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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an 20. 2021

코로나, 벌써 1년

무엇이 최선이었을까?

 2020년 1월 20일.  믿기지 않겠지만, 오늘이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지 딱 만으로 1년 되는 날입니다.마스크 없이 거리를 다니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해외여행을 다녔던 적이 먼 옛날처럼 까마득합니다.

 단순히 일상의 여유만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곳곳에서 신음을 앓고 있습니다. 저 또한 코로나로 인해 삶이 크게 요동쳤습니다. 환자가 줄고, 단축근무에 임금 삭감에,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4년 간 몸 담았던 직장을 퇴사하고, 이직에 이은 이직 끝에 겨우 제법 큰 병원으로 옮겨 왔습니다.

 코로나로 직장을 잃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2020년 1월 23일, 설을 코 앞에 놔두고 저는 처음으로 코로나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https://brunch.co.kr/@sssfriend/148

 인구 천만 명의 우한시가 봉쇄령을 내렸는데, 한 도시가 마비되는 건 남의 일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신천지 사태가 터지고, 다들 아시다시피 대구는 제2의 우한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AC(after corona)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Christ)가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면, 코로나(Corona)는 재앙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2020년 3월 9일, 대구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풀 꺾인 시점에서 <코로나는 언제 잠잠해질까요?>라는 아래 글을 통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써 보았습니다.

https://brunch.co.kr/@sssfriend/164


 여러 가지 전개 중에서, 1919년 스페인 독감,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중동 메르스 등을 언급하며, "설마 가을에 또?-가능성 높음" 라며 가을이나 겨울이 오면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굳이 의사나 감염병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전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만 검색한다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충분한 병상과 인력을 확보해 놓았을까요?)

<스페인 독감>
<각종 바이러스 질환 월별 발생률>


<한국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

  2021년 1월 20일 현재, 확진자수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 감소된 일일 확진자수가 이미 8월 2차 유행의 정점과 비슷한 수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제 조금 괜찮아졌다."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은 듯 보입니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자리 발생자수에서 시작된 1차 유행이나, 두 자릿수에서 시작된 2, 3차 유행과는 다르게, 세 자릿수에서 4차 유행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까요?  4차 유행의 정점에는 도대체 하루에 몇 명이나 확진자가 나올까요? 지금도 모자란다고 난리인 생활치료센터와 코로나 중증 환자 병상은 충분할까요? 하루 확진자가 삼 사천 명씩 나올 경우에 대한 준비를 해 놨을까요? 저는 다른 것 하나만은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감염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 환자를 볼 때는 강력한 초기 대응이 필요합니다.

 가장 먼저 수액을 들이붓습니다. 3시간 안에 체중 당 30ml의 수액, 대게는 1.5L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잘 모르는 의사는  300~500ml 정도 찔금 주고 맙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패혈성 쇼크는 즉시 중환자실로 내려서 중심정맥 관도 삽입해야 하고, 보호자 설명도 해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닙니다.  경험도 적은 데다, 겁이 많은 의사는 '에이, 좋아지겠지. 패혈성 쇼크 아닐 거야. 일시적으로 그런 걸 거야.' 자기만의 희망 회로를 돌립니다. 안타깝지만 혈압은 잠시 반등했다가, 얼마 안 가 다시 쭉 떨어지고 환자 상태는 더 나빠집니다. 귀중한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죠.

 수액 다음은 항생제입니다. 적절한 항생제를 한 시간 이내에 줘야 합니다. 절대로 늦어져서는 안 됩니다. 한 시간이 늦어질 때마다 사망률이 무려 8% 증가합니다. 무조건 초기에 강력한 광범위 항생제를 투여해야 합니다. 과감하고 빠른 항생제 투여뿐만 아니라, 중단해야 하는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니까, 오래 쓰면 쓸수록 감염이 안 생기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반대입니다. 항생제도 약이기에 당연히 부작용이 있고, 불안하거나 찝찝해서 항생제를 계속 쓰면 오히려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더 강한 세균이 등장하기에 적절한 기간만 쓰고 끊어야 합니다.

 수술도 같습니다. 전신 마취를 하고, 몸에 칼을 대는 게 두려워서, 수술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간단한 예로 수술이 무서워서 맹장염을 놔두면, 결국 터져서 염증이 배 전체로 퍼지는 복막염이 됩니다. 처음에는 구멍 몇 개로 끝나는 복강경 수술에서, 결국 배를 길에 열어야 하는 훨씬 더 큰 개복 수술로 바뀝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강력한 방역 조치를 시행하고, 최대한 빨리 바이러스를 잡고 단기간에 끝냈어야 했습니다.

 초기에 베트남처럼 중국 봉쇄를 실행하지 못했더라면, 적어도 8월 2차 유행이 터졌을 때, 즉시 3단계를 하였으면 어땠을까요?  한국은 사실상 섬이라, 대만이나 호주, 뉴질랜드처럼 완전 봉쇄가 가능합니다. 그러면 일 확진자수를 한 자리까지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적은 확진자수에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도 잡고, 동시에 경제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일별 확진자 수>
<대만, 코로나 일별 발생자수>

 

 하지만 정부는 제 바람과는 다르게 3단계 대신,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2.5단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3차 유행이 시작되자 3단계 대신  '강화된 2.5단계'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이번 3차 유행이 수그러드는 기미가 보이지만, 여전히 확진자수는 세 자리 숫자입니다. 거기다  이번 방역 조치가 성공 이서 환자수가 감소한 게 아니라, 저는 지난주와 지지난주 혹한폭설로 인해 사람들의 활동이 준 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거기다 '2.5단계',   '강화된 2.5단계'로 계속된 방역 조치에 사람들의 체력과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앞으로 더 큰 4차 유행이 오더라도, 이미 지쳐버린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방역 조치도 효과를 발휘하기가 싶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4차 유행이 시작되면, 더 이상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는 상태입니다. ('더 더 강화된 2.5단계' '신종 2.5 단계', 고기집도 아니고 '3단계 같은 2.5 단계'가 나오진 않겠죠? 그렇다고 3단계를 쓸 배짱도 없을테고)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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