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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마모리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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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주 Nov 17. 2020

달팽이

작은, 아주 작은 생명의 죽음


  아이와 낚시 공원에 갔다. 가을 하늘은 동전으로 긁는 즉석복권처럼 평평했다. 신은 태양을 하나 꺼내 쓰윽쓰윽 복권을 긁었다. 반짝이는 잿가루가 바다에 떨어졌다. 가을에는 날씨가 맑으면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분이 좋다. 내가 높은 하늘과 푸른 바다의 조합에 심취해 고개를 쳐들고 있는 동안 아이는 주변 탐색을 마쳤다. 그리고 또래 아이들이 고둥을 잡고 노는 물가로 손목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여느 아이들처럼 바짓단을 걷고, 맨발로 바닷물을 헤쳤다. 작은 바위에 다다라 바다고둥을 잡았다. 내가 큰 바다고둥을 발견하면, 아이는 그걸 떼어내 채집통에 담았다. 고둥을 스무 개 정도 잡았을 때 아이가 해변으로 돌아가 관찰하겠다고 했다. 해변에는 자동차 시트만큼 커다란 돌들이 켜켜이 싸여 돌계단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가 채집통을 내려다놓고 뚫어지게 보다가 말했다.


"엄마, 이거 달팽이 아니야?"
-"달팽이가 왜 여기 있어."
"이거 봐!"
맑은 가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던 나에게 아이가 채근한다. 그제야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돌계단에 콩알탄 크기의 달팽이 껍질이 붙어있다. 명주 달팽이다. 아이는 달팽이를 2년째 키우는 달팽이 전문가다. 달팽이를 발견하는데 뛰어난 소질이 있다. 킥보드를 타고 달리면서 인도에 붙은 달팽이를 발견할 정도다. 달팽이 전문가의 조수로서 2년째 달팽이에게 숙식을 제공해온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메꽃 한 송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달팽이가 맞는데 이 녀석이 어떻게 바다에 왔지?"


"엄마, 속이 차 있는 걸 보니 아직 살아있어. 관찰할래."
아이의 관찰은 때로 아주 길어서 2년째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새 달팽이 식구를 집에 들이고 싶지 않기에 이 바닷가 달팽이가 영영 깨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바삭한 겉껍질이 부숴지지 않길 바라며 깎은 배를 담았던 유리 반찬통에 조심히 달팽이를 옮겨 담는다. 그리고 보온병에서 물을 조금 흘려 내린다.


  우리는 낚시꾼이 모여있는 방파제쪽으로 이동한다. 아이는 금세 달팽이를 잊은 듯 가뿐하게 달려갔고, 조수는 캠핑 의자와 아이스박스를 짊어지고 달팽이가 숨을 못 쉴까봐 뚜껑을 닫지 못한 반찬통을 한 손에 집어든 채 뒤뚱뒤뚱 따라간다.


  낚시 포인트를 정한 아이와 나는 캠핑 의자를 펴서 달팽이 먼저 앉힌다. 그리고 프로 낚시꾼들이 갯바위에 흩뿌려놓은 떡밥을 주우러 갯바위로 간다. 바위에 붙은 축축한 떡밥을 긁어 송편 빚듯 꾹꾹 누르고 한 주먹 가득 모으면 본부로 돌아온다. 아이는 본부석에 있던 달팽이가 깨어났나 슬쩍 살피고는 행동을 개시한다.
"조수, 준비 됐나?"
-'"네, 준비 완료!"


  조수는 아이의 허리춤을 잡고 높이 들어올린다. 아이는 울타리가 쳐진 방파제 아래로 떡밥을 던진다. 조수는 낚시 바늘에 머리를 뗀 작은 분홍색 새우를 끼워넣는다. 꼬리부터 갈고리 모양을 따라 끼운다. 아이는 낚싯줄을 제멋대로 던지고, 또 조수가 엉킨 줄을 풀어 바다 깊이 펼쳐 넣는다.


