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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Nov 06. 2022

목수로 살아가기 4

시골 공방의  사 계절

공방은 논산시 외곽의 작은 시골마을 초입에 자리 잡고 있다.

앞뒤로는 제법 큰 텃밭이 딸린 집이 있고 좌우로는 논과 밭이 있다.  집들 사이로 겨우 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도로가 나 있다.


울타리가 없는 마당 경계에는 키 작은 소나무와 배롱나무, 단풍나무, 사철나무, 주목나무가 자라고 있고

아내가 성 들여 가꾼 화단에는  여러 가지 다년생 꽃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꽃잔디, 버베나, 송엽국,

국화, 백일홍, 장미, 아스타, 영산홍 등을 심어서 꽃을 보았고 가끔은 심지도 않은 엉겅퀴, 코스모스도 보인다.

공방 화단


꽃뿐 아니라 식물 종류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밭일로만 본다면 시골생활 부적합자이다. 40평쯤 되는 텃밭에 봄에 고추, 가지, 부추 등을 심었으나 손이 가지 않아도 잘 자라는 가지 외에는 제대로 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가을 초입에 심은 상추와 김장무가 잘 자라줘서 텃밭의 꼴을 유지하고 있다.  아내는 텃밭 구석에도

꽃나무를 심어서 텃밭 주변도 거의 연중 꽃이 피다 지기를 반복했다.   


지난봄 지독한 가뭄에 농사를 망치게 생겼다는 농부들의 걱정이 연일 뉴스가 되던 때에도 꽃나무들은 꿋꿋하게 꽃을 피워 화단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다행히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인공호수가 있어서 농사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흘려보내 주어 별다른 물 걱정 없이 가뭄을 넘긴 것 같다. 그런데 100여 평이나 되는 마당 잔디의 절반쯤은 생명력이 위태로워 보였다. 7월 들어 비가 제법 오기 전까지 5월과 6월

내내 매일 잔디에 물을 뿌리는 게 일상의 중요한 과제였다.


처음엔 고무호스를 길게 늘어뜨려 호스를 손으로 잡고 물을 뿌렸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동네 철물점에서 스프링클러를 사다 호스에 연결해서 이른 저녁 무렵부터 해질 때까지 두어 시간씩 매일 스프링클러를

돌려댔다. 그렇게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되니 정성이 갸륵했는지 잔디가 빠르게 마당을 녹색으로 덮어나갔다.

이제는 골프장에 비할 만큼 꽉 차게 들어 찬 녹색 잔디와 파란 가을 하늘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논농사, 밭농사가 주업인 시골 동네의 사계절 변화는 뚜렷하다. 그런 변화를 읽어가며  벼, 고추, 마늘, 들깨, 양파, 대파, 옥수수, 배추, 무 등 계절마다 놓치지 않고 순서대로 수확을 해내는 것을 보면 농부들의 지식과

경험은 어떤 직업 못지않게 전문분야이고 아무나 덤벼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작은 텃밭 하나에서 나는 것도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 나는 그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아내와 마을 이장님의 푸념 같은 잔소리를 귓등으로 넘기며 공방의 일에만 매달린다. 그래도 손길 없이도 잘 자라는 상추, 무, 가지를 잘 거두어 먹고 있다. 다 잘하려고 애쓰는 것은 정작 잘해야 하는 본인 일을 소홀히 하거나 그르치게 될 수 있고 그거야 말고 낭패라고 여기며.


시골 공방 주변의 사계절은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누가 가꾸고 길렀든 집집마다 계절마다 꽃이 피고 눈만 돌리면 들판과 야산에 온갖 식물들이 어김없이 계절 변화를 알린다. 특히 논농사와 과수농사는 계절을 강렬하게

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4월 말까지 텅 빈 논에는 5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논바닥을 갈아엎고 물을 채운다.

논농사의 시작이다. 예전과 달리 기계로 모내기를 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논에 어린 벼가 줄지어 채워져 있다. 과수원에는 이른 봄부터 전지하고 흙을 돋우고 새잎이 나오나 싶더니 어느 날 순식간에 과수원 전체가 꽃으로 뒤덮인다. 복숭아꽃이 활짝 핀  봄날의 과수원은 동화나 영화 속의 그림 그 자체다. 연분홍 꽃들의

향연에 모두가 취한다.  

복숭아꽃


벼가 강한 햇볕과 더위를 먹고 한참 자라는 6월과 7월이면 개구리와 온갖 풀벌레들이 공방 주위를 에워싸고 위협한다. 방음이 잘되는 요즘 창문들이 아니었으면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을 것이다.

화단 잡초를 뽑다가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와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새끼손가락 만한 청개구리가

창문에 붙어 있는 걸 보면 창문에 장식을 매달어 놓은 듯 마음도 흐뭇해진다.


6월에 양파 수확하는 걸 보면 땅속에 그 많은 양파가 숨어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거의 모든 음식 요리에 양파가 많이 쓰이니 그 많은 양파도 소비가 되리라 여긴다. 흙은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알라딘의 램프인가?


7월, 8월 두 달은 비와 무더위로 사람들도 꼭 볼 일이 아니면 밖으로 잘 나다니질 않는다. 농사일도 손이 덜 가는 기다림의 시기다. 목공방도 한 여름에는 큰 작업을 하지 않는다. 습도에 민감해서 팽창되어있는 목재로 여름에 가구를 만들면 건조한 겨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작은 소품이나 만들면서 쉬어가야 한다.


9월 중순이 지나면 벼의 색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고 9월 말 10월 초면 한두 군데 논에서 벼베기를  시작한다. 모내기 철 논의 변화만큼이나 가을 벼베기도 순식간이다.  어제까지 누렇게 논을 가득 채웠던 벼가 다음날 깨끗이 비워져 있다. 벼가 사라진 논처럼 마음마저 휑하다.  이제 곧 무서운 겨울이 오겠지?.


비어있는 논과 밭, 나뭇잎이 없는 앙상한 나무들, 낮에도 길게 늘어진 그림자, 수시로 불어오는 찬바람에 뒹구는 낙엽, 무엇보다도 시골 공방에서 겨울이 가장 무서운 것은 길고양이 한 마리도 오가지 않는 쓸쓸함이다.

도시생활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농촌 마을에서 맞은 지난해 첫겨울은 썰렁하다 못해 무서움마저 느꼈다.

마치 유령마을처럼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볼 수없이 조용하다. 마을 어느 집에서 가끔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니면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닌 듯 움직임이 없다. 겨울 한 계절은 삶을 멈춘 듯 적막하다.


그래서 올 겨울을 대비하기로 했다. 공방에서 작품 구상과 제작에 몰입할 수 있는 때다. 목수는 가을과 겨울에

일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의욕적으로 작업 계획을 세워본다.  공방 안에서 조용한 가운데 바쁘게 보내고

뿌듯하게 봄을 맞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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