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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Feb 25. 2023

4. 아이가 말을 배우는데 왜 글을 못 배워?

선과 나무의 홈스쿨링

그즈음 언론에서 외국의 홈스쿨링 사례가 자주 소개되었다.

주로 영재들을 위한 홈스쿨링이었다.

선은 신문을 보다 나무에게 물었다.     


“우리 홈스쿨링을 하면 어떨까?”     


어린 나이였지만 (선을 따라) 신문을 즐겨 보고 있었던 나무는 홈스쿨링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특별한 아이를 위한 특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무는 자기가 특별한 대상인 것에 대해 짐짓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책을 읽고 있던 나무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말했다.     


“내가 과연, 엄마랑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것이 괜찮을까?”     

                                          



선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돌이 지나고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아마 나무가 16개월에서 18개월 사이가 아니었을까―나무가 막 말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선에게 갑자기 ‘아이가 말을 배우는데 왜? 글을 못 배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선은 포대기로 나무를 업고 문구사로 가서, 매직펜과 한 면이 빳빳한 8절지 도화지를 사 왔다.

그리고 나무에게 말을 걸 때마다 그 빳빳한 도화지에 매직펜으로 글을 쓰고 나무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나무야! 우리 감자 먹자!”     

“우리 왕자님, 잘 주무셨어요?”     

“사랑해!”     

“오늘은 맛있는 딸기 먹을까?”     

“예쁜 강아지! 오늘 아침은 삶은 계란이네!”     

“우리 밖으로 나갈까? 따뜻한 햇살이 아침부터 나무를 부르고 있어!”     

“우리 예쁜이!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병아리처럼 노란색 옷을 입을까? 아니면 눈사람처럼 하얀색 옷을 입을까?”      


선은 나무를 안고 다니면서 계속 수다를 떨었다.     


“나무야! 우리는 지금, 차도를 건너가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어. 여기, 하얀 줄 보이지? 이게 횡단보도야. 차들이 달리고 있네! 버스도 있고 택시도 있고 저기, 화물차도 보인다! 레미콘도 보이고, 그 뒤에 지게차도 보인다! 지금 아파트를 짓는 공사현장으로 가나 봐. 저기, 맞은편에 빨간 불빛 보이지? 저게 신호등이야! 지금은 빨간 불이라 차들이 가는 거고, 우리는 조금 기다렸다가 초록색 불이 들어오면 길을 건너갈 거야. 초록색 불이다! 달리던 차들이 멈췄지! 우리 보고 건너가라는 신호야. 이게 규칙이거든. 이제 건너가자!”     


그리고 아이가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을 때, 그림 낱말 카드를 10장 골라 세 번씩 보여주면서 읽어주었다.


“까치! 백합! 장미! 고양이! 참새! 소라! 제비! 강아지! 고래! 상어!”     


그런데 선에게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낱말 카드에 그려진 그림만으로 나무가 학교나 교실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선은 나무를 안고 자퇴했던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도 있었지만 연못이 있는 학교는 흔하지 않았다. 그림카드에서 봤던 연못을 보여주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를 찾아갔던 것이다.

연못이 있는 교정을 지나 복도를 걸어가며 나무에게 교실을 보여 주었다.     


“나무야! 저게 칠판이야. 앞에 있는 게 교탁이고. 나란히 놓인 책상들 보이지? 누나들이 저기에 앉아서 공부하는 거야.”       


선은 나무에게 유아어를 쓰지 않았다.

소통이 잘 되는 친구에게 말하듯이 문어체 말투를 사용하기도 했다. 나무는 선이 말하면 유심히 귀담아들으면서, 신이 난 것처럼 연신 방긋방긋 웃었다.     


이번에는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비행기나 활주로라는 단어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었다.

제주도는 아이에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경험도 제공해 주지만 내륙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동굴, 폭포, 바다, 잠수함, 온실 등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자연학습의 현장이기도 했다.

선은 집을 나설 때부터, 이동 경로를 나무에게 생중계하듯 속삭였다.     


