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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07. 2019

[완벽한 타인] ‘완벽한 타인’은 누구였을까

13화. 2018년 가을, 첫 번째 <완벽한 타인>

그 사건 이전의 시간을 꺼내는 것

온라인 단체방 관련 이슈가 하루하루 쏟아진다. 며칠 전엔 연예인 A가, 어젠 B가, 오늘은 C가 그 단체방 멤버로 공개되고, 돌아가며 그날의 주인공이 된다. 자신의 추악함을 전리품처럼 자랑하고, 타인에게 수치심을 주던 이들은 지금에야 사과하고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미 미디어에 노출된 겉모습과 개인 공간에서의 실체가 다른 걸 봤는데, 이 사과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그들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연예인에 대한 가십, 그들의 스캔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온라인 단체방을 어떻게 생각하고 써왔는가’, ‘그곳에서는 어떤 이야기까지 해도 되는가’, ‘우리네 단톡방은 문제가 없는가’ 등 그 공간을 향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작년에 개봉한 <완벽한 타인>은 이 문제를 먼저 생각했던 영화다. 예고 없이 핸드폰의 모든 내용을 공개하며, 자신의 가장 사적인 공간의 일을 생중계했던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숨기는 비밀 하나쯤은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인물들의 핸드폰엔 불륜, 은밀한 취향 사업적 채무, 성 정체성 등 이 사회의 다양성만큼이나 많은 비밀이 묻혀 있었다. 이 코미디 영화 앞에서 핸드폰의 공개는 웃음보다 공포에 가깝다는 관객 의견도 다수 볼 수 있었다. 이 크고 작은 일탈이 상시로 일어나는 공간에 꾸준히 기록을 남긴다는 건 스스로 기록하는 공포의 역사라 할 만하다.


단체방에 일탈적 자료를 공유하는 이들도 알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일상적 공간에서 이뤄졌다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번 단체방 사례는 그 극단에 있는 사건인데, 한 편으로는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존재하는 모든 단체방이 공개된다면, 우리 중 떳떳한 이는 몇이나 될까. 그리고 사적인 공간에서 공유한 말과 행동은 어디서부터가 범죄가 되는가. <완벽한 타인>이 개봉했을 땐, 그런 비밀 하나는 있을 수 있지 라며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이슈 이후엔 이는 좀 더 큰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작년에 썼던 <완벽한 타인>을 다시 꺼내 보는 기분이 묘했다.



201811월의 기록(사건 반년 전)

영화관을 나서는 통로에서 꺼뒀던 핸드폰을 켰다. 별 의미 없는 몇 개의 메시지, 꼭 꺼둘 때만 오는 몇 통의 전화, 반갑지 않은 학자금 대출금 따위의 소식이 있다. 태수(유해진)가 받았을 은밀한 사진이나, 곤란한 타인으로부터의 연락이 없는 청렴한 녀석이다. 한편으론, 사소한 안부 연락 하나 오지 않는 빈곤한 녀석이다. <완벽한 타인>은 이런 영화다. 관람 후 핸드폰을 꺼내, 나란 인간을 다시 보게 하는 영화. 그리고 몹쓸 기록을 얼른 지우게 하는 영화.


<완벽한 타인>은 전하고 싶은 걸 대사와 자막으로 친절히 알려준다. ‘인간은 다양한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걸 몇 번에 걸쳐 설명한다. 쉽게 이해되고, 덕분에 영화 자체에 새롭게 할 말이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쉽게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많은 대사를 유연하게 소화했을 배우, 그 대사의 흐름에 리듬을 만들었을 이재규 감독 모두, 꽤 많은 걸 해냈다.



세밀한 묘사와 복선

영화엔 자세히 관찰할수록 보이는 디테일한 순간들이 있다. 태수와 수현(염정아)가 석호 집에 왔을 때, 문 앞에 나가 반기는 건 석호다. 그리고 준모(이서진)와 소영(지우)가 왔을 때, 이를 반긴 건 예진(김지수다)이다. 후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급한 사람, 반가운 사람이 먼저 나가 반긴다는 걸 알 수 있다. 별거 아닌 듯, 세밀한 묘사이자 복선이다.


