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머니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 장염은 자주 어머니 배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화가 난 장을 잘 달래려고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니 한층 더 쇠약해지신다. 그럼에도 밥을 하시고, 일을 하시니 마음이 불편하다.
마침 추석 맞이 선물이 아버지 손에 무겁게 들려왔다. 바로 인삼. 황금빛의 보자기에 싸여있는 자개농에나 있을 법한 은은한 빛을 내는 상자에는 인삼이 한가득이었다. 어머니는 인삼을 우리가 다 먹을 수 없어 고민하다 일부를 아랫집 어르신으로 내려다 보내셨다. 그래도 남은 인삼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시다, "인삼을 꿀에 재우자"라고 하셨다. 내게 떨어진 임무 '잘 씻어라'.
인삼과 칫솔
인삼을 재우기 위한 3단계는 씻기, 말리기, 자르기 정도겠다.
내게 들린 건 더 이상 칫솔의 기능을 상실한 칫솔과 흙이 잔뜩 묻은 인삼이었다. 단순 노동이 예측되니, 바로 휴대폰으로 티빙을 켜고는, 예전에 봤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켰다. 쓱싹쓱싹 흙을 꼼꼼히 제거해 냈다. 한 25분쯤 지나니 어느새 흰색 살을 들어낸 인삼이 한가득 쌓였다.
깨끗해진 인삼
물기를 가든 문 인삼을 베란다에 널어놨다. 이제는 마를 시간.
아버지가 늦은 시간에 퇴근하시고 돌아오셨다. 씻고 나오신 아버지는 널린 인삼을 보시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 도마와 칼을 내어오셨다. 조용히.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얇게 잘라낸 인삼 조각들이 병을 채운다. 세 개의 유리병을 가득 채운 후에야 아버지의 또각 소리를 멈췄다.
인삼의 조각들, 재워진 인삼
인삼 조각이 반 정도 찬 병에 꿀을 한가득 채워 넣었다. 이제는 인삼이 재워지는 시간이다.
부자가 인삼을 재우는 까닭
부자가 인삼을 재우는 까닭은 어머니의 건강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가 건강해지시길 바라는 마음을 꺼내 깨끗이 닦아 옆에 두곤 인삼을 닦았다. 환하게 들어낸 내 마음과 인삼을 바짝 말리는 시간을 거쳐, 아버지는 늦은 밤임에도 도마를 꺼내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인삼을 자르셨다.
인삼을 잘게 자른 건, 아마 낯간지러워 전달하지 못한 마음 한 조각을 몰래 넣기 위해서는 아닐까?
그렇게 부자의 마음이 병에 담겨 재워지고 있다.
부끄러워 직접 말하지 못한 마음이 잘 재워지길.
재워진 마음이 어머니에게 전달되길.
그 마음이 어머니의 건강에 도움이 되길.
민망하다는 이유로, 다음에 하면 된다는 이유, 내 마음을 알 것이라는 이유로 전달하지 못한 말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