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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아 Jun 30. 2023

매일 혼술 하는 여자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에 혼술영상이 떴다.


자취를 시작하고 혼술 하는 일이 잦아졌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는 혼술 경험이 전무했고, 집에서 혼자 쓴 소주를 마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고로 술은 술자리가 최고지하며 금요일마다 서면, 해운대로 쏘다니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편이었다. 그러나 요즘, 내 옆에는 초록병과 소주잔이 일상다반사다.

첫 혼술메뉴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닭발에 소주였던 것 같다. 그날은 내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담당 본부장님과 합이 안 맞아 삐그덕거리던 와중, 다수가 있는 회의자리에서 공격 폭탄을 받은 날이었다. 더군다나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실수를 대표로 공격받은 터라 내 스트레스는 더욱 완벽해졌었다.

"그래, 나도 혼술하고 스트레스 좀 풀어보자"



5평 좁은 원룸의 작은 상에 올라간 닭발과 계란찜. 매콤한 닭발을 한 입 물고 세월아 네월아 발골하고 내 속도에 맞게 소주를 들이켜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거짓말처럼 스트레스가 스르륵 사라지며, 혼자 먹으니 속도가 빨라져 금방 취해버렸다.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고 폰으로 틀어놓은 영화의 감정이 넘실거리며 내 가슴에 꽂히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불필요한 대화 없이 혼자 이렇게 감정이 갈무리되다니. 신세계였다.


사실 타인과의 술자리는 좋은 점도 많지만 불편한 점도 꽤 있다. 다수와의 술자리라면 깊은 대화는 불가능하고, 소수와의 대화가 차라리 낫지만 자칫하면 감정쓰레기통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어느 정도 얘기하다 멈추고 상대방의 턴으로 돌려줘야 하는 시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성격상 머릿속에 수만 개의 생각이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탓에, 대화할 때 온전한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가 힘들었다. 3가지 종류의 커피를 파는 자판기는 뭘 먹을지 고르기 쉽지만, 30여 개 자판기의 문장이라면 입 밖으로 꺼내는 것부터 고역이다. 그래서 한때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으로 문장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내 머릿속은 이미 질문을 받는 순간부터 '상대방 고려, 이 분위기에 할 이야기인지 고려, 내가 이 얘기를 과거에 했는지' 등등 공작새처럼 몇 초간 생각의 날개를 쫙 펼친 다음 거르고 걸러 도출되는 게 말이었다.

어릴 때는 이 정도가 심해서 차라리 입을 꾹 닫는 편이 나았다. 찰나의 수만 가지 인과관계들을 거쳐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 이것을 엄마는 답답하게 여겨 말 좀 하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아무튼 머릿속의 생각을 입 밖으로 정리하는 피곤한 일련의 과정이 없는 혼술의 매력에 처음 매료되어, 나는 혼술에 흠뻑 빠지게 됐다. 소주 한 잔 털어 넣으며 머릿속에서만 굴려지는 사고들은 생각정리를 꽤나 빠르게 해 줬다. 물론, 알코올의 힘도 있었겠지만.

안주는 점점 다양해졌다. 가벼워서 좋은 생선회부터 다음날 숙취를 피하기 위해 기름진 탕수육, 값싸고 만만한 라면, 배부를 때 열무김치까지. 술은 취하고 싶고 안주는 부족해 냉장고에서 만두, 계란프라이, 김치 등 자잘하게 안주를 바꿔가며 술 먹는 시간은 늘어갔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받을 때만 먹던 것이 점점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공허하고 허무했다.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매일 8시간씩 하고 오는 게 지옥 같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나에 자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없고 텅 비어버린 마음에 안주를 고르려 배달의 민족을 보는 순간만큼은 설렜다.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회 한점 집어넣으며 이 생각이 들었다. 매일 지겹도록 반복되며 바뀌지 않는 일상,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어딘가 질질 끌려가고 있는 인생, 당장 이것을 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들지 않는 확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잡다한 생각 그만하고 취미나 가져보라고 조언하겠지만, 매주 야근 혹은 집에 오면 9시인 나에게 취미란 해당 지는 없었다. 집 오면 온갖 기에 빨려 침대에 누운 채로 유튜브로 즉각적인 도파민이나 챙기는 게 내 에너지의 끝자락일 뿐.

어느 날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혼술 하는 영상이 떴다.
썸네일에는 '혼술 만취녀' '대낮에 낮술 하다 꽐라녀' 등 자극적인 문구가 대문 작하게 찍혀있었다. 이런 거에도 항상 여자를 붙이나 싶어 혀를 차면서도 처음 보는 술방이란 호기심에 클릭하고 말았다. 그저 말끔한 용모의 40대 여자분이 깔끔하고 맛있게 홀로 술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평범한 영상이지만 어딘가 묘하게 공감이 가서 그 후로 나조차도 '혼술 하는 여자'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보곤 했다. 남성 유튜버보단 같은 성별의 여성분이 먹는 영상이 더 공감 가서 좋았달까.

지금은 그 유튜버분처럼 적당히 즐기면서 혼술을 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먹지 않을 때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기분 내려 한잔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내 안을 갉아먹던 저 고장 난 점들을 고쳤기 때문이다. 퇴사하고 작게나마 용기 내 하고 싶은 것들을 시작해 나갔고, 내 하루를 의미 있게 채우면서 비로소 주체적이게 내 인생을 끌고 나가고 있다는 의식이 들어서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닭발에 소주 한 잔 해보시라. 홀로 술 마시며 고찰하고 또 고찰해 보시면 좋겠다. 내 안에 고장 난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고쳐나가는 게 좋을지.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꽐라가 되도록 마셔도 좋다. 그것 또한 해의 일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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