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마음을 복구하는 기술, 회복탄력성 4단계 루틴

by 곽준원

마틴 셀리그먼으로 대표되는 긍정심리학에서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마음 근력 중 하나로 회복탄력성을 강조합니다. 정의는 매우 단순합니다.


"스트레스, 실패, 상실, 좌절을 겪은 뒤에도 다시 균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능력"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서은 보통 자기 조절력, 관계 능력, 긍정성의 세 가지 축으로 설명합니다. 자기 조절력은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고,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을 돌보는 힘이며, 관계 능력은 어려울 때 사람들에게 지지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긍정성은 내가 겪은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물을 수 있는 성장형 사고 습관입니다.


인생이 무너진 날

지금도 생각해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 입사한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에서 개발하던 게임이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입사하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지만, 나름 꽤 최선을 다했고, 야근도 숱하게 했으며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초보 개발자였습니다.


그런데 오픈 베타 테스트를 앞둔 어느 날 회의실에서 얼굴색이 어두운 팀장님은 딱 세 줄의 말로 그 프로젝트가 종료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회사에서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렵답니다. 이후 일정은 모두 취소입니다. 인력은 모두 권고사직으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웅~'하는 소리와 함께 비워졌습니다. 한동안 회의실에서 자기 자리로 이동한 동료들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모든 개발 일정이 취소된 상태에서 쉼터로 이동한 뒤에야 앞으로 어떻게 할지 서로 대화를 나눌 정도였습니다.


5개월 동안 열심히 야근하며 달려온 동안 '게실염'으로 10일 동안 입원하며 병을 얻기도 했는데, 한순간에 프로젝트의 종결된 상황에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동안 달려온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무너진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퇴근길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창밖은 어두운데 저만 혼자 환한 조명 아래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날밤, 침대에 누워서 불을 끄고 천장을 보다가 문득 '아.. 이게 마음이 무너진 느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은 바닥으로 떨어져서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 모르는 상태. 그때의 저는 '한 번 크게 무너지면 예전처럼 회복하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회복탄력성이 거의 없을 때 세상을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중단된 뒤로 며칠 동안은 나름대로 회복하려고 애를 쓰긴 했습니다. 주말에는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 술 한잔 마시기도 했고, 주중에는 일을 최대한 루틴처럼 처리하면서 감정을 덜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대로 출근하고, 지금까지 작성한 코드를 정리하고, 점심시간에는 농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었지만 집에 돌아온 밤에는 늘 같은 자리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불을 끄고 누우면 다시 불안함이 온몸을 덮쳐왔습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시작할 힘이 있을까'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믿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말은 지금 힘든 사람에게 너무 잔인한 말 같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나 힘들 때는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 힘에 겨워 '앞으로 진짜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말이 위로가 되기보다는 '그때까지 이 상태로 버텨야 합니다'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거든요. 그 무렵에 저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것과 시간이 지나도록 내가 마음을 돌봐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전혀 모르고 지냈습니다.


회복탄력성은 아주 작은 선택의 반복

그러던 어느 날,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여러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회복탄력성의 기본 수준은 체계적인 훈련과 꾸준한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일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긍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감사하기는 긍정성 향상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효과를 나타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졌는데, 운동하고, 감시 일기를 쓸 수 있을까라고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돌봄은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문장에 마음이 움찔했습니다. 자신을 돌볼 줄 알면 타인을 돌볼 수 있고 맡겨진 책임도 잘 완수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비상사태 시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아이와 함께라면 부모부터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다음 아이의 산소마스크 착용을 도우라는 항공 안전 지침을 들어봤을 겁니다.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에 잠겼습니다. 꽤 오래도록 조절능력을 키워왔다고 생각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이 회복탄력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최근에 어땠는지 살펴보면 다시 일어나는 연습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한 번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STEP1 - 감정이 소진된 날, 24시간 안에 나를 돌보는 법

처음으로 한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마음이 바닥난 날, 그날 하루만큼은 나를 조금 다르게 대하자'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힘든 날일수록 늦게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게임 속으로 더 파고들었고, 시간이 지나면 잠이 오겠거니 했죠. 게임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를 계속 시청하거나, 스마트폰의 숏츠를 보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갑니다. 수면 시간은 당연하게도 적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 아침, 어제보다 더 피곤한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규칙을 하나 정했습니다. 감정이 크게 흔들린 날에는 새벽까지 버티지 말고, 씻고, 간단히 뭔가 먹고, 최대한 빨리 누워 버립니다. 누운다고 곧바로 수면에 들기 힘들지만 최대한 누워서 쉬려고 노력합니다.


규칙 하나만 바꿨는데도 다음 날의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물론 기분이 확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제의 나에게 조금 덜 미안한 하루가 되기도 합니다.


