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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Sep 19. 2024

저보다 그 애를 더 사랑하는 건가요?

에티오피아 커피

오늘은 뭘 비워 볼까 생각하다

'작가의 서랍'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지루한 아픔과 끝나지 않은 슬픔이 항연인 그곳...


굳이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잔뜩 쌓여 있다.

굳이 다시 읽어보고 싶지 않은 그런 끄적거림들이 가득하다.


그냥 사그리 지워버릴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여지껏 비우지 못한 곳이다.


오늘은 뭐 하나 지워보겠다고 야심 차게 들어왔는데...


글쓰기 대신 비우기를 하겠다는 다짐은

또 어디론가 가버리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이 일을 

발행된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니 기억도 안 나는 아픔 속에서도

너는 언제나 나에게 사랑을 주었고,


다시 읽어보고 싶지 않은

그런 슬픈 끄적거림 속에서도

너는 항상 나를 위로해 주었으니까...



이건 잊어버리지 말고 계속 기억해야 하니까!

 



 





일요일 아침,

아침을 먹고 난 후 커피 머신 앞으로 갔다.


그저께 배달 온 캡슐 박스를 보니 기분 좋다.




"엄마가 사랑하는 에티오피아 커피 한잔 해야겠다."



소파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던 딸아이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소리친다.



"저보다 그 애를 더 사랑하는 건가요?"


"아니, 커피 중에서. 어린이 중에서는 oo를 제일 사랑하지."



'커피 중에서, 어린이 중에서'라고 한 건

아이에게 배운 것이다.




6살 아이의 질문은 현명하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여느 어른들처럼

대답하기 곤란하게 질문하는 것이 아닌

"엄마, 엄마는 어린이 중에는 누가 제일 좋아?

어른 중에는 누가 제일 좋아?"

이렇게 요즘 아이는 매일 밤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는 중이다.



이런 아이에게 지난 날,

"엄마가 좋아?, 뱃속 동생이 좋아?"

물었던 철없는 엄마는 깊이 반성하며

씁쓸 달콤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들이킨다.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몰라봤다.

두 번의 유산 후에야 알게 되다니!

이미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 ♡


내 곁에 있는 이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둘째를 가지겠다고 신랑에게 악다구니를 쓰고,

아빠 피곤하게 한다고 딸아이는 미워했었다...




2022년 1월에 남긴 2021년 7월의 기록을

2024년 9월에 발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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