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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사장은 있고, 진짜 사장은 없는 것

우리 사장님 덕분에? 우리 사장님 때문에!

by 조병묵

대한민국 기업 100개 중 99개는 중소기업이다. 약 800만 개에 달한다. 업종에 따라 기준은 다르지만, 연 매출 1,800억 원 미만이면 중소기업, 140억 원 미만이면 소기업으로 분류된다. 나머지 0.1%만이 중견기업 또는 대기업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경영 이론과 전략은 이 0.1%를 전제로 한다. 대기업의 체계와 논리는 경영의 정석처럼 다뤄지고, 중소기업은 창업자의 열정으로 일군 스타트업 신화 정도로만 언급된다. 유니콘으로 성장한 기업은 20곳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 사례는 일반화된 성공 공식처럼 소비된다.


99.9%의 기업에서 경영자는 대부분 오너다. 그는 재무, 인사, 영업, 전략 등 전방위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빠른 판단과 실행이 강점이지만, 객관성과 균형은 부족하기 쉽다. 무엇보다 곁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데이터 기반의 판단은 사치로 여겨지고, 반대 의견은 충성심 부족으로 오해받는다.


반면 대기업의 ‘바지 사장’은 시스템이라는 견고한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명확한 권한과 책임, 절차에 따른 의사결정, 견제 가능한 조직문화가 존재한다. 실패하더라도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 용인되며, CFO·COO·CHRO 등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다. 의견이 충돌하더라도 프로세스는 기능한다.


중소기업의 경영자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지만, 인력과 자원의 제약 때문에 쉽지 않다. 결국 직관과 경험, 감각에 의존한 의사결정을 반복하게 된다. 그 결과 직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지시만을 기다리게 된다. 자율성과 창의성은 조직에서 사치가 되고, “우리 사장님 덕분에” 혹은 “우리 사장님 때문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중소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은 바로 ‘사람’이다. 자본이나 토지는 고정된 자원이지만, 사람은 조직을 통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변수다. 이 자원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결정한다. 그러나 현재의 중소기업 조직문화는 사람의 가능성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굳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진짜 사장이 바지 사장처럼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바지 사장이 활용하는 시스템의 논리를 일부라도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명확한 역할과 책임, 실행과 피드백의 체계, 구성원 역량 개발은 중소기업에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경영은 경영자의 빠른 판단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구성원들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99.9%의 기업도 사람과 프로세스로 이루어진 구조 안에서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이제 진짜 사장에게도 바지 사장처럼 일과 사람을 관리할 수 있는 ‘경영 파트너’, 즉 시스템이 필요하다.


김 대리가 1년이 지나도록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이 팀장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팀장의 능력이 제자리에 머무르는 이유는 결국 조 사장에게 일과 사람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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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1. 이 회사의 의사결정은 한 사람의 직관에 의존하는가, 아니면 시스템으로 검증되는가?

2. 역할과 책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가, 아니면 모든 결정이 대표에게 집중되어 있는가?

3. 데이터 기반 판단과 피드백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가?


경영자

1. 나는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2. 내 곁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사람이 존재하는가?

3. 사람과 일을 관리하는 구조적 장치 없이, 직관과 경험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팀장

1. 나는 내 팀원들에게 자율성을 주되, 명확한 책임과 피드백 체계를 제공하고 있는가?

2. 업무가 내 개인 능력에 묶여 있지는 않은가?3. 내 팀의 성과와 실패가 시스템 속에서 학습되고 축적되고 있는가, 아니면 사라지고 있는가?

3. 팀원들이 나를 “상사”로만 보는가, 아니면 “함께 성과를 만드는 리더”로 인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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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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