또 하나 집에 돌아와 무의식적으로 책상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대신, 아주 간단한 몸 돌보기 루틴을 추가했습니다. 집 근처를 3~5바퀴 빠르게 걷고, 뜨거운 물보다는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를 추가했죠. 이런 걸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으면서도 억지로라도 하나씩 루틴으로 만들어 보니까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정 일기였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느낌이 주로 강했는지, 이름을 붙이고, 그 감정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한 줄을 적어보는 겁니다. 처음에는 짧게 두줄만 작성해서 감정의 조절이라고 부르기 어려웠지만, 점차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자기 비하와 혐오로 이어지는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떤 감정이 무너지는 상황이 오면 회피하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그럴 만도 해'라는 한 마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루틴을 만들어 조금씩 회복의 방향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STEP2 -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 전환

그다음으로 해본 루틴은 관점의 전환인 리프레이밍 연습이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엎어진 일을 떠올리며, 노트에 다음과 같이 작성했습니다.


1. 사건 요약: 몇 개월 간 준비한 프로젝트가 오픈베타를 앞두고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중단 통보를 보냈다.

2. 그때의 감정: 허무함, 분노, 두려움, 불안

3. 이 사건에서 배운 점: 나는 결과에만 매달리면 쉽게 무너진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 가지 일에 인생 전체를 걸어놓는 건 리스크가 굉장히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4. 반응에서 아쉬운 점: 그 이후로 몇 주 동안 거의 사람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5.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하고 싶은 반응: 속상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가까운 지인에게 털어놓기. 완전히 손을 떼기보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배움과 강점을 정리해 보기.


마지막으로 실패라고 생각한 그 사건을 살펴보니까 그 사건은 제 인생의 낙오가 아니라 한 가지 방식에만 매달려 살지 말라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건은 그대로인데 그 사건이 저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이름표가 바뀐 느낌이랄까요. 여전히 아픈 기억이고 쓰라린 경험이지만 적어도 '그때 그 경험의 여파로 내 인생은 끝났어'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크게 배워서 감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습니다. 이런 과정이 회복탄력성 이론에서 말하는 긍정성 향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STEP3 - 나를 지켜주는 심리 자원 상자 만들기

한동안 저는 힘든 날이면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람들 연락처를 훑어보곤 했습니다. 지금 누구에게 연락하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집 근처를 맴돌며 걷다가 들어온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여러 심리 처방과 관련된 도구를 찾아보다 '나만의 심리 자원 상자' 아이디어를 보고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집구석에 있던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놓고 그 안에 마음이 무너질 때 보면 괜찮을 것들을 하나씩 넣었습니다.


누군가가 보내준 손 편지 한 장,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 주는 음악 목록을 손글씨로 적은 메모, 독서 모임에서 '자신에게 쓰는 편지', 지금의 나에게 해줄 한마디 말과 같은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잡동사니 모음이지만, 저에게는 한때 버티게 해 주었던 증거물들이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간 날에는 굳이 누군가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상자를 꺼내어 하나씩 천천히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위로가 되었습니다. 나를 알아봐 준 순간들이 있었음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고, 완전히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회복탄력성은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신을 향한 신뢰인데, 그 신뢰는 말로만 생기지 않고 이렇게 손으로 집히는 자원들을 통해 조금씩 다시 형성되는 것 같았습니다.


STEP4 - 아주 작은 루틴으로 감각 되찾기

회복탄력성 강의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단계는 아주 작은 습관에 있었습니다. 위기 이후에는 자존감이 바닥나기 쉽죠. 이럴수록 작은 행동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감각을 되찾아야 합니다.


실제로 프로젝트가 중단된 뒤 저는 한동안 멍한 상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회복탄력성 훈련 중에서 하루 한 가지 루틴을 만들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때 정한 건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1분 안에 정리하기, 점심시간에 10분이라도 마음 챙김 명상하기, 잠들기 전에 감정 노트에 오늘의 긍정 한마디를 적어보기.


매일 모든 것에 체크리스트로 V표시를 해두면 자연스럽게 습관화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감정이 상한 날에는 모든 체크리스트에 V표시를 할 수 없었지만 한 두 가지만 하더라도 내가 직접 움직여서 한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주 미세한 뿌듯함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극복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통해 성장하고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회복탄력성 이론을 공부하고, 꾸준히 훈련에 임한다면 니체의 말에 크게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감정 한 줄 쓰기, 의미를 바꾸는 리프레이밍, 심리 자원 하나 떠올리기, 아주 작은 루틴 하나 정하기를 통해서 꾸준히 연습한다면 마음이 무너진 날에도 그중 하나를 떠올려 보며 더 단단해지는 자신을 만나게 되길 소망합니다.


물론 완벽하게 해낼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나의 그 한 줄, 그 한 번의 선택이 내 안에 숨어 있던 회복의 근육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무너진 자리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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