  입질을 기다리다가, 다시 떡밥 모으러 다녀오길 몇 번 반복하는 동안 새끼 복어 한 마리, 전갱이 한 마리를 잡았다. 우리가 낚시 공원에서 보낸 서너 시간이 신에게는 3~4초와 같았는지 스크래치를 끝낸 그가 지갑에 동전 넣듯 가벼이 태양을 집어 넣는다.
"지원아, 이제 추워져서 집에 가야겠다."
-"응."

  잡은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은 아이에게도 익숙하다. 처음에는 애를 먹었으나 이제는 인증샷만 찍으면 순순히 물고기를 보내준다. 아이스박스에 담은 바닷물까지 내보냈을 때 아이가 말한다.
"엄마, 달팽이는?"


  나는 그제야 달팽이를 응시한다. 달팽이는 여태 깨어나지 않았다. 반찬통 속 달팽이를 손으로 집어 자세히들여다본다.
"달팽이는 죽었어."
-"정말? 정말이야?"
"응, 속이 조금 차 있긴 한데, 이렇게 굳어 있고 반도 안 차 있잖아. 벌써 죽은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연한 슬픔과 안도감이 마음에 스민다.

  아이는 의외로 씩씩하게 망설임 없는 대답을 한다.
"엄마, 달팽이도 던져."
-"응?"
"물고기도 바다로 던졌으니까, 달팽이도 던져."
-"달팽이는 안돼."
"왜 안~~돼!"
아이는 생떼를 쓰기 시작한다. 노련하게 아이를 달래고 귀가하면 좋겠지만 7년째 초보 엄마인 나는 우왕좌왕한다. 아이가 보채는 동안 속을 태우다가 달팽이 던지는 시늉을 한다.
"자, 던졌지?"
-"아니잖아, 손 펴봐. 던져!"
"벌써 던졌어."
-"던져! 그래야 달팽이도 불가사리로 다시 태어나지!"

  나는 홀연 달팽이를 내던졌다. 깊은 바다로 달팽이가 떨어졌다. 아무리 죽은 달팽이라도 바다에 던지는 게 맞는걸까. 바닷물에 떡밥이 풀어지듯 마음에 죄책감이 녹아내린다. '내가 뭘 한 거야?' 제자리에 돌려놓거나 땅에 묻어주었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 시간을 되돌려보며 귀가한다.

  집에 와서 아이를 씻기고, 가방을 정리하고, 저녁밥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달팽이를 생각한다. 집 안의 달팽이에게 날마다 먹이를 주고 물을 뿌려주면서, 집 밖의 달팽이를 내던진 일에 대해.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비일관적인 것만이 일관적이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동물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는 일관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이 말대로 달팽이를 바다에 던지는 게 맞았을까? 달팽이를 땅에 묻어주는 게 오히려 아이의 상상을 가로막는 일은 아닐까? 너무 작은 것들까지 귀하게 여기기 보다 무심하게 대하는 게 훗날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까?'


  연약한 엄마는 아주 작은 생명의 죽음 앞에 마음이 혼란하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아이에게 오히려 배워야 할 지 모른다. 인간 세상에 7년째 살고 있는 아이는 삼겹살과 아기 돼지 삼형제를 구분할 줄 안다. 누가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먹이사슬의 생태계에 살며 나름대로 체득한 것이다. 36년째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나는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동물을 대하는 내 태도를 살펴본다. 다음에 다가올 작은, 아주 작은 생명의 죽음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애도해야 하는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아이가 잠들었다. 몸의 근육도 생각의 근육도 부족한 엄마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아이를 따라 잠자리에 든다. 한 시간이라도 일찍 자는 게 아이와 나에게 이득이다. 비슷한 상황이 또 오면 아마 그때도 되는대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동물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임기응변 하는 것만이 일관적이다.




​사진 속 달팽이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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