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가방이 꽤 무거울 법도 한데, 6살 둘째가 오늘 가방은 꼭 자신이 메겠단다. 평소 유치원이 끝나면, 가방이 무겁다고 내게 주곤 하는 녀석이 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짐이 많이 든 가방을 신나게 메고 등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아무렴, 그 안에 든 게 보물인데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겠나. 너무 소중하지, 소풍도시락~! 음료수~! 지렁이 쨀리~!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11살 첫째가 전날 나에게 남겨놓고 잔 쪽지가 있어서, 나는 아이를 아침 6시 30분에 깨워야 했다. 평소에는 초등학생이 버틸 수 있는 최대 마지노선인 아침 8시까지 쿨쿨 자곤 하는 아이라서, 깨워도 일어나겠나 의심했다. 혹 일어나게 되더라도 한번 불러서는 안 될 테니, 여러 번 부르기 위해 목소리도 가다듬었다.
그런데 웬걸 아이는 내가 알려주는 시간을 듣자마자, 말 그대로 '한 번에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기분이 싸해졌다. 이 아이가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는 이렇게 날쌔게 움직이는 스타일이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평소에 나와 실랑이를 벌이던 그 모든 것들은 '자기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굼떴던 것이란 말이지, 너?!!
어제는 첫째가 1년 동안 기다리는 학교 축제의 하이라이트, 자신이 기획한 부스를 운영하는 날이었다. 아이가 이번 부스의 콘셉트를 몇 달 전부터 궁리하며, 매 순간을 오늘(행사 당일)인 듯 보냈던 것을 알고는 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이것저것들을 해내겠다며 신난 아이였다. 그리고 어제 학교에 차려진 아이의 부스에 잠시 들렸을 때, 아이가 만들어간 여러 가지 것들은 이미 품절되어 있었다. 그 순간 아이는 상기되어 있었는데, 아이의 그 기분은 아마도 짜릿함이었을 거다.
다시 오늘 아침으로 돌아와서.
나는 한동안, 아니 긴 시간 동안 아침에 벌떡 일어날 '무언가(원동력)'를 찾고 있다.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 잠자다가 눈이 번쩍 뜨일 그것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여기며, 몇 날 며칠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때는 그게 맛있는 아침밥을 먹는 것인가 싶었고,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인가 싶었고, 내가 멋져지는 자기 계발이나 취미생활인가 싶기도 했고, 일에서의 성취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뭐 하나 꾸준히 내가 힘 있게 아침을 맞이하는 동기가 되지는 못했다.
물론, 맛있는 아침밥이나 향긋한 커피, 흥미롭고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들도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긴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위해서는 애써야 했다. 내가 즐겁게 일어날 '그 무언가'를 애써 찾아서 일상에 심어두는 작업은, 마치 '당근'을 매달아 두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 당근의 효염이 떨어질 때마다, 다른 당근을 찾는 것도 힘이 필요하니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런 기대도 목표도 없이, 나는 오늘 아이에게 김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더 자고 싶은 몸을 일으켰다. 주먹밥이나 유부초밥이라는 대안도 있지만, 평소에 종종 먹는 그 메뉴들보다는 '김밥이라는 특별함'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9시 10시까지도 자고 싶은 몸상황이었다. (감기, 너란 녀석 참 나쁘다)
유별날 것 없이 평범한 김밥을 말며 나는 이런 기분이었다. 물 흐르는 듯 김밥을 마는 느낌?
운전으로 비유하자면, 늘 하듯이 그냥 운전을 하는 기분?
김밥이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던 그때의 내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에, 물 흐르듯이 김밥 몇 줄을 촥 말아낸 오늘은 특별하다. 는 것이 '과한 호들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뭐.. 오늘은 비도 오고, 불금하기엔 체력도 딸리고, 기분도 그저 그렇고 하니, 이런 호들갑 정도는 허용해 주는 걸로..?
그리고 어쩌면, 축제부스를 완판시킨 아이의 짜릿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밋밋하고 은은한 성장의 기쁨은 내일 아침에 내가 좀 더 생기 있게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줄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나의 소소한 성장과 성취를 발견하고, 그 기쁨을 충분히 느끼고 흡수하는 순간이 내가 찾던 '아침(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르니 일단은 쟁여놔야지.
*오늘의 감정 [무기력]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