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기 03화

뽑지 말고 자르세요

250714

by 쓸쓸

새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흰머리 중 맨 앞에, 정가운데에 난 한 가닥이 참 거슬린다. 자기주장이 강한 그 아이는 다른 머리카락들과 다르게 혼자서 포물선을 그리듯 정면을 향해 뻗어있다. 짝꿍 말로는 더듬이 같이 생긴 그것만 삐져나와있는 게 너무 싫어 앞머리들을 실핀으로 고정했다. 옆으로 넘겼어도 여전히 그 친구가 보이지만 뭐, 괜찮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그 한 가닥이 또 혼자 나와있다. 어떡하지. 뽑을 수는 없는데. 평생토록 모공 하나에서 나오는 머리카락 개수는 정해져 있고, 내 머리숱은 적어 한 올 한 올이 아쉬운데. 몇주를 고민하다 결정했다. 자르기로.


튀어나온 한 가닥의 주변 머리카락들을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한 손에는 가위를 들어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잘라낸다. 거울로 확인하니 짧아진채로도 여전히 당당하게 세상을 향하고 있다. 한 번 더 자른다. 최대한 두피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이제 다른 머리카락들을 흐트러뜨린다. 예전처럼 거슬리지 않는다. 나는 비데 광고의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며 흥얼거렸다.


뽑지 말고 자르세요, 루울루.


후련하다.




그런 새치 같은, 유독 튀어나온 한 가닥 같은 인간관계가 있다. 뽑아낼 수는 없는데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힘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다듬을 수 있다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조금 멀리 떨어질 수 있다면. 불편한 인간관계에 거리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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