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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Aug 28. 2023

예민한 잉여적 인간의 삶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게 어때서

극도의 민감성은 인격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비정상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만 이러한 장점이 매우 심각한 단점으로 바뀐다.

그것은 민감한 사람들의 침착하고 신중한 성향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Carl Gustav Jung)






"너는 발톱을 숨기고 있는 고양이 같아"

어느 날, 몇 년을 친하게 지내던 동네언니가 말했다.


"무슨 의미야?" 내가 물었다.

"누가 공격하기만 해 봐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러면서 항상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내가 방어적으로 보일 수는 있는데, 아무 때나 그렇게 되는 건 아니야" 나는 대답을 했다.



그게 또 뭐라고, 집에 오는 길에 언니의 말을 되새김질한다.

그다지 의미를 담고 한말이 아닐 수도 있는데, 나는 또 신경 쓰이고 생각에 잠긴다.

내가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 또 그렇게 '자아성찰'의 방으로 들어가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갈등이 생기면 나는 늘 화살이 나를 향한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 말투가 싹수가 없었나?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이런 사고의 반복이 '자존감' 문제라는 것도 안다. 지난 년 동안, 어쩌면 지금까지 평생 나를 괴롭히는 단어다. 



자존감(自尊感)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의 깊은 가치를 아는 것



존중과 본질, 가치라니.... 고급진 단어들의 조합이다. 

나를 존중하는 마음과 나의 본질을 이해하여 가치를 아는 것, 다른 사람들은 이 어려운 단어로 자신들을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맥이 빠진다.


https://brunch.co.kr/@ssingci/11

나는 아들이 필요한 집에 태어난 남아도는 필요 없는 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잉여적이고, 나눗셈에서 나머지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부모님은 당연히 그런 아이에게 부어줄 사랑이 부족했고 다른 형제들도 자신들이 살아남아야 하니 각자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지지와 응원, 여유로움의 따위는 없었다. 나는 '성장'이 아닌 '생존'하는 게 삶의 목적이었다.

그런 내가 나를 존중하고 본질과 가치를 이해한다니... 참으로, 이상적인 삶의 표현이다.


나는 감각이 예민하고 민감한 아이였다. 

어릴 적 소원을 떠올려 보면, 불가능한 하나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고, 그래도 현실에서 가능할 하나는 '나 혼자 쓰는 방'이었다. 어둠과 소음에 민감했고, 후각이나 촉각도 유난히도 예민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예민함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몰랐다.

대신 나는 다른 가족들에게 늘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어릴 적엔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니, 자꾸 울었다. 언니는 늘 '울보'라고 나를 놀렸다.

 


남들보다 감각이 발달한 편이다 보니, 주변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챘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를 빠르게 눈치 했고, 한 발 앞서 다른 사람의 상황을 미리 맞춰줄 수 있었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나에게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렇게 발달된 면을 다른 사람들은 '센스가 있다. 성격이 좋다'라고 칭찬했다.

나쁘지 않았다. 나에겐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칭찬을 들으면 나는 더욱더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 나의 '예민함'은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강력한 '무기'로 만들어 장점으로 활용하고 살았다.


문제는, 타인들에게 에너지를 쓰느라 나 스스로에게 쓸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타인에게 보이는 '괜찮은 나' 덕분에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지만, 혼자가 됐을 때 만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 때문에 자존감이나 자아 따위는 찾을 기운이 없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 잘못될 수 있는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남들의 비난을 받는 불쾌한 경험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탓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습관이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센서티브 중에서, Ilse sand)'



안타깝게도 이런 나를 자각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남은 시간 동안 나를 교정해 보려는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채로, 살아온 내가 가엽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말엔 그토록 온 마음을 쏟아 들어주면서, 정작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랑했던 사람들도 많이 놓쳤다. 

'불안정 애착, 회피성 애착' 등의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랬다.

멀어지는 사람에게는 매달렸고, 가까이 오는 사람들에겐 도망쳤다. 

어차피 내가 놓으면, 사람들은 나를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관계를 내가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결국엔 내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빠질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늘 내가 먼저 놓았다.

그러고선 나의 진심을 모르고 멀어진 사람들을 원망했고, 혼자서 절망했었다.

그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조금의 서운함과 그리움들이 있다. 



이제 사십 대가 끝나가는 나이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깨진 관계를 다시 붙이는 수고스러움도 하고 싶지는 않다.

지나간 사람들이 영화필름처럼, 내가 있었던 장면에 함께 있어주었던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중에 진심으로 고마운 사람들이 몇몇 생각났다. 최근에 용기를 내어서 연락을 해봤다.

나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20대의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 마냥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불편해진 나의 예민함이 가위로 변해 싹둑 잘라버렸던 인연들이었다.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잘 버티고 살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몰랐어. 그저 너는 항상 웃고, 밝은 에너지를 갖은 사람이었으니까..."


몇 년 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나는 위로를 받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이도 울었던 날들이었다.

나의 예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강박적으로 '밝고 쿨한 나'로 꾸미며 살았던 어린 날들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들이었다.

 

여전히 나는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나의 '예민함'을 좋아하고 즐기고 싶어 진다. 그게 가장 '나다움'이다.





어린 시절은 과거이고, 지금은 살아남았고, 이제 삶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은 불안을 줄여줄 것이다. 지식은 당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경험만이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센서티브 중에서, Ilse 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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