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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Nov 01. 2023

우울증과 신체증상

우울증의 증상은 온몸으로 온다

어제 아이와 오전부터 병원에 갔다. 아침마다 잔기침이 나고 숨을 쉬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엊그제는 노골적으로 병원진료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 요구는 하루도 안되어 실행되었다. 아프다는 아이를 곧장 병원에 데려가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전에도 한번 언급했던 것 같다. 우울증은 다양한 신체증상을 동반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딱히 의학적으로 원인이 소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몸에 대한 걱정이 많은 아이는 언제나 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되었다. 아이는 3~4년 전에 갑각류 알레르기가 발현되었고 두 차례나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작년 3월 코로나19 확진을 받았을 때에는 약물 알레르기까지 동반되었는데 의료대란으로 응급실을 못 구해 다섯 시간 이상을 구급차에 대기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다. 그 경험이 아이에게 병원에 대한 트라우마와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동시에 만들어 버렸다. 병원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조금만 몸의 이상을 느껴도 병원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충돌은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냈다.


아이는 코로나19를 겪은 이후로 자주 호흡곤란에 대한 고통을 호소했고 결국 기관지염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 환자에게 호흡곤란은 주로 공황발작이 올 때 겪는 과호흡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공황발작에 따른 과호흡과 알레르기 쇼크로 인한 기도 폐쇄성 호흡곤란을 모두 겪었다. 거기에 더해 코로나19로 기관지염에 의한 호흡곤란까지 경험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호흡이 불편하면 여러 가지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아이는 조금이라도 호흡이 불편할 때마다 천식 흡입기 이야기를 했다. 결국 어제 진료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흡입기 처방을 받았다.


급성 천식 환자들이 사용하는 흡입기는 일시적으로 기관지를 확장시켜 호흡을 원활하게 해 준다. 보통 응급 상황에 사용하는 기구라 어지간한 경우엔 처방받기 어렵다. 아이는 폐기능 검사에서 정상인보다 폐활량이 조금 낮은 걸 제외하고는 특별히 호흡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도 흡입기 처방을 부탁했고 의사는 응급용이 아닌 예방용 흡입기라는 것을 처방해 주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아침마다 잔기침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아이는 오늘 아침 흡입기를 사용하고는 드디어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했다. 플라시보 효과든 뭐든 어떤가, 증상이 나아졌다면 그만이다.


이 밖에도 아이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 이후 체중이 15킬로그램은 족히 늘었다. 흔한 증상이다. 약 부작용에 더해 칩거생활의 결과다. 입맛이 없어지는 아이를 위해 댕겨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인 탓도 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다. 키가 186센티미터인 아이는 90킬로그램을 훌쩍 넘겨 버렸고 허리, 등, 어깨, 목, 무릎, 발목까지 성한 곳이 없다. 날마다 이곳을 주물러주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도수치료에 추나치료 등 수시로 병원에 다녀야 했다. 다행히 우울증 약을 줄인 이후로 몸의 경직은 한결 나아졌고 활기를 되찾은 아이는 가벼운 산책을 시작으로 운동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는 휠체어, 목발 한쌍, 지팡이 3종에 무릎보호대만 종류별로 세벌은 족히 구비되어 있다. 휠체어에 목받침이 없어 기절했을 때 목을 가눌 수 없다고 하여 해외배송으로 탈착형 목받침대까지 구매하였다. 이 정도로 끝나길 다행으로 여기는 이유는 척추나 무릎에 MRI나 CT 같은 고가의 검사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전에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공황발작인 아이에게 뇌졸중이 의심된다며 MRI를 찍게 한 이후로 아이도 무턱대고 병원을 고집하지는 않게 되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신체의 다양한 통증은 흔한 일이다. 무조건 무시할 일도 아니지만 증상에만 집중해서도 안된다. 중요한 건 아이의 호소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말이 쉽다. 3년 간병에 효자가 없듯이 누군가를 케어하는 일은 느긋함과 너그러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누구보다도 조급하고 인색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며 지내고 있다.  곳간이 비어가는데 인심이 후해질 리 없다. 자식의 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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