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정혜가 써놓은 메모들에 적힌 날짜들을 기억해 보면, 내가 여자들을 만난 시간들과 교차하는 시점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간을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혜가 누군가를 만나기 시작하는 시점은 내가 서른다섯 살, 정혜가 서른세 살 때쯤이었다. 그때는 우리가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시기였다. 큰 애가 8살이 되면서 학교에 가게 된 해였고 둘째가 종일반에 다니며 유치원 놀이터에서 한참 뛰어놀 때였다.
정혜는 아이들이 유아였을 때부터 아이들을 동네 할머니에게 맡기고 병원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억척으로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고, 당시 나도 대학원 연구실에서 온종일 참고서적을 쌓아놓고 논문을 쓰던 시절이었다. 서로에게 이렇다 할 짬이 없었다. 그런 시기에 어떻게 남자를 만났을까, 하기야 나 역시 그런 틈에 여자를 만났던 걸 떠올려 보면, 남녀의 문제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없음에 달린 것이 아니었다. 기회는 스스로 찾아왔고, 또 스스로 만들기도 했다.
나는 내 지난 여자들을 더듬어, 유부남의 자격으로 만난 첫 여자를 떠올렸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오로지 잠자리만을 원했던 그 여자, 바닷가에 인접한 공단의 생산업체에서 중국과 무역을 하면서 필요했던 중국어 통역을 했던 T였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즈음 누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혜의 낙서에 이런 얘기가 써 있었다.
'그와의 밤은 충분했다. 이제 그를 사랑해야 할 일만 남았는데... 남편을 어떡해야 할지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내가 그를 버릴 수 있을까...'
마지막 문장의 그가 누구인지 불분명한 문장이었다. 나를 버린다는 것인지, 관계한 그 누군가를 버려야 한다는 것인지, 그와의 밤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면, 버려야 할 존재는 분명 나였다. 하지만 충분하다는 말의 뜻이 이너프(enough)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미 '그'와 충분히 관계를 가졌으므로 정리해야 할 대상이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정리한 후에 다른 남자가 생겼는지, 다른 남자가 생겨서 그가 정리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SK 이니셜의 남자가 다음으로 등장했다. 그와의 관계는 오래된 친구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SK가 찾아왔다. 결혼 후에 더 내게 집착이 심해진 것 같다. 결혼을 앞세워 결별했지만, 뜻대로 안 되고 있다. 그를 끊어내지 못하면 내 생활은 무너지고 만다. 나는 나를 지켜야만 한다.'
'아이들 방문을 닫았다. SK의 요구는 점점 선을 넘지만... 난...'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노트는 거의 정혜의 비망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먼지 앉은 낡은 상자 속에 몇 개의 펜이 든 나무필통과 작은 앨범, 거기에 끼워진 아이들의 어렸을 적 사진, 정혜와 나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몇 권의 노트들이었다. 띄엄띄엄, 생각날 때마다 끄적거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정혜의 고민과 삶의 그늘이 만든 그림자 같은 것들로 남은 것들이었다. 급히 서둘러 미국으로 떠났으므로,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들을 모아 놓은 듯했다.
어찌 보면 신혼시절이었다. 그때부터 집을 들락거린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누굴까, 나와 결혼 전부터 만났던 남자인 것은 분명했으나, 딱히 짚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결혼 후에도 계속 찾아왔다면 나와 면식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었고 어쩌면 집에서 태연히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을 한 잔 했을 수도 있는 사이일 수 있었다. 거부할 수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친한 사이, 정혜는 그 남자를 끊어내지 못했다. 집들이, 아이의 돌, 정혜와 나의 생일, 지금까지 있었던 가족행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집에 왔던 얼굴들을 끄집어냈다. 그중 정혜 쪽의 남자들을 기억에 올려 떠오르는 장면들을 붙잡고 한참을 주시했다. 그렇게 상자 속을 쳐다보며 한참을 있었지만 역시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무딘 탓이었다.
상자 속에는 정혜가 버리고 간 2G 폰, 3G폰이 하나씩 있었다. 나는 이 핸드폰들을 손에 들고, 제발 이 물건들이 정혜의 판도라가 아니길 바라면서 상자를 덮어야 했다. 이미 여러 메모들을 통해 정혜가 만난 남자는, 못해도 5명이 물망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시간적인 순서로 그들을 소환해 보면 이런 사람들이었다. 결혼 전 SK라는 남자, 그는 혼전관계를 혼후에도 이어나갔고, 집에도 찾아와서 정기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데도 둘은 안방에서 정사를 벌였다. 내 침대에서 둘이 뒹굴었다는 것, 이런 분노는 도대체 누구에게 분출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감정 상태에 휩싸였다. 그들이 벌이는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고, 나는 가차 없이 그들을 이야기 속에 집어넣었다. 이상한 것은 그들의 성행위를 그려나갈수록 알 수 없는 쾌감에 들뜨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건 분노의 감정을 해소하는, 일종의 소박한 분노표출을 통해 느끼는 쾌감 같은 것으로 나를 자극하기도 했다.
