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대한 개똥철학
꼭 요즘 사회 트렌드라고 할 것 없는 것이
우리 어릴 때 그러니까 30년 전에도 초등학생이 되면 으레
자신의 방을 갖고 책상을 사는 것이
일종의 통과 의식이었다.
나랑 내 쌍둥이 동생도 초등학생이 될 때
h모양의 책상을 갖고 공부가 아니라
서랍 정리에 열을 올렸던 게 생각이 난다.
요즘 책상세트를 산다고 하면 인 당 백만 원은
잡아야 한다. 우리 때와 같이 책상 + 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도 조절 책상, 척추를 생각하는 의자, 눈을 생각하는 조명
USB 포트 설치, 과외선생님 오실 때 펼 수 있는 접이식 상판 옵션
등 세상 좋아진 것이 실감 난다.
(요즘 아이들은 더 좋아진 공부환경 가운데 우리 때보다
더 즐겁게 책상에 앉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일 수 있는데,
아이 전용 책상을 놓아 드리려면 그 아이에게 웬만큼 큰 방
하나를 할애해줘야 하는 것도 고려되는 큰 부분이다.
얼마 전에 내 동생이 집을 보러 다닌 데서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아직 5살인 조카의 방에 책상과 침대를
넣을 수 있는지 고민하며 보더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이방 (침대+ 책상세트)은
솔직히 중학생 이상에게 필요한 세팅인 것 같다.
그 아이가 방에서 혼자 모든 것을 스스로 한다는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되는데,
초등학교 1학년에 방에 혼자 앉아서
열심히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이상할 것 같다. ^^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1학년 되는
우리 아이에게 개인 책상을 사주지 않기로
꽤 오래전에 결심했다.
일단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는 집에서는 엄청 화려한 트랜스포머 책상을 쓰다가
학교에 가면 네모 깍둑 한 작은 책상을 쓰는데서 오는 이질감이
학교에서의 몰입을 방해할 것 같았다.
(나는 홈퍼니싱 회사에 다니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따른 가구 배치 및 사용을 고민한 사람이라서,
아이들이 기관에 다닐 때부터
아이들의 적응과 매일의 모드 전환에 드는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해
최대한 기관(어린이집&유치원)과 집이 이질감이 없도록 세팅을 해왔었다.
그래서 나는 인테리어 잡지나 가구점 팸플릿을 보는 게 아니라
실제 아이들이 원에서 생활하는 환경을 보고 아이디어를 캐치한다.)
그리하여 마치 비행기 1등석에서 customized service를
받는 듯한 책상을 거부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박한 것이라도
1인용 벽보는 책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으실 수도 있다.
그런데, 한 번 우리를 돌아보고 변한 세상을 돌아보자.
이미 십여 년 그 이상 전부터 우리는 어디서 공부를 해왔는가?
20년 전 우리 학생 때는, 깜깜한 독서실에서 밀폐된 공간을 일부러 만들고 공부를 했다.
사실 그러다 보니, 독서실에서 깜빡 잠들었는데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아서
새벽 2시에 영업 마칠 때 무서워하며 집까지 걸어간 적도 많다.
(집에 가서 편하게 잘걸 이라고 투덜거리며 말이다.^^)
어른 들뿐 아니라, 대학생 그리고 고등학생 요즘은 심심치 않게 초등학생들도
스타벅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본다. 꼭 스타벅스가 아니라도 밝고 오픈된
카페에서 더 이상 고립되지 않고 삼삼오오 스터디를 한다.
그리고 독서실이 사라지고 중, 고등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스터디 카페들도
정말 책상도 공간도 오픈된 카페이다. 딱 내 자리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바뀐 자리 혹은 책상에서 공부하는 문화가 생겨 난 것이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곧 중학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대학생이 될 것이다.
중학생 아니 그 이후에도 쭉 오픈된 공간에서 공부를 하게 될 친구들인데
왜 초등학생 때는
벽 보고 혼자 책상에 앉아 공부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혼자 벽보고 하는 게 집중이 잘 될까?
우리 학창 시절 돌아보면, 우리도 방에서 문자 보내고 만화책 보고 낙서장 쓰다가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았는가?
