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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라] 가족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등장할 저의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by 조현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가족들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내 동생은 남들보다 조금 느린, 느린 별에서 온,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이다.


* 동생 : 조 율 (30대)

'조 율(=밤톨이, 혹은 토리)'은 본명은 아니다.

마치 깎아놓은 밤톨같이 반짝반짝 똘똘하게 생긴 아이.

그리고 밤을 매우 좋아하는 밤 율.

남들보다 많이 느리다. 한 몇십 년쯤? 마치 10년에 한 살씩 자라는 것 같은 아이이다.

동생은 자폐장애와 지적장애를 복합으로 가지고 있는 발달장애인이다. 3살에서 4살 정도의 지능과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보기에는 꽤 괜찮은 훈남. 키도 크고 덩치도 좋다. 그렇지만 하는 짓은 딱 3살. 요새 조금 커서 미운 4살엔 도달한 듯싶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곱지 않는 시선들을 갖고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가끔 있지만, 그냥 우리 가족에겐 귀여운 막내아들일 뿐이다. 미운 4살이라 가끔은 고집을 피우기도, 떼를 쓰기도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내 동생이다.

동생의 시간의 80%는 '하하하' 웃고 있다. 늘 스마일. 그리고 10%는 짜증을 동반한 칭얼거림, 5%는 불안을 내재한 무표정, 4%는 강박에서 비롯된 고집부리기, 마지막 1%는 '화'를 낸다. 그러다 보니 동생을 돌보아주시며, 도움을 주시는 많은 선생님분들이 동생을 좋아한다. 순하고 잘 웃으니까.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80% 이상을 웃고 있긴 어렵다. 동생은 그러나 웃고 있다. 세상이 늘 즐거운 아이. 1%의 화가 걱정되긴 하지만, 화내는 건 5분 이상 가지 않는다.

두 달 살이 했던 제주도에선 무려 100% 꽉꽉 채워 기쁘고 신나기만 한 동생이었다. 앗. 떠오르는 몇몇 순간을 제외하고.

(그러니 잘 좀 봐주세요. 발달장애인들은 여러분을 헤치지 않습니다! 가끔 기사에 댓글, sns에 게재된 글들은 무시무시하더라고요. ㅠ 우리 형제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잠재적은 범죄자도, 음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랍니다.)


* 나 : 조 현 (30대)

'조 현'은 본명은 아니고 필명.

세상에서 가족이 가장 좋은 비혼자이자, 철없는 딸내미.

가끔 동생이랑 수준이 비슷하게 노는 것도 같고. 동생과 영원히 함께 살고 싶은 누나.

동생이 누나에게 의지하는 건지 내가 동생에게 의지하는 건지 이제는 모르겠다.

나에게 가족은 때론 무거웠고, 언제는 날프고 아프게도 했다.

하지만 동생이 80% 웃고 있다면 난 80%는 긍정으로 차있다. 자주 하는 말은 "오~ 이 정도면 다행인데?"로, 어떤 순간이든 긍정으로 넘길 수 있다. 가끔 동생이 화낼 때 같이 소리 지를 때도 있지만.

그리고 비밀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사실은 매우 예민하다. 주변소음, 주변 시선,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매우 기민하게 살핀다. 그래서 본인은 늘 피곤하다. 누구나 그렇듯.


"발달장애인의 비장애형제가 긍정적이고 철없으면 안 되는 건가?"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비장애형제에도 편견이 있다. 아마도 늘 진지하고, 그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밝은 편이다. 학생생활기록부에도 늘 "밝고 긍정적이며"가 항상 따라다녔으니까. 낯선 이들까지 아우르는 외향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너 참 밝구나!"라는 말은 종종 듣는다.


나는 비장애형제들을 위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오프라인 모임에도 종종 참여한다.

우린 웃고 떠드는 모임을 자주 한다.

비장애형제들은 남들이 겪어보지 못할 무게와, 걱정을 가지고 있긴 하다. 그래서 힘든 부분도 많고 어두운 부분도 있다. 그래도 다들 잘 웃고 잘 떠든다. 때론 철없기도 하고 때론 가볍기도 하다. 장애형제가 있다고 해서 늘 그늘이 있는 건 아니다.

("아픔이 있을 거야. 그늘이 있을 거야. 날카로운 부분이 있을 거야." 하는 등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겐 장애가 있는 형제가 있지만, 저희는 밝습니다. 비장애형제라고 다른 눈으로 보시면 안 됩니다!)


* 부모님 (60대)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해오신 평범하고 성실하신 부모님.

나의 밝음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F인 아버지와 T인 어머니 (MBTI를 좋아하진 않지만 대략 90% F와 100% T 셔서 이보다 명확한 설명은 없다.)


사람들은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님은 늘 삶에 지치고 힘드실 것 같은 편견이 있다. 내가 당신들의 힘듦까지 감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삶에 지치고 힘드셔서 뾰족뾰족한 모습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뭐 매일매일 오늘도 "가방이 여기 있네. 없네. 어디에 두었네. 못 찾네.", "모자를 쓰네 마네" 같은 사소한 문제로 투탁 투닥 하시긴 하지만. 참 티키타카가 좋으신 두 분이다. 오늘도 투닥투닥인지 다툼다툼인지 어쨌든 티키타카의 하루 할당량을 채우신 두 분이다.





우리 가족은 특별한 동생 때문에 조금 특별하다.

하지만 동시에 극히 평범하다.

이 글 역시 동생 덕분에 조금은 특별한 가족으로 보일 수 있으나

오늘도 내 옆을 스쳐간 이웃같이 매우 평범한 하루의 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의 일 일 때 '특별'함을 경험하곤 한다.

'발달장애인 가족'이 제주도에 떠난다는 '특별함'을 기대하고 이 글을 읽으신다면,

'우리 집과 다를 바 없네!' 싶은 '평범함'에 실망하실 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글에서 동생이 안 나올 수도 있다.

나는 그냥 나의 경험을 쓸 뿐이다.


가족들 역시

조금 특별해 보일 수 있지만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서른 살이 넘었지만 세 살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생조차.

20241113_125125.jpg 가파도에서 동생, 아빠, 엄마 그리고 이 사진을 찍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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