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친척 언니네 빌려줬던 엄마 피아노 가져오기로 했어. 딸 집에 둘 곳 있지?"
우리 엄마가 사회 초년생이실 때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게 피아노였다고 한다.
엄마는 월급을 모아서 피아노를 구매했고, 그 피아노는 엄마의 평생을 대부분 함께했다.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 있었던 피아노다.
어릴 때는 나도 많이 쳤지만,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을 거쳐 성인이 되면서 점점 피아노와 멀어졌다.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았던 나는 학업에 집중하느라 피아노를 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핑계를 더 찾아보자면 점점 아파트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시간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가 더 맞는 표현 같다.
그러다가 친척언니의 자녀가 태어났고, 우리 집 피아노는 친척언니의 집으로 장기대여를 떠났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르고 친척언니의 자녀도 어느덧 막내까지 중학교에 입학했다.
과거 우리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친척언니의 집에서 점점 먼지만 쌓이고 있는 피아노를 다시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이번엔 엄마집이 아닌 우리 집으로.
나도 가까운 미래에 아기를 가질 생각이 있고, 지금 우리 집은 피아노를 놓을 공간이 충분하다.
그렇게 엄마의 피아노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요즘에는 전자피아노가 아닌 나무 피아노는 아파트에 들이기가 쉽지 않다.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에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뉴스에서도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들을 심심하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도 피아노를 우리 집으로 가져오면서 '피아노는 언제 칠 수 있을까? 쳐도 될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조율을 받는 날에도 평소에는 울릴 일 없던 초인종 소리에 '헉! 피아노 쳐서 올라왔나 봐...'라고 지레 겁먹고 대문을 열어 드리기도 했다. 사실 방문자는 입주자회의 투표를 위해 전 세대를 방문하고 계시던 분들이었다.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엄마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이 피아노를 버릴 수는 없다.
내가 잘 품기로 했다.
피아노를 열어보니 어릴 때 내가 붙여놨다가 더럽게 떼어버린 핑클 스티커의 흔적도 남아있고 살짝 누렇게 바랜듯한 건반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이 피아노는 엄마의 소중한 추억이 담겼을 뿐만 아니라 나의 추억도 가득한 피아노였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던 남편도 피아노에 흥미를 보였다.
남편은 좋아하는 노래 중 피아노연주가 인상 깊었던 노래가 있다고 말했다.
"어 그거? 띠-띠-띠-딩------"
나는 제목은 모르지만 남편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들었던 노래가 바로 떠올라서 흥얼거려 봤다.
"어 그거!!!!!! 나도 이 곡 직접 연주해보고 싶어!"
칸예 웨스트의 Runaway라는 곡이다.
쇼츠를 보니 해볼 만하다 싶었다. 악보를 읽지 못하는 남편에게도 충분히 내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거 칠 수 있게 도와줄게."
우리는 올해 공동 목표를 한 개 더 추가했다.
"피아노 한 곡 함께 완성하기."
누군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 아주 큰 기쁨이 된다.
우리 부부가 피아노를 함께 즐기는데 조성진의 피아노 실력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걸 한 개 더 깨달았다.
나 피아노도 칠 줄 알았지. 심지어 체르니 50까지 쳤었다고!
오랫동안 치지 않아도 손가락이 기억한다.
피아노를 치는 그 손가락의 감각을.
우리의 피아노 연주는 토요일 점심식사 후에 계속된다.
('이 시간이면 주민들에게 피해 주지 않을 시간이겠지...?'라는 고민을 100번도 더했다. 그리고 고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악보 중 첫 번째 장을 완성했으니, 반복되는 뒷장은 금세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재밌는 건 한 사람이 쳐야 하는 오른손 왼손을 부부가 양손으로 하나씩 맡아 치고 있는 우리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