이재규 감독은 이런 관계의 미묘한 양상과 복선을 인물 및 카메라의 시선으로 새겨뒀다.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다시 본다면, 컷들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설정이 보이고, (아, 그래서 저 친구는 그걸 보고 있었구나, 그래서 카메라가 저길 비추고 있었구나 등) 더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다. 단조로운 컷을 피하고자 필요했다 생각한 세트는 컷 마다 다양한 의미를 주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감독의 페르소나, 석호

석호라는 인물도 흥미롭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소년들은 그들이 있는 ‘영랑호’가 바다인지 강인지를 두고 싸운다. 바다와 강의 경계. 바다도 강도 아니고, 바다이면서 강이기도 한곳. 그 다면적 속성을 가진 공간은 하나로 정의하기 힘든 인간의 얼굴과 겹친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공간은 <완벽한 타인>이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와 메시지도 함축하고 있다. 이런 바다와 강의 경계를 석호라 부르고, 조진웅이 맡은 인물의 이름도 석호였다.


석호는 이름처럼 인간의 다면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현명하게도 핸드폰 게임을 거절했고, 마지막엔 인간은 비밀이 많은 존재라 말하며 영화의 주제도 전달한다. <완벽한 타인> 속 이재규 감독의 페르소나를 석호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석호는 모두에게 말해봤자 좋을 게 없는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완벽한 비밀이 완벽한, 원만한 관계를 보장한다는 것도 안다.


혹은, 석호는 그가 염려했거나, 의심했던 비밀이 공개되어 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앞섰을 수도 있다. 그래도 윤리적으로 비교적 떳떳한 그가 이 게임을 거부했다는 건 흥미롭다. 불륜인 친구들이 오히려 당당한 아이러니한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완벽한 타인>은 선보다 악이 더 치밀하고, 당당했으며 젠틀했던 사례를 잊지 말라 경고했던 걸까.



완벽한 타인

<완벽한 타인>은 연극적인 영화다. 한정된 공간, 대사 중심의 전개 등 연극의 구성과 닮았다. 하지만, 몇 가지 고민을 하고서 이 영화를 영화적인 영화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완벽한 타인’은 누구일까? 가장 가까운 가족, 그리고 친구가 사실은 완벽히 모르는 타인이었음을 말하고 있기에, 딱히 누군가를 지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그 한 사람을 찾고 싶었고, 기어이 이 수식어가 완벽히 어울리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완벽한 타인>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 이 핸드폰 게임을 완벽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스크린 반대편에 있는 관객이다. 관객은 절대로 들키지 않는 자리에 앉아 그들의 사적인 기록을 훔쳐본다. 아니, 엿듣고 있다. <완벽한 타인> 속 대부분의 비밀은 시각이 아닌, 청각적인 방식으로 전달된다. 생 궁금했던 은밀한 사진은 관객에게 보이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는 그들이 혹은, 빅스비가 대신 읽어준다. 핸드폰 너머의 음성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비밀들이 튀어나오는 걸 듣고 있다.



이런 게임 관전자의 입장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에서 망원경으로 타인의 집을 훔쳐보던 제임스 스튜어트의 위치와 닮았다. 영화가 타인을 훔쳐보는 ‘관음증’적 시선을 가졌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이창>처럼, <완벽한 타인>은 타인의 비밀을 훔쳐 ‘듣는’ 관음증적인 모습을 청각적으로 표현했다.  영화엔 타인의 비밀을 알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인간이 묘사되어 있고, 관객도 그 사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은 위치에 있었다.


이 영화엔 엿들을 수 있는 자의 우월함과 거기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이재규 감독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사로 모든 걸 풀어서 말하고, 떠 먹여주는 연출을 해뒀다. 이는 눈이 아닌, 귀가 가진 비밀을 향한 갈증을 모두 풀어주기 위함으로 읽힌다. 이재규 감독은 청각의 관음증이 두드러지는 연출을 했고, 덕분에 연극적 설정 속에서도 <완벽한 타인>은 굉장히 ‘영화적인 영화’가 되었다.


P.S 다시 2019....
당시엔 영화를 ‘관음증’이라는 요소로 풀었지만, 이 시점에 영화가 개봉했다면 ‘단톡방’ 이슈와 함께 묶인 글이 나왔을 것이다. 온라인 단체방에 관한 고민과 사적인 자리와 뒷담화 등과 함께 ‘다양한 공간’ 속의 우리에 관해 좀 더 깊이 생각하는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혹은, 사적인 대화 속에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반성하는 글이 토해졌을 수도 있다. 뜬금없게도 영화는 사회 혹은, 그 시대와 함께 읽힐 수 있다는 걸 이렇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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