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렵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다. 각자의 시간이 있으니 맞추기가 어렵다. 하지만 축하할 일이 생겨서-친구 한 명이 세례를 받기로 해서-모임이 성사되었다. 대모가 되는 친구 하나, 세례받는 친구 하나, 그리고 축하하는 친구 하나-바로 나다.
대모가 되는 친구는 유아세례부터 받아서 성당 활동을 많이 한 친구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일이 있어 냉담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대모 역할을 할 수 있게 고해성사도 하고 이런 저런 성물도 구입하고 준비를 많이 했다. 나와도 꽃다발을 준비할 건지 선물을 어떻게 할 건지 사전에 많은 논의를 거쳤다. 결국엔 잘 모르는 분야를 넘기고 내가 꽃다발을 준비하고 나머지 것들은 대모를 하는 친구가 준비하는 걸로 결정이 되었다.
우리 20살 동아리 모임에서 만났다.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바탕으로 서로의 관심사를 확인하며 그에 대해 토론도 하고 생각을 나눴다. 대학교에서 만난 동기 모임은 10년 20년 그렇게 각기 바쁜 중에도 명맥을 이어 나갔고 1년에 몇 번씩 만나며 근황을 확인하고 맛집을 찾아 다녔다. 각자 생활이 바쁘지만 신년이니까 연말이니까 생일이니까 이유를 달아가며 만남을 계속 했다. 그 중심에는 내가 있다. 나는 이 모임이 좋고 지속되길 원하니까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약속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몸이 약한 경우 감기고 몸살이고 자주 앓는다. 약속을 할 때에는 괜찮아도 당일이 되면 아플 때가 있다. 사실 이런 경우엔 난 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쉴 걸 굳이 밖에 나가서 병을 키우면 안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기 정도이고 참을 수 있다면 만나는 약속을 취소해야 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약속 취소 자체가 어려운 사람이 있다.
오늘 만난 두 명이 그렇다. 아프면 약속을 취소하는 게 맞는 사람과 아파도 어떻게 약속을 취소할 수 있는가 하는 사람이다. 물론 아픔의 개념은 다를 수 있다. 아픈 사람은 끝도 없이 아플 수 있지만 사람들의 아프다는 개념은 각기 다르기에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의미다. 세례를 준비 하며 두 명은 다른 어느 때보다 자주 만났으며 가끔 약속이 취소 된 듯 하다. 쌓이고 쌓여 약속 취소를 당일에 하면 일반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고 일반적이라는 의견이 아파도 약속을 가야 하는 게 맞는가 하는 이슈로 싸움이 번졌다. 하필 크리스마스에 둘이 보는 약속이었는데 하필 한 명은 회사가 일찍 끝났고 하필 한 명은 아침부터 으슬으슬해서 쉬고 있다가 긴가민가 해서 일단 약속을 취소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회사가 일찍 끝난 친구가 전화했을 때 조금 아픈데 나가볼게 했다가 옷을 갈아입다 몸이 아파 열을 재보니 38도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가 일찍 끝난 친구는 이미 약속장소로 가려고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고 버스에서 약속이 취소가 되었다.
나에게는 둘 다 큰 문제가 아니다. 아프면 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일 약속 취소가 되면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결말은 약속은 이제 잡지 말자로 끝났다. 당일에 시간 맞으면 보자고 하며 찝찝하게 끝이 났다.
아팠던 친구는 그 다음 날 다른 친구가 카톡으로 몸은 괜찮은지 물어봤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을 거라 했다. 약속이 깨지는 걸 싫어하는 친구는 몸이 얼마나 아픈지 몰랐고, 아침엔 별 말 없다가 시간이 다 되어 취소하는 건 별로라 더 이상 약속을 잡지 말자 하며 다음 날 카톡을 했다 한다. 목소리가 커졌고 상호 미안하다고 끝났지만 우리 약속의 행방은 묘연하게 되었다.
말 한마디, 그게 어렵다. 상호작용 속에 내가 말하는 것과 받아들여지는 것에 차이가 있다. 내 마음이 닿았다고 생각되도 그게 아닌 경우가 있다. 그래서 말이 어렵고 만남이 어렵다. 이 만남은 지속될 수 있을까. 개인대 개인으로만 만나야 하는 것인지.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