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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마모리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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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주 Apr 09. 2021

대청소

헛수고의 아름다움

  

  나는 청소를 좋아한다. 청소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대청소다. 서랍에서 옷이나 책, 그릇 같은 살림살이를 전부 꺼내어 가구에 쌓인 먼지를 닦고 가재도구들에게 알맞은 제자리 찾아주는 것을 즐긴다. 언제부터 대청소를 좋아했는진 모르지만, 살아온 동안을 되돌아보면 어지른 기억이 없다.


  처녀 때는 자취를 했는데 대청소를 하기 위해 주말 중 하루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온종일 집에서 얼마 안되는 살림을 정리했다. 책도 옷도 색깔이 어울리게 줄지어 놓았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대청소를 해왔다. 처음에는 아이를 재우고, 대청소하느라 밤을 지새기도 했다. 뜬 눈으로 자정을 넘기는 일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서는 하루에 한 방씩 청소를 했다. 오늘은 부엌, 내일은 안방 이런 식으로.


  대청소는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한다. 청소는 때때로 육아에 지장을 준다. 아이와 둘이서 주말을 보내야 하는데 금요일 밤에 열심히 청소해서 토요일 아침 늦게 일어난다거나, 대청소 다음 날 아이가 장난감 통을 헤집을 때 은근히 신경이 곤두선다거나 하는 일이다.


  그럴 때면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청소는 육아와 정반대 관계에 있다. 청소 시간을 줄이고,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이성이 말한다. 어쩌면 육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주변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 같다.


  나와 같은 3,40대를 보낸 친정 엄마는 전화를 끊을 때마다 "대충대충 살아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내 대청소에 관한 것이다. 엄마는 내게 집보다 몸을 아끼라고 한다. 청소는 부질 없다는 것이 인생 선배이자 육아 멘토인 엄마의 말이다. 나중에 남는 것은 관절염과 거친 손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대청소를 좋아한다. 아이에게 쏟아야할 체력을 청소를 위해 소모하고, 아름다운 내 몸이 청소로 이르게 낡아가도 나는 청소를 포기하지 않는다. 청소를 좋아하는 내 마음은 분석되지 않는다. 단지 나에게는 대청소를 끝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 있다. 그 기분은 내 삶에 큰 활력을 준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는 사이, 나는 대청소를 시작했다. 아이와 찬바람 부는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날에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옷정리를 하고 옷장 속 먼지를 닦는다.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베란다를 청소할 때면 코끝과 손끝이 오미자처럼 빨개진다. 하지만 이렇게 일주일만 애쓰면 나는 맑은 기분으로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거실과 부엌, 베란다를 청소하고 방 세 개를 남겨둔 청소의 여정 중에 토요일 아침을 맞이한다. 소파 쿠션을 털면서 먼지가 눈처럼 흩날리는 거실을 바라본다. 나는 가구에 먼지 앉는 일이 슬픈 주부다. 이 많은 먼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또 먼저 쌓이는 일에 대한 나의 슬픔은 어디에서 온걸까?


  대청소 사이에 홀로 육아를 해야 하는 오늘 같은 날에는, 일어나자마자 먼지를 털고 책장에 책을 새로 꽂는 나에게 "엄마, 대청소 안했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볼멘소리를 듣는 날에는 그 마음이 내려온 길을 따라 올라가보고싶다. 그 밑바닥까지 다녀온 다음에 열탕에 유리병을 끓이듯, 청소하고픈 내 마음을 소독해 뚜껑을 꼭 닫고싶다. 그 마음이 아이에게까지 이어지지 않고, 내 안에서만 잘 발효되도록.


  어떤 사람은 내 글을 보고 나에게 결벽증이 있다고 말할 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다만 헛수고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변명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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