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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퍼 Nov 20. 2024

서류에서 탈락했다.

자발적으로 퇴사한 지 4개월이나 지나버렸는데,

7월에 퇴사를 했다. 1년 3개월을 다닌 그 조직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첫 출근한 다음날 교육이 있다며 전 직원을 모았다. 외부 회계사가 와서 "사업비 이렇게 쓰면 안 된다"라며 공공기관에서 5년을 근무했던 나는 이해가 안 될 이야기들을 했다.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거였는지, 이미 재직 중이었던 직원들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시스템을 쓰면 간단한 일이었는데, 스타트업에서 그런 시스템을 도입하기엔 쉽지 않은 듯했다. 1년 3개월을 다녀보니 왜인지 알 것 같았다. 


1년 3개월간 고비가 정말 많았다. 원래 프로젝트 서브 매니저로 들어갔었는데 2달 뒤 메인 담당자가 퇴사하겠다고 했다. 고스란히 그 프로젝트는 내 담당이 되었다. 일이 진행되는 플로어는 알고 있었으나 콘텐츠 자체가 처음이었던 나는 스스로 일해야 했다. 내 윗 상사는 뾰족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답들을 주지 못했고, 내가 헤매고 있을 때 길을 알려주지도 못했다. 설상가상 같이 프로젝트를 꾸려갈 다른 동료가 입사했지만 2주 만에 그만두고, 그다음 입사한 분은 일은 못하고 허울만 가득한 사람이었다. 결국 속을 뒤집히던 인턴과 꾸역꾸역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어야 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 지난 화들이 누그러들었다. 이 회사에서 나에게 어떤 보상을 주려는지 궁금해져 연초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속 태우던 프로젝트가 끝났으니 조금은 수월해지려나 싶었는데 회사에서는 바로 짜치는 일을 들이밀었다. 화가 나고 서러워서 울면서 일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책임감으로 사는 사람이라 해내야 했다. 아마도 이런 내 습성을 회사에선 잘 알아서 그 프로젝트를 나한테 밀어 넣었던 거겠지.


회사에서 제시한 보상은 정말 딱 내가 생각한 만큼이었다. 그래도 그만큼은 되니 1년은 견뎌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3개월도 안돼서 또 고비였다. 화가 났다. 그래서 대체 무슨 생각이냐며 상사에게 가서 물었다. 물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이 조직에서 나를 증명해 냈기 때문이었다. 일하는 나로서의 자존감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내가 지난 5년간 공공기관에서 기를 못 폈었구나 싶기도 했고. 아무튼.


그랬더니 다른 보상을 내밀었다. 승진과 팀원관리. 내게 또 다른 책임감이 생겼다. 이 조직에 있으며 나는 내가 안전하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나를 보호해 주는 막이 하나도 없었기에 내 팀원들에겐 그 막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늘 '안전한 환경'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조직 자체가 안전하지 않을 때 나 혼자 안전한 환경을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직의 문제와 개인적 이유로 팀원 3명이 퇴사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프로젝트를 다시 맡게 되었다. 아찔한 기분이었지만 또 하려면 할 수 있었다.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별 수 없어 순응하는 중이었다. 순응하던 중 개인적인 사유로 휴가를 가야 했고, 휴가 중 회사 메신저에서 팀원의 발령 소식을 봤다. 깜짝 놀라 다른 팀원에게 물어보니 한숨 쉬며 프로젝트 자체가 타 부서로 이동됐고, 그래서 팀원도 같이 이동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프로젝트는 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프로젝트였다. 팀원을 관리하는 자리에 앉혀놓고 나에겐 상의도 없이 프로젝트와 팀원을 옮겨버린 회사에 신물이 났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어떻게 통보하는지 궁금했던 건 어느 정도의 믿음이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바보같이.


돌아오자마자 들은 설명은 참 가관이었다. 거기서 결심했다. 중간관리자로 성장하고 싶어진 내게 여기는 아니라고. 보고 배울 관리자도, 나 스스로를 지킬 힘도, 내 팀원들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줄 수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아버렸다. 그래서 바로 퇴사를 꺼냈다. 내가 꺼낸 이야기들에 상사는 "붙잡지도 못하게 얘기하네. 매정한 사람."이라고 했다. 


휴가 중이던 대표는 전화로 내게 "또 다른 곳에 가서 증명하고 성과를 내는 것보다 여기 있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했다. 차분히 듣고 있다가 "고민 많이 했고, 저는 제가 한 말에만 책임지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차갑게 식은 대표는 "네. 회사에서 뵙죠." 라며 거칠게 끊었다. 1년 3개월간 애쓴 나에 대한 배려는 정말이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끊긴 전화에 마음 쓰린 건 또 결국 나였다.


자발적으로 나왔지만 나는 쫓겨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나도, 팀원도, 프로젝트도, 그 무엇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꽤 오래 남았다. 그런 기분이 든다는 내게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는 말은 가장 큰 위로였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문제였다는 게 나만의 합리화가 아닌 객관적 사실인 것 같아서. 


그리고 4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슬슬 다시 일해야 할 것 같아서 채용공고를 뒤적이고, 입사 지원을 두 군데 했다. 한 군데는 이력서를 열람했으나 연락이 없고, 한 곳은 서류에서 탈락했다. 막연히 서류는 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려움이 생기니 또 마음이 흔들린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보다 나의 소리에 집중하기로 했으면서 또 주변을 기웃거린다. 


한 편으로는 겨우 두 군데 지원해 놓고 이렇게 땅굴판다고? 하면서도 별 수 없이 그게 나라는 사실 앞에 또 무너진다. 사실 아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에 후다닥 써서 제출해 버린 서류들이면서. 


왜 우리나라에서는 짧게 이어지는 경력들을 쉽게 여길까. 그 경력들을 위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을 거란 생각은 못할까. 한 조직에 오래 머무는 것도 용기지만, 조직을 옮겨 다니는 게 더 용기라는 걸 왜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물며 머리를 자를 때도 각 개인의 단점과 강점을 보완해서 자르는 게 유행이라던데. 


사실은 내심 불안해져 이렇게 글을 쏟아낸다. 내 탓이 아니었다고 수백 번 적어낸 들, 다시 속하고 싶은 조직에서는 내 탓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어서. 다시 조직에 속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의 쓸모를 증명해내지 못할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내가 필요한 조직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 조직을 내가 알아봐야 하고, 그 조직에서도 나를 알아봐야 하겠지만. 그게 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도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조직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조직을 만나 합류하게 되고 나중에 이 글을 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 


겪어봐야 모든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그나마 지금의 내가 희망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은.

부디 지난날들이 너무 후회롭지는 않길. 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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