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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pr 26. 2019

"딸이 제일 필요해, 보고 싶어."

일상의 흔적 46

4월 25일, 변덕스럽게 내리는 비. 엄마의 그리움을 들었다.

매일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특별한 이유나 용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멀리 사는 딸은 엄마의 걱정이 조금 덜어지기를 바라며 전화를 한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집까지 5분 남짓, 그날의 일상을 나눈다. 무엇을 먹었고 누구를 만났고 오늘 기분은 어땠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그 누구와의 통화보다 다정하고 잔잔하게 마지막은 꼭 서로를 향해 사랑을 보낸다.


이번 주는 유난히 이른 퇴근이 이어졌다.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더니 나보다 더 신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아침에 택배를 보냈으니 내일은 받아볼 수 있을 거라며 하나하나 보낸 물건에 대해 설명했다. 날씨가 좋아 혹시 상하진 않을까 걱정이 된 엄마는 내일 꼭 바로 집으로 가야 한다는 당부를 더하며 기대 가득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요즘 우리 엄마의 취미는 나에게 반찬을 보내는 것이다. 처음 자취하던 학생 때는 집에서 먹을 일이 없어 거절만 하던 난데 요즘 넙죽넙죽 감사하게 받고 있다. 혼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딱히 음식 해줄 일이 없어 부쩍 우울해하던 엄마에게 일부러 부탁한 일이다.


"엄마 밥 먹고 싶다. 반찬 해서 보내주면 안 돼?"


철없이 해맑은 목소리로 졸랐다. '엄마 이거 해줘 저거 만들어줘'라며 보채는 다 큰 딸에게 음식을 만들어 보내주는 일,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다는 말 한마디가 엄마의 낙이 됐다. 다 커버린, 엄마의 품을 떠난 딸에게 사랑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반찬 값이라며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쇼핑을 귀찮아하는 엄마 대신 필요한 물품을 사서 선물처럼 보내곤 한다.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엄마는 작게 속삭이듯 한마디를 던졌다.


"딸이 제일 필요해. 보고 싶어. 주말에 내려 올래?"


울컥하고 말았다. 무심한 딸은 엄마의 속마음을 챙길 줄 몰랐다. 어떤 마음으로 반찬을 만들고 하나하나 담아냈을지 헤아리지 못했다. 엄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더 따뜻하고 좋은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여름에 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름휴가까지 기다리기 아쉽다며 그전에 선물처럼 와달라고 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 충분히 돌아볼 시간 없이 흘러간 세월은 늘 아쉬움과 후회로 가득하다.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을까. 어리광 부리듯 팔을 벌리면 번쩍번쩍 품에 안아주던 엄마는 언제 이렇게 작아졌을까.


어떤 일에도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고 때론 어깨를 나눠주던 큰 산 같던 엄마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을까. 20살, 처음 멀리 떨어지며 내 앞에서 꿋꿋하게 웃고 눈물 한번 보이지 않던 엄마는 요즘 부쩍 멀리 사는 나에게 보고 싶은 마음을 서운함으로 표시하곤 한다.


지금 당장 떠날 순 없지만(제주도행 주말 비행기표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내려갈 수 있는 표를 끊었다. 벌써부터 어떤 음식을 해줄지 어떤 맛있는 걸 사줄지 고민하는 엄마에게 말했다.


"사랑해 엄마, 많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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