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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Apr 07. 2021

호르몬 전쟁

묵직하게 증가하는 나의 여성호르몬

호르몬.

사춘기 이후, 내 몸에서 호르몬을 이토록 느꼈던 적이 있던가.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것?

10대나 20대 때는 한 달에 한번 극심한 생리통과 감정 기복을 크게 느끼기도 했지만. 30대 중반이 지나니 양이 줄기도 줄고, 그런 것쯤이야 너무 익숙해져서 호르몬의 작용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었다. 머리로는 알아도 느낄 수 없었던 호르몬이랄까.


근데 임신을 하고 나니. 호르몬이 뭔지.


티비에 뭔가 감정적인 내용이 나와도 눈물 줄줄. 남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도 마음에 콕 박혀서는 끊임없이 리플레이. 남편이 좀만 무뚝뚝한 모습을 보여도 속이 상하는 예민 보스가 된 것이다!


호르몬 때문에 가장 힘들었던 건 수면. 임신 극초기엔 그래도 좀 잤는데... 입덧이 시작되면서 밤잠을 설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체덧이라 속이 더부룩한 채로 누울 수밖에 없고, 그게 불편하니까 밤새 뒤척뒤척. 게다가 무슨 오줌싸개도 아니고. 뭔 화장실을 이렇게 자주 가는지! 밤새 3-4번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다 깨버린다. 원래도 잠을 푹 자지 못해서 고생하는 편인데, 임신을 하니까 불면증이 더 심해졌다.


잠이 안 와서 누워있다 보면 별의 별게 다 생각이 난다. 특히 속상했던 일들은 지나간 일도 어찌나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지. 그즈음엔 시가와의 안부전화도 독이 되어서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지셨던 말도 끊임없이 곱씹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화딱지가 나서 잠도 잘 안 오고, 내가 잠을 설치는지도 모르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 옆구리를 한대 쿡 치고 싶고(그래서 각방을 쓰게 되었다). 어느 날은 임신하고서도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면서 갑자기 미래 걱정 시작. 일찍부터 직장에 들어가 이미 자리를 잘 잡고 있는 친구들 생각하면서 난 그동안 뭐했나 싶고, 내 나이에 다른 친구들은 애가 둘인데, 난 이제야 임신을 해서 이 고생일까...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를 반복. 그러다 어느새 새벽 4시 정도가 되는 것이다. 하루는 못 자고, 다음 날은 자는 생활의 반복. 밤에 잠을 못 자니 낮에는 계속 피곤하고, 낮밤이 완전히 바뀐 생활을 하게 되었다.  



10주 차부터는 화장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잘 가지도 못했지만, 한번 가면 묵직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화장실에서 땀을 흘려보긴 처음일 정도로ㅜㅜ배출하기가 힘들었다. 유산균이랑 요거트는 살려고 먹을 수밖에 없었고, 화장실을 못 가니까 아직 배 나올 때가 안됐는데 배가 나와있는 웃픈 상황이 되었다. 하아아. 하지만 문제는 변비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다 화장실을 가는 데 성공하면, 그 후엔 '악'소리가 날 정도로 거기가 너무 아파서(흑흑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다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피도 묻어 나왔다(처음엔 피 비침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뭐야...) 찾아보니 임산부는 쓸 수 있는 치질약이 없어서(특히 초기에는) 무조건 좌욕을 해야 하고, 관리를 잘 못하면 출산하면서 수술도 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힘을 주다가 터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임신한 것도 힘든데, 아니 왜 다른 신체기관까지 말썽인 것이냐... 좌욕기를 주문하고, 요거트를 물 대신 마셔댔다.


호르몬의 농간은 비단 불면과 변비에만 그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호르몬의 장난!!!


그것은 성욕이었다.


후하. 그렇게 밤을 새우다 새벽녘에 잠이 들면, 야한 꿈을 어찌나 많이 꾸는지. 이런  사춘기 소년들만 하는  아니었냐!! 열심히 꾸다가 뭔가 아랫배가 살살 아파서 번쩍 눈을 뜨기도 하고. 어떤 꿈은   취향(?)이어서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 임신을 하고, 입덧도 하고, 잠도   자고, 변비도 생긴  와중에!!이렇게 혈기왕성한  자신. 꿈에서만큼은 어찌나 자유분방하던지...혹시  때문에 너무 욕구 충만한 아이가 태어나진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남편에게 나의 이런 고충을 살짝 어필해보았지만. 우리 남편님께서는 임산부를 건드리는 그런 요망한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 하시니, 꿈으로만 만족하는  밖에('절대' 너무 강조하진 말아줘... 독립운동하는  알았어... 싫으면 싫은 거지 참나)


호르몬아 이제 그만 진정해!(괜히 한번 들어보는 방탄의 '호르몬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XQmpVHUi-0A


(* 임신 중의 성관계는 괜찮지만, 초기에는 깊은 삽입이나 과격한 동작, 과도한 성적 흥분 등이 자궁수축과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꼭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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