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전빵, 수프, 메인, 디저트까지 한방에 때려 넣는데 걸린 시간 24분
5개월 그녀에게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5개월째 국밥(국에 말아먹는 밥) 형태의 식사가 대부분이 되었다.
특히 미역국은 소고기, 홍합, 북어, 전복 등 다양한 재료들로 만들어
최대한 물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 노력은 100% 친정과 시댁의 도움으로 이뤄지고 있다. 땡큐 나의 마미들;D)
원래 탄수화물을 식사에서 최대한 배제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삼시세끼를 밥으로 먹기는 처음이다.
5개월을 이렇게 밥과 국을 먹다 보니 일단 나의 아토피와 건선은 시라졌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5개월 그녀의 임신으로 호르몬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건강한 식단 때문인지 원인은 정확히 모르지만 나의 피부는 건강해졌다.
하지만 매일매일 국에 말아먹는 밥 식단은 슬슬 물리기 시작했고
더군다나 5개월 그녀가 하도 내가 밥 먹는 모습만 보면
침을 주르륵주르륵 흘리는 통에 최대한 빨리 식사를 마치다 보니
초스피드한 숟가락질은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배를 채우는데 급급하게 되었다.
밥으로 보낸 5개월, 이제 슬슬 한계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이제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마침 오늘은 문화센터 가는 날,
즉 5개월 그녀와 함께 백화점에 가는 날.
난 스윽 5개월 그녀 눈치를 본다.
문화센터 수업을 가열차게 임했던 5개월 그녀는
수업이 끝나자 슬슬 졸린 눈을 비비기 시작한다.
유모차는 그녀에게 바로 꿈나라로 목적지를 설정한 초특급열차가 되었고
이제 나는 밥이 아닌 다른 식사를 해보려 순식간에 유모차를 끌어 본다.
목적지는 패.밀.리.레.스.토.랑.
(family restaurant, 가족들이 함께 가서 식사를 하기에 좋도록 꾸며진 식당)
오후 1시 47분.
그렇다. 지금은 패밀리레스토랑의 런치 식사가 적용되는 시간이었다.
용기를 내서 단둘이 첫 외부 식사를 감행해 본다.
유모차의 네비게이션은 패밀리레스토랑으로 목적지가 이미 설정되었고
백화점 안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힘껏 유모차를 끌고 갔다.
패밀리레스토랑 식사가 여유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과
혹시나 5개월 그녀가 잠에서 깨서 울면 다른 고객들한테 피해가 가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안고
일단 패밀리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밥만 아니면 돼.'
이 마음 하나로 메뉴를 재빨리 정독하다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스파게티였다.
심비어 '아주 약간 매콤한' 아라비아따(토마토 스파게티 종류)라니.
모유수유로 매운 음식을 못 먹은 지도 그러고 보니 5개월이다.
이런 나에게 '아주 약간 매콤한'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식전빵이 나오고
수프가 나오고
에이드가 나오고
스파게티가 나왔다.
코스였지만 다 먹는 데는 24분.
그렇다.
이제 난 허겁지겁 먹는 습관이 생겨버린 것이다.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여유 있게 식사 중인 다른 고객들과는 달리
난 5개월 동안 생긴 후다닥 빨리 먹는 습관으로 인해
코스요리도 국밥처럼 순식간에 해치워버린 것이다.
못했다.
스파게티면을 우아하게 돌돌돌 말아먹지도
빵을 다양한 소스에 푹푹푹 찍어먹으며 리필을 요청하지도
수프의 풍미를 천천히 음미하지도.
마지막 스파게티면을 먹을 때쯤 꿈나라에서 5개월 그녀가 돌아왔다.
혹시나 5개월 그녀의 울음이 다른 고객들의 여유를 깨지 않을까 싶어
급하게 아이스녹차는 테이크아웃 잔에 받아 다시 유모차를 끌고 계산하러 갔다.
"식사는 어떠셨나요?"
"네, 오랜만에 좋았어요."
"아기랑 같이 나오기 힘드시죠?"
"네, 그래도 오늘은 꽤 여유 있는 감동적인 식사였어요."
그랬다.
비록 24분의 짧은 식사였지만
나에게는 240분처럼 느껴진 여유로운 자유시간이었다.
먹을 당시에는 몰랐으나 계산해 주는 직원과의 짧은 대화에서 알게 되었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먹은 스파게티가 감동이었고
런치코스를 모두 맛볼 수 있게 도와준 5개월 그녀에게는 감사했다.
녹차를 마시며
가을공기를 마시며
오늘도 5개월 그녀와 24분 같은 24시간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