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하게 증가하는 나의 여성호르몬
호르몬.
사춘기 이후, 내 몸에서 호르몬을 이토록 느꼈던 적이 있던가.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것?
10대나 20대 때는 한 달에 한번 극심한 생리통과 감정 기복을 크게 느끼기도 했지만. 30대 중반이 지나니 양이 줄기도 줄고, 그런 것쯤이야 너무 익숙해져서 호르몬의 작용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었다. 머리로는 알아도 느낄 수 없었던 호르몬이랄까.
근데 임신을 하고 나니. 호르몬이 뭔지.
티비에 뭔가 감정적인 내용이 나와도 눈물 줄줄. 남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도 마음에 콕 박혀서는 끊임없이 리플레이. 남편이 좀만 무뚝뚝한 모습을 보여도 속이 상하는 예민 보스가 된 것이다!
호르몬 때문에 가장 힘들었던 건 수면. 임신 극초기엔 그래도 좀 잤는데... 입덧이 시작되면서 밤잠을 설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체덧이라 속이 더부룩한 채로 누울 수밖에 없고, 그게 불편하니까 밤새 뒤척뒤척. 게다가 무슨 오줌싸개도 아니고. 뭔 화장실을 이렇게 자주 가는지! 밤새 3-4번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다 깨버린다. 원래도 잠을 푹 자지 못해서 고생하는 편인데, 임신을 하니까 불면증이 더 심해졌다.
잠이 안 와서 누워있다 보면 별의 별게 다 생각이 난다. 특히 속상했던 일들은 지나간 일도 어찌나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지. 그즈음엔 시가와의 안부전화도 독이 되어서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지셨던 말도 끊임없이 곱씹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화딱지가 나서 잠도 잘 안 오고, 내가 잠을 설치는지도 모르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 옆구리를 한대 쿡 치고 싶고(그래서 각방을 쓰게 되었다). 어느 날은 임신하고서도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면서 갑자기 미래 걱정 시작. 일찍부터 직장에 들어가 이미 자리를 잘 잡고 있는 친구들 생각하면서 난 그동안 뭐했나 싶고, 내 나이에 다른 친구들은 애가 둘인데, 난 이제야 임신을 해서 이 고생일까...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를 반복. 그러다 어느새 새벽 4시 정도가 되는 것이다. 하루는 못 자고, 다음 날은 자는 생활의 반복. 밤에 잠을 못 자니 낮에는 계속 피곤하고, 낮밤이 완전히 바뀐 생활을 하게 되었다.
10주 차부터는 화장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잘 가지도 못했지만, 한번 가면 묵직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화장실에서 땀을 흘려보긴 처음일 정도로ㅜㅜ배출하기가 힘들었다. 유산균이랑 요거트는 살려고 먹을 수밖에 없었고, 화장실을 못 가니까 아직 배 나올 때가 안됐는데 배가 나와있는 웃픈 상황이 되었다. 하아아. 하지만 문제는 변비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다 화장실을 가는 데 성공하면, 그 후엔 '악'소리가 날 정도로 거기가 너무 아파서(흑흑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다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피도 묻어 나왔다(처음엔 피 비침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뭐야...) 찾아보니 임산부는 쓸 수 있는 치질약이 없어서(특히 초기에는) 무조건 좌욕을 해야 하고, 관리를 잘 못하면 출산하면서 수술도 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힘을 주다가 터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임신한 것도 힘든데, 아니 왜 다른 신체기관까지 말썽인 것이냐... 좌욕기를 주문하고, 요거트를 물 대신 마셔댔다.
호르몬의 농간은 비단 불면과 변비에만 그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호르몬의 장난!!!
그것은 성욕이었다.
후하. 그렇게 밤을 새우다 새벽녘에 잠이 들면, 야한 꿈을 어찌나 많이 꾸는지. 이런 건 사춘기 소년들만 하는 거 아니었냐!! 열심히 꾸다가 뭔가 아랫배가 살살 아파서 번쩍 눈을 뜨기도 하고. 어떤 꿈은 좀 내 취향(?)이어서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함.... 임신을 하고, 입덧도 하고, 잠도 잘 못 자고, 변비도 생긴 이 와중에!!이렇게 혈기왕성한 내 자신. 꿈에서만큼은 어찌나 자유분방하던지...혹시 나 때문에 너무 욕구 충만한 아이가 태어나진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남편에게 나의 이런 고충을 살짝 어필해보았지만. 우리 남편님께서는 임산부를 건드리는 그런 요망한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 하시니, 꿈으로만 만족하는 수 밖에('절대'를 너무 강조하진 말아줘... 독립운동하는 줄 알았어... 싫으면 싫은 거지 참나)
호르몬아 이제 그만 진정해!(괜히 한번 들어보는 방탄의 '호르몬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XQmpVHUi-0A
(* 임신 중의 성관계는 괜찮지만, 초기에는 깊은 삽입이나 과격한 동작, 과도한 성적 흥분 등이 자궁수축과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꼭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