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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Sep 22. 2023

365일의 소회

갈 길이 멀지만 많이도 왔다

아이가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지 꼭 1년이 되었다. 대개 어떤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365일)이 지났음을 기억하는 일은 기념의 의미다. 그러나 내가 아이의 우울증 투병을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을 기억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9월 22일로부터 정확히 365일이 된 오늘을 나는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처음 병원을 찾은 날일 뿐이지 딱히 발병일이라 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본격적인 시작의 날이었기에 이 날은 특별했다.


그렇게 무려(?) 만 1년이 흘렀다.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열일곱 살 아이에게는 더욱 그랬다. 처음 아이의 투병 사실을 알렸을 때 주위에서 들었던 가장 많은 말은 이랬다.


“어머, 제일 중요한 시기에 몹쓸 병에 걸려서 어째!”


대한민국에서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가 고등학생 시절이다. 이때는 사춘기도 오면 안 되는 시기란다. 왜들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는바 아니고 딱히 반박할 말도 없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이 거북했다. 언제나 값싼 동정의 말은 뒤끝이 안 좋았다. 그저 아이의 쾌유만 빌어주면 될 일을 우리는 오지랖을 떨어 상대의 마음을 할퀴어버린다. 열일곱 살 아이에게는 매일매일이 중요한 시기다. 그렇게 중요한 시기라서 이런 몹쓸 병에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


아내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은 자신의 아이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아내가 굳이 교장에게 아이의 이야기를 해야 했던 이유는 3년씩이나 맡아 온 부장 보직을 아이 간병을 이유로 그만두라는 나의 강압 때문이었다. 교장은 아내의 사정에 깊게 공감을 하면서 온갖 아는 척을 해댔다. 아내가 그 이야기를 전해줄 때 나는 역정을 냈다. 우울증은 코로나19가 아니고 신장결석이나 맹장염이 아니다. 원인과 증상과 치료와 예후가 각기 다르다. 함부로 비교해서 조언해 줄 것이 없다.


나의 큰형수도 오랫동안 우울증 투병 중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큰형도 자신의 경험을 쏟아냈다. 그분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기 없었지만 나는 묵묵히 들어주어야 했다. 내 어머니는 더하셨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울면서 아이를 안아주셨다. 아이는 할머니의 울음에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그 뒤로 어머니는 우리를 볼 때마다 다 나았냐고 물으셨다.(ㅠ.ㅠ) 아이의 외할머니는 과거 교직생활 중에 심리상담 교육을 받으신 걸 들먹이며 현대병이라는 말만 수십 번을 반복하셨다. 자기도 익히 들어 아는 병이라는 말일 뿐이었다.


대체로 반응들이 이랬다. 아이의 우울증은 장안(?)의 화제였다. 이렇게 아이의 병이 세간의 가십거리처럼 소모되는 걸 나는 참기 어려웠다.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의 투병 사실을 최대한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싶었지만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는 주위의 공감과 위로를 원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아이의 기대와 달랐다. 그들은 공감 대신에 근심을, 위로 대신에 어설픈 정보를 전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우울증에 무지했거나 지나치게 해박했다. 선무당처럼…


내가 당당하게 아이의 투병사실을 외부에 알린 것은 간병을 위해 직장에 휴직을 신청했을 때뿐이었다. 숨길 일도 아니었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되려 직장 동료들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들의 행태가 마뜩잖았다. 분명 내 앞에서는 말을 아낄 테지만 어디에선가 수군거릴 게 뻔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무렴 어떠랴. 내 아이를 살리는 거 외에는 난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별스럽게 각별한 인간들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투병 6개월을 넘으며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결단을 내려 휴직을 했고 다시 6개월이 흘렀다. 아이는 위센터의 일시보호 프로그램을 종결하고 다음 달부터 다시 학교에 간다. 복교를 위한 트라우마 상담치료를 지난주부터 시작했다. 6개월 전처럼 학교 문턱도 넘지 못하는 일은 없겠지만 온전히 학과수업을 소화하는 건 아직도 요원하다. 그렇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이만큼 왔다. 6개월 동안 이만큼 왔으나 남은 6개월 동안 가야 할 길은 훨씬 더 멀다.


내가 복직하기 전에 아이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련다. 앞으로의 6개월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도 그랬다. 조금 나아지나 싶다가 한순간 역주행하는 일이 무시로 반복되었다. 갖은 노력을 해도 안되던 일이 한순간에 회복되기도 했다. 그렇게 이만큼 왔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될 것이다. 좋은 쪽이든 아니든 내 의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직 내 아이의 우울증이 완치된 것도 아니고 아이가 일상을 회복한 것도 아니지만, 어쭙잖게 내 경험을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 아이가 우울증이라고? 그럼 이 두 가지만 꼭 명심해. 첫째 느긋해질 것, 둘째 너그러워질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아이가 이겨낼 때까지 지켜주는 것 말고는…”


우울증 완치 환자의 50퍼센트는 재발한다. 재발한 환자의 75퍼센트는 또 재발한다. 그다음은 백 퍼센트에 육박할 것이다. 즉, 첫 재발을 막지 못하면 당신의 아이는 평생 우울증을 인고 살게 된다. 물론 평생 우울증을 안고 사는 방법도 터득해야 한다. 만성질환도 관리만 잘하면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지 않던가. 이렇게 느긋해지고 또 너그러워지면 된다. 그렇게 지켜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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