다를 보니 '바닷가에서 잤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준비하는 커피는 여유로웠지만 허전했다. 원두를 갈 때마다 해보겠다고 하는 딸도 없었고 내린 커피를 나누어 마실 혜원이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른 아침은 적당한 기온이었고, 맑은 덕분에 멀리까지 잘 보였다.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을 때 곧 출발한다고 혜원이에게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