나무는 지금 엄마랑 같이 우리나라의 남쪽에 있는 섬,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거야. 어제 엄마랑 지도에서 봤지? 제주도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섬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우리는 오늘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고 갈 거야. 오늘은 비행기를 타지만 내일은 잠수함도 탈 수 있어. 엄마는 나무와 함께 여행을 가게 돼서 무척 기뻐! 나무도 신나지! 아빠는 사업 때문에 바빠서 오늘은 같이 못 가지만 다음에는 꼭 같이 간다고 약속했어.

우리는 지금 비행기를 타려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고 있는 거야. 우리가 타고 가는 택시가 지금 앞으로 달리는 건데, 나무들이나 건물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이것은 착시 현상 때문이야. 착시 현상.     


공항에 도착했다! 와! 공항이 정말 크지! 저 봐! 비행기가 정말 많다! 저 쪽에 태극마크가 있는 비행기가 보이지? 그게 우리나라 비행기야. 그 옆에 프랑스 비행기가 있네. 이쪽은 일본 비행기. 여기, 홍콩 비행기도 있다!     

우리는 지금 비행기를 타러 가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거야.

지금 비행기 트랩을 올라가고 있어, 천천히.

비행기 안이다, 아늑하지!

우선 우리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창가네!

안전벨트를 매고,

지금 우리가 탄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를 달리고 있어.

와! 이륙한다!

저기 봐! 집들이 점점 작게 보이지?

우리가 탄 비행기가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어서 그래! 그래서 집들이 점점 작게 보이는 거야.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는 착시 효과 때문이지. 착시 효과! 착시 효과 때문에 아파트도 빌딩도 레고처럼 작게 보이네!

와! 하얀 구름 좀 봐! 따뜻한 이불처럼 폭신한 느낌이지. 너무 예쁘다!

언제부터 이렇게 모여 있었지! 꼭 구름들이 모여서 하늘에서 회의를 하는 것 같다! 우리를 환영해 주기 위해 구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 우리 인사하자!

구름아 안녕! 나는 나무라고 해!

지금 엄마랑 제주도에 여행을 가는 중이야! 반가워!

구름들도 나무에게 반갑다고 손을 흔드네!

구름들이 강아지들처럼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어! 너무 귀엽다, 그지!

우리도 구름처럼 손을 흔들자!     

                                          



나무가 두 돌이 막 지났을 무렵―25개월에서 26개월 사이―선은 나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시댁에 갔다.

할아버지 생신 때문에 모인 친척들이 거실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나무가 맥주병을 보며 ‘하이트’라고 발음했다. 그리고 과자 봉지를 보며 ‘오징어 땅콩’ 하고 중얼거렸다.

그것을 본 고모할머니가 나무 아빠를 보며 힐난조로 말했다.


“아비가 얼마나 술을 퍼 마셨으면 애가 벌써 술 이름을 다 외우냐! 애도 있으니까 이제 너도 술 좀 그만 마셔!”


나무 아빠가 펄쩍 뛰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술 안 먹어요. 나무가 글을 읽는 거예요!”


고모할머니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쟤가 벌써 글을 읽어?” 하고 다시 물었다.


“예, 글을 읽어요!”


친척들 모두 “얘가 글을 읽어?”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고모할머니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재차 물었다.


“저 쪼그만 한 게 벌써 글을 읽는단 말이야?”


“예, 읽어요! 진짜 읽어요!”


고모할머니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 이 집안에 천재 났네, 천재가 났어! 어떻게 벌써 글을 읽냐?”


삼촌들이 주변에 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나무에게 읽어보라고 하자, 삼촌들이 가리키는 대로 나무가 중얼중얼 읽어 나갔다.


“어머, 정말 읽네!”


“야! 정말 읽는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때, 유치원생인 나무의 사촌 누나가 오빠 방에서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를 가지고 와 나무에게 쑥 내밀었다.

나무는 아무렇지도 않게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를 웅얼웅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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