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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와샐리 Jan 18. 2024

3년간 멈췄던 화장을 다시 시작했다.

2020년 초,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화장은 사치였다.

해봤자 마스크에 묻어나기만 하고, 더군다나 예민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나는 마스크+화장+기타 등등의 이유로 피부염도 꽤 앓았다.

나는 평소에 억지로 화장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맨 얼굴로 가는 첫날은 옷을 입어야 하는데 안 입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하지 않은가. 

하루는 부끄럽고 고개도 잘 못 들겠고 그랬지만 2일이 되고 3일이 되니 별거 아니었다.

화장하는 시간에 아침밥을 먹는 것을 선택했고, 화장하는 시간에 조금 더 자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편안함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마스크와 친해지는 한편 화장품과는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화장을 안 한 지 3년이 넘었다.

경조사 등 화장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장소에 가야 할 때는 화장을 했지만, 일상에서 화장은 사치였다.

아침밥과 잠에 준비하는 시간을 더 할애한 이후로 화장할 시간은 도무지 나질 않았다.

 

작년 10월, 신혼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화장대를 장만했다.

지금 상태로는 당연히 화장대가 필요 없었지만, 가구를 보러 갔다가 전시품 파격세일을 하는 덕에 화장대도 장만하게 되었다.

화장대가 도착하고, 정리를 하기 위해 짐을 꺼내보니 지금까지 잠자고 있던 나의 화장품들이 하나 둘 쏙 드러났다.

많기도 많았다.(내 기준)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화장품을 평생 발라도 죽을 때까지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용기한은 이미 다 지나버렸겠지만 '가네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루 네버 다이. 가루는 죽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함께 간다.라는 코덕(코스메틱 덕후, 화장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의 말을 빌려 화장품 서랍에 갇혀있는 이 친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로 했다.

화장품이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거지만 내가 쓰지 않으면 이들도 빛을 못 보기 때문에 윈윈이라고 생각하자.

개인적으로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출근하기 싫었던 어느 날, 화장대에 앉았다.

신혼여행에 가서도 화장 한 번 안 해서 프로필 사진으로 쓸 만한 사진이 하나 없다고 투덜거리던 내가 화장을 하려고 화장대에 앉다니. 

조심스럽게 화장품을 하나하나 들어본다.

먼저 피부부터 파운데이션을 과하게 바르고.

앗 망한 것 같다.

오랜만에 하니 적당량을 잊었다. 그리고 괜히 내 화장이 너무 두꺼운 것만 같다.

지울 시간은 없다. 일단 다음단계로.

눈썹을 그려낸다. 다행히 난 눈썹을 창조해야 되는 정도는 아니니까 손쉽게 눈썹은 만족스럽게 통과.

그다음에는 맘에 드는 립을 골라 발랐다.

섀도, 아이라인, 뷰러까지 챡챡챡!

(이렇게 쓰니 트와이스의 비비크림 파파파~ 립스틱을 맘맘마~ 하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내가 지금 그런 걸 적고 있다.)

출근화장에 마스카라는 패스.

(사실 아직까지도 마스카라를 번지지 않게 바르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줄 블러셔.


그런데 이게 무슨 느낌이지?

오랜만에 화장을 하니까 너무 재밌는 거다.

어릴 때 인형에 화장을 하는 그런 느낌이다.

화장이 놀이 같았다. 재밌었다.

나는 화장품 중에서도 블러셔를 가장 좋아하는데, 오늘 고른 블러셔를 바르고 나니 내일 바르고 싶은 블러셔가 바로 또 생기는 거다. 왜 볼은 두 개뿐인가..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소 5분에서 최대 15분이면 내가 생각하는 풀 메이크업 끝!

그렇게 다음날에도 다다음날에도 화장대에 앉고 2개월 동안 거의 꼬박 화장을 하고 출근했다.

재미를 느낀 나는 스페츌라라는 화장 소도구도 장만하고 새로운 파운데이션도 구매했다.

어릴 적에는 남들 사는 유행템만 따라 샀는데 이제는 내 취향이 확고해져서 화장품 하나도 내가 선택한다.

나 참 많이 컸다.


동료들은 '결혼하니까 여유가 생기나 봐? 화장도 하고 다니고!'라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 같다.


화장하고 나서 거울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엄청 놀렸다. 

"진작에 좀 하지 그랬니~?"

"ㅎㅎㅎㅎ나 예뻐???????????"

신혼부부 분위기를 마구 뽐내며 준비하는 출근시간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귀여운 것 같다.


요즘에는 왜 여성만 꾸미는데 시간을 쓰고 돈을 써서 화장품을 구매하고 화장을 해야 하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화장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한 단계씩 내 얼굴에 올라가는 화장품처럼 

무기력하다고 느끼던 내 기분도 어느새 산뜻하게 덮혀지기도 한다.

딱 자기만족을 위해서 즐겁게 하는 화장은 긍정적이지 않을까?


나, 그런데 이번주는 2번이나 화장 안 했다.

그냥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면 되는 거다. 

세상이 피곤하게 이리저리 편가르면서 싸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화장을 했는데 어디가 이상하다고 지적하고, 안 했다고 예의가 없다 등등 상대방에게 외모로 상처 주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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