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도, 끝에도. 커피가 있었다. 그리고 당신도.
메뉴명 : Fall in love coffee
설명 : 부드러운 목넘김과 달콤한 향이 인상적인 커피로
붉은 설탕을 가득 넣어 뜨겁고 진하게 마십니다.
부작용 : 심장 박동이 지나치게 뛰고
얼굴이 지나치게 새빨개질 수 있습니다.
시기 : 사랑을 시작할 때, 서로에게 푹 빠졌을 때
맛볼 수 있는 시기 한정 커피 입니다.
메뉴명 : Good bye coffee
설명 : 씁쓸하고 묵직한 맛이 인상적인,
차갑고 뾰족한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아이스 커피입니다.
부작용 : 카폐인이 많이 들어 있어
밤에 잠 못자고 뒤척이다
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시기 : 사랑이 끝날 때, 서로에게 이별을 이야기할 때
맛 볼 수 있는 시기 한정 커피입니다.
예전에 잠깐 커피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 케냐AA니, 에티오피아니, 원두를 하나씩 갈아
맛보여 주시는데 저는 커피의 맛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시큰둥하게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맛때문에' 혼자 커피를 먹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을 때 커피는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커피'를 떠올리면 함께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생각나곤 하죠.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연인과는 많은 커피를 마시게 되요.
수없이 마셨던 커피 중에서도 시작과 끝의 커피가 인상적으로 남네요.
사랑을 시작하고 싶을 때.
밥먹자고 하긴 부담스럽고 뭔가 이야기는 하고 싶을 때
나는 아직까지는 덜 친한 당신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죠.
"커피 한잔 할래요?"
그때의 커피는 설레는 마음만큼이나 달콤하고,
어찌할바 모르는 내 마음처럼 뜨거운 맛.
사랑을 끝내야 할 때.
망설여지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나는 조심스레 물어보죠.
밥먹자고 하면 체할 것 같고 아무런 핑계없이
만나기엔 부담스럽거든요.
"커피 한잔 할래요?"
그때의 커피는 쪼그라든 내 마음만큼이나 씁쓸하고,
식어 버린 우리의 마음처럼 차가운 맛.
*
이처럼 어떤 원두이건 어떻게 만들었건간에
내게 커피의 맛은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의 맛이었어요.
그동안 함께 머금었던 커피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함께 머금었었지요.
비록 그 시간이 지나갔다하더라도,
그때 마신 커피가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그 시간 또한 나의 일부가 되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달디단 시작의 맛이거나
쓰디쓴 끝의 맛이거나 모두
의미없는 시간은 없었다, 라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