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고 들어가네요 코르셋처럼. 한단이면 숨쉬기 편했을 텐데 덤도 좋은 건 아니었나 봐요. 바람이라도 스칠 자리를 비워두어야 했을지 몰라요. 술을 담아 마시면 술병이 되었을 텐데 꽃을 품는 순간 꽃병이 되었어요. 무엇이 먼저였다면 좋았을까요. 태생이 꽃병일 거라고 애써 품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느 공예가의 하루가 반짝이는 음각 사이로 녹아내리면 그것으로 충분히 눈부시니까요.
장미꽃 한 다발을 사 와 꽂으려다 가시에 손가락이 찔렸어요. 장미의 가시는 마치 기사처럼 공주를 지켜내는 베르사유 궁전의 무사처럼 긴장의 태세로 나를 바라봤어요. 나는 그저 꽃꽂이를 하려고 했을 뿐인데요. 붉은 장미는 가시 기사들 사이로 몸을 숨겼어요. 장미꽃 잎이 휴지를 붉게 물들 때 가시 뒤에서 붉은 레이스를 칭칭 두른 장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죠.
움켜쥔 향기가 진해질 때쯤 잠에서 깨자 장미가 사라졌어요.
저는 오늘 화병에 꽃을 꽂지 않기로 했어요. 노랗고, 붉고. 하얀 꽃을 품어 주던 꽃병은 그저 화병이게 하고 싶어요. 꽃을 위해 존재하는 꽃병이 아니라 투명 크리스탈 화병으로 두고 싶어요. 빈 유리병 그대로 꽃이 꽂히지 않던 그 시간을 유리병에게 주고 싶어요. 꽃병이든 화병이든 유리병이든 이름이 꼭 명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다고, 아무것도 담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냥, 존재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달빛 아래서 온전히 그 모습으로 있어도 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