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하면 동료들끼리 건네는 말이 있다.
"
선생님, 내년에도 여기 계실 거예요?"
직업 특성상 일 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루어지고 있고, 실제 근속율은 원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학기중에는 내년 근속을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과 머리를 쓰는 우리의 일은 솔직히 지치기 쉬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년 이런 말들이 오가고는 한다.
“올해 까지만 할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쪽 분야는 구직 사이트에 경력 1년 이상이라고 붙여서 공고를 내도 경험이 전무하신 분들이 오시기들 마련이다. 뉴스에서는 구직란이 심하다는데 이 업계는 구인란이 심하다. 그렇게 어렵게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소중한 동료들과 한 해를 지지고 볶으며 지내고 나면 동료들은 자기 나름의 플랜들을 들려준다.
가을이 될 때 마다 늘어가는 나이가 새삼 크게 다가온다. 더 숫자가 커지기 전에, 여러 현실적 이유로 미루었던 도전도 이어가 보고 싶고, 마음이 복잡하다. 대학생때, 서른다섯 살 전에는 국비 장학생을 준비해서 신청해야지 다짐했었는데, 두 아이를 키우고 나니 서른 다섯은 이미 지났다. 이렇게 한 가지 꿈은 폐기 처분이다. 별 같이 수 많던 꿈 중에 하나는, 하나 정도는 이뤄낼 수 있겠지?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라는 동요를 들었을 때, 참 철없이 마음이 울컥 했다. 때로는 가요에서도 이제 시작이야 너 자신을 믿어봐 이런 가사가 들려오면, 십 대들에게 전해지는 격려 인줄 알면서도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라고 믿어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들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또 아이들에 진심을 다하다 보면, 내 안에 심긴 씨앗이 언젠가 만개하는 날이 올까?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장인으로서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참 감사히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
누군가 나를 믿어 주었기에 지금까지 그 촛불을 꺼지지 않고 있다
.
어쩌면 내가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
영어는 지금 잘할 수도 있지만
,
꼭 지금 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도 하다
.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아이들은 언젠가 잘하게 될 것이다
.
언젠가는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과정
,
나는 그것을 지켜보아 주는 한 사람으로 그들 옆에 있다
.
아이들이 나중에 혹 나를 기억하는 녀석들이 있다면 선생님은 늘 나를 응원해 주셨어 라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
내가 이 현장에 있는 시간이 언제까지 일지 불안정한 내 미래가 내 앞에 다가와서 나를 번뇌케 할지 언정 그 해에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전달되지 않을 정도로 든든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한 후 에야 내년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자격을얻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아이들이 1년 동안 성장해서 졸업하고 내 품을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도전을 받고는 한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가? 2년 뒤 그리고 5년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과는 또 다를 그 날들을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경험하며 자발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할까?
이 일을 몇 년 동안 했지만, 초기에는 하루에도 4-5번은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다 줄어들어서 하루에 한 번 할 때도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더 돌아볼 것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그 생각을 할 틈이 없이 지나간다. 지금은 나름의 애착관계를 형성했지만, 초기에 가졌던 의문들은 이 직업 안에서 나를 자라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한 발단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도 이왕 시작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자 애를 쓴 시간이 지났고, 더 업무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직원들에게 더 좋은 조건들을 마련해 주는 회사를 찾아오기도 했다.
경험치가 없어서 더 혼란스러웠던 초기의 기억들을 떠올려 보자면, 일주일에 두어 번, 강요 받지는 않았지만 필요했던 야근을 했다. 야근수당은 없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원래 8시간마다 주어져야 하는 1시간 휴게시간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밤 9시까지 야근을 했다. 3월에는 이 상황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항변조차 누구에게 해야 하는 것인지, 해도 되는 것인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때로는 야근하는 것이 시간 내에 일을 못 끝낸 무능으로 비칠 때가 있고 때로는 일을 더 잘하려고 애쓰는 귀감 되는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으니, 참 어려운 노릇이었다.
처음에 내 바람은 오랜만에 하는 사회 생활이니 이를 꽉 깨물고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말고 많이 경험하고 빨리 배워 성장 하자였다. 그렇기에 9-6 일하는 것 치고는 매우 박봉이라고 생각했지만, 근로계약서 작성했다. 그 때 내가 쓴 연봉보다 낮게 제시하시면서 이쪽 분야 경력은 없지 않느냐고 해서 원래 이런 건가 당황스러웠는데, 새학기에 오니 면접 볼 때 말씀하시지 않았던 셔틀타는 업무 또한 있다 라는 충격이 1년을 가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 오퍼 주셨던 것을 거절했던 나를 수 많이 자책하기도 했던 시간, 그 다음해를 위해 더 날을 갈고는 했다.
이듬해가 되어 구직사이트를 다시 보는데, 대부분 연봉협의라고 쓰여 있다는 지점에서 좌절감이 느끼기도 했다. 어디서 더 좋은 조건으로 대우해주는지 알기 위해 모든 곳에 면접을 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지금이야 동료들이 널리 퍼져 있어서 연봉 협의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공고에서 연봉의 범위 혹은 최저 급여를 공개해 놓는 것이 최소한 구직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라는 마음을 이렇게 끄적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