외국 대학의 도서관들은 우리나라처럼 정숙이 아니라
시끌시끌한 토론문화가 형성돼있다는 애기를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었다.
벽보고 공부하는 게 길들여 저서 그렇게 해야 집중을 잘하는 친구에게 기대하는 성공이
외국대학에 가는 것이라면, 더더군다나 재고해 보아야 할 안건이다.
우리는 시끄러운 카페에서 그 시끄러움을 즐기며 공부를 한다.
삶은 우리가 언제나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 줄 수 있었던 조용한 내 방에서
집중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시끄러움 속에서도 집중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래서 우리 집은 개인 책상이 없다.
내가 이름 붙여준 책탁 이라는 물건이 있다. 책상+식탁이다.
그냥 길쭉한 카페나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책상이다.
이*아의 비우르스타라는 제품인데 최소 140cm에서 최대 220cm까지 늘어나는 확장형 테이블이다. 이 책탁을 고르는데 정말 몇 달을 심사숙고했다. 이 제품의 다음 단계는 260cm까지 늘어나는 것이 있다. 260cm를
놓아도 집이 좁아진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책탁은 무조건 큰 것을 추천한다.
220cm도 가족 네 명이 모여서 자기 책들을 펴기 시작하면 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일단, 개인 책상이 없으면 또 다른 장점은 가족들이 책탁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어서 자주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이가 내 앞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틀리나 안 틀리나 실시간으로 지켜보자는 것 아니라, 가계부를 쓰더라도
아이 옆에 앉아 있으면 아이는 엄마도 공부하는구나 나도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집 사진 같이 거실 정중앙에 2미터가 넘는 책탁을 논다는 것은
쉽게 나올 수 없는 구조이다. 일단 TV가 없고, 소파가 없다. 둘 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닌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의도적으로 버리게 되었다. 일단 TV 없이 산 지는 몇 년 되었고, 소파는
이번에 이사 오면서 버렸으니 없이 산지 백일 좀 넘었는데, 소파가 없으니 더 책탁으로 모여들게 된다.
아무래도 소파가 있으면 푹신한 곳에서 일어나지 않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핸드폰으로 시간을 쓰게 되는 구조라서 과감히 소파를 버렸다. 그래도 새벽에 책 보는
나를 위한 의자는 하나 남겼는데, 낮에는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다.
책탁과 앉으면 독서해야 될 것만 같은 의자로 거실 재편을 완료하고 또 고민한 것은 그래도
자기 물품 및 학습지 정리 습관 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서랍장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때 서랍 정리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게 생각이 나서, 정리함도 책상처럼 오픈형태로
시도해 보자 하여 아래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
아이 당 하나 씩 자기만의 카트가 있어서 공부할 때는 책상 옆으로 끌고 왔다가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학습지를 책장에 꽂아놓으면 뭐가 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고, 잘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서, 매일 하는 것들을 보이게 카트 위에 올려놓았더니 자신이 찾아서 하게 되었다. 카트를 끌고 다니는 재미는 덤이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거실의 서재화 아니 도서관화 완성하는 아이템을 소개하자면,
이 녀석이다. 북트럭. 이것도 엄청난 고민 끝에 산 녀석이고, 이 녀석은 정말 강추이다.
물론 아이들이 책을 읽고 여기에 아름답게 꽂아 놓는 습관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북트럭의 존재만으로 "여기는 공용공간이고, 너 마음대로 어지를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아이는 자기 방 안에 안락하고 멋진 책상이 있었다면 마음대로 던져놨을 책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쓰면서 보니, 사진에 있는 거 다 사면, 책상세트만큼 되겠어요 하실 수 있겠지만, 1학년에게 책상을 사줄 것인가를 몇 년 전부터 고민하고 갑자기가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장고 끝에 들여온 녀석들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개똥철학을 가지고, 책상을 구매하지 않은 채 1학년을 시작한다.
아이가 나중에 더 커서
친구 집에 가서 보고
"엄마, 난 왜 내 책상이 없어?"라고 말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전에 녀석이 가족 모두가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하며 서로의 삶과 감정 공간을 공유하는
'우리 집'에 빠지게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