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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an 29. 2024

아슬아슬한 여행

어슬렁거리는 즐거움


  나는 아이와 함께 동네를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일단 밖으로 나가는 편이 좋다. 집에서는 견디지 못할 일들도 밖에 나오면 너그러워진다. 먼저 놀이터로 간다.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도 타고 모래놀이도 한다. 숨바꼭질을 몇 번쯤 한 뒤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고양이 가족이나 둥지를 만드는 까치가족을 만난다. 그들이 숨어 사는 하수구 구멍을 발견하거나 신중하게 나뭇가지를 고르는 순간을 포착하기도 한다. 지칠 때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며 하늘을 보면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다. 몸도 마음도 꽉 차게 보낸 기분 좋은 하루다.


  이따금 가보지 않은 길로 떠나는 날도 있다. 낯선 길로 들어선 순간부터 더 이상 이곳은 우리가 알던 동네가 아니다. 돌, 나무, 꽃, 작은 오솔길, 벤치, 공원, 운동장 트랙, 처음 보는 식당과 카페. 새로운 풍경 안에서 아이와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이 시간을 동네 탐험이라고 부른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커다란 나무는 어떤 날엔 갈색곰이 되었다가 낙타가 된다. 공원에서 발견한 커다란 돌은 파도에도 끄떡없는 배가 된다. 신기한 모양으로 뒤엉킨 꽃들이 만드는 그림자는 우리를 위협하는 마녀로 변한다.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지고 모든 풍경들은 동물이 되었다가 사물이 되었다가 사람이 된다. 둘이서 떠나는 흥미진진한 모험의 시간이다.


  동네 탐험을 즐기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책이 있다. 앤 조나스 작가의 <아슬아슬한 여행>은 학교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두 아이의 상상 속에서 새롭게 보이는 순간을 재미있게 표현한 책이다. 아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아슬아슬한 여행을 떠난다. 두 아이의 눈에는 나무가 기린과 나무늘보로 보이고, 계단은 코뿔소처럼 보인다. 세탁소에 쌓여 있는 빨랫감들은 바다동물이, 벽에 달라붙은 담쟁이덩굴은 도마뱀 무리가 된다. 이 책을 발견한 순간 깜짝 놀랐다. 우리가 평소 산책을 하며 느끼던 감정들과 풍경 속에서 발견했던 동물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느끼던 즐거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천히, 느리게, 마음껏 상상할 여유가 있어야 볼 수 있는 것들.


  아이와 함께 걷다 보면 자주 멈추게 된다. 갑자기 쭈그리고 앉아 개미도 들여다봐야 하고, 이 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개미집도 찾아야 한다. 그뿐인가. 비둘기 뒤도 쫓아야 하고 까치도 따라다녀야 한다. 털썩. 아이와 함께 땅에 주저앉으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인다. 늘 보던 놀이터의 나무도, 담벼락도, 의자도 색다르게 보인다. 조금 낮아졌을 뿐인데 왜 이리 다른지. 어쩌면 이 그림책의 작가도 나처럼 아이들과 땅바닥에 앉아 주변을 구경했던 게 아닐까. 어떤 날엔 가보지 않은 길로 모험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되도록 땅에 가깝게 앉아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 언젠가 어린 시절의 나도 보았을 세계. 마음껏 상상하고 신나게 찾아냈지만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린 세계. 내 마음에 가득했을 동심의 세계를 그림책을 통해 본다. 잠시잠깐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 마음을 되찾을 순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림책은 그렇게 내게 어린 시절을 되돌려 준다. 내일은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어깨를 펴고, 단단하게 옷을 챙겨 입고, 아이와 아슬아슬한 여행을 떠나야겠다. 계절은 여름, 우리가 떠나는 곳은 열대 우림의 정글로.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우리만의 탐험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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