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 뿌리는 내리는 중.
책을 치열하게 읽는 이유.
책을 치열하게 읽는다. 누구도 모른다. 홀로 앉아 조용히 읽으니, 읽는 줄도 모른다. 최근에야 읽고 잃어버리는 일이 아까워 인스타그램에 서평을 남긴다. 좋은 문장을 새기고 생각을 남기니 잊히는 속도는 더디다. 독서는 참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처럼 보인다.
다른 취미와 다르게, 증명할 길도 여의치 않다. 운동을 한다면 기록이 눈에 띄고 탄탄한 몸이 보인다. 그림은 작품이 남고, 음악은 즉각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취미는 자격증을 따는 일이 아니니 증명받을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지만. 독서를 한다는 건 뽐내기 위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타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할 때가 있다.
아는 이 없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는다. 치열하게 읽으려 노력한다.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110 권을 읽었다. 아침 시간을 쪼개 읽고, 퇴근한 뒤 읽었다. 독서를 치열하게 하다 보니 떠오른 단어가 있다. 바로 뿌리. 보이지 않은 곳에서 땅을 뚫고 내리는 뿌리다.
거대한 나무가 있다. 정말 멋지다. 큰 그늘로 사람들이 쉬어가고, 풍채만으로 주위 있는 나무를 압도한다. 위기가 온다. 바람이 불고 비가 들이친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 큰 나무는 육중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다. 몸에 비하여 뿌리가 얕았던 모양이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같은 위기를 겪은 보잘것없는 나무가 있다. 거대한 나무와 다르게 버텼다. 그 나무는 성장이 더디다. 만든 그늘은 작고 모양도 그리 이쁘지 않다. 생채기 때문인지, 자주 부러진 가지 때문인지, 울퉁불퉁하다. 보기에 썩 좋지도 않다. 같은 위기에도 보잘것없던 나무는 가지 몇 개만 부러지고 살아남았다. 꺾어진 가지 옆으로 다시 싹이 돋아난다. 나무는 뿌리가 무척 깊다.
책을 읽는다는 건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책을 읽는다고 단박에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서서히 스며든다. 위기를 마주해야 진가를 발휘한다. 책을 읽다 보면 힘들기도 하다. 생각하지 않은 미지의 땅을 뿌리가 뚫고 가는 일처럼. 힘겹게 내릴 뿌리에서 날 지켜내는 물도, 영양도 더 많이 뽑아낸다. 치열하게 읽지만 아무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자신도 모른다. 변화는 극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위기가 와야 비로소 알게 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다만, 독서는 날 변화로 이끈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알아준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다고 뿌리를 내리지 않는 건 아니니 말이다. 책이 날 날아가지 않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잘 보이는 곳에 둔다. 위협 속에 가지나 부러질 수 있다. 그래도 뿌리가 있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죽지 않았다면 새싹이 돋고 다시 나뭇가지가 자라날 테니 말이다.
언제나 올 수 있는 위기를 위해 책을 읽으며 뿌리를 단단하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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