정혜는 SK와 병원의 누군가와 동시에 더블데이트를 즐겼을 가능성이 컸다. 병원관계자를 카풀을 했던 전문의로 병원을 뜰 때까지 고작 1년가량 만났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 무슨, 시에서 운영하는 보훈 병원 같은 델 다닐 때였다. 의료원이었을 거다.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간 직장이라고 내게 자랑을 얼마나 했었는지, 나도 은근히 그런 정혜가 이뻐 보였다. 도시의 외곽에 있었던 병원은 늘 출퇴근이 문제였다. 병원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은 인적이 드물었고, 새벽 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늘 무서움에 인기척을 겁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가끔 차를 얻어 타고 출근할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정혜가 차를 끓여 아침마다 들고나가던 일도 떠올랐다. 그 운전자의 생일도 알뜰히 챙기던 정혜였다. 그래, 그 사람이 의료원을 그만두고 종합병원으로 옮긴다고 회식을 한다고 뜻하지 않게 꼬박 밤을 새우고 들어온 때가 있었다. 근무 시차 때문에 다음근무자와 교대로 회식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럴 때는 시간상 밤을 보내야 할 때가 가끔 있었던 것으로 기억됐다. 그런 식으로 머릿속이 리부팅되는 것처럼 잊었던 기억들이 하나씩 저장장치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관계들이 지속되면서 정혜 역시 대학병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우린 시내로 이사 나왔다. 교통편이 훨씬 수월해졌고, 이 참에 서울로 이사 가도 되겠다는 희망에 들떠 생활에 에너지가 넘쳤던 시기였다. 시간강사 10년 차에 접어들면서, 전임의 자리도 바라볼 시기가 된 때였다. 모교에 자리 잡고 월급도 고정적으로 안정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통역사와 헤어졌다. 그 여자를 3년 정도 만나면서, 나는 불안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을 3년이나 끌고 있었고, 그렇게 3년씩이나 끌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정혜가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 때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한 달을 보내고 오면서 눈치 보지 않고 상대적으로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의 길을 눈치 보지 않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 관계자가 사라지자, 고등학교 동창이 둘이 나타났다. 정혜는 나가지 않던 동창 모임에 자주 출입했고, 그들을 나에게 소개하며 저녁을 같이 한 적도, 늦게 결혼한 동창 아들의 돌잔치에도 함께 가서 축하해 준 적도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집 앞 호프집까지 찾아와서, 히죽히죽 웃으며 별말 없이 술만 마시고 돌아갔다. 그땐 내가 왜 몰랐을까, 하는 자책과 함께 조금도 정혜라는 여자를 의심해 본 적이 없는 믿음이 주는 안전 펜스 같은 것을 한쪽으로 쳐놓고 살았던 것 같았다. 아예 불편한 어느 한쪽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사람은 살아나가면서 예상 못했던, 그 존재를 몰랐던 문을 만난다. 그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두렵고 놀랍던 이성의 문이 열렸던 것처럼, 성인이 되어서도 알지 못했던 문들을 계속 열고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실재하는 삶이다.
간혹 선택의 문 앞에 서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열지 않아도 될 문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열린다. 결혼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외도의 문이 있다. 결혼 전에는 기회의 문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죽음의 문이 될 수도 있는 가혹한 문이었다. 열지 않아도 되는 이 문은 누구나 한 번쯤은 열어본다. 열었다가 다시 닫아두더라도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문 안으로 아예 들어가 버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분명 열었다가 다시 닫은 줄 았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미 나는 외도의 문을 열고 한 복판으로 들어와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문안에 들어와 길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정혜 역시 나보다 훨씬 빠르게 그 문을 열었고, 그 문 안에 들어와 어딘가로, 그녀가 가야 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내가 통역사와의 관계를 끊어내자, 정혜는 동창과의 관계를 이어나갔고, 그것도 잠시, 그런 둘 사이의 연관성과 관계 없이 내게 여자들이 나타났다. 방이 달린 조금 큰 사무실을 구했을 때, 자고 가는 여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무실을 얻어준 부동산 실장이 그랬고, 시내에 가끔 가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들어오던 칵테일 바의 코너 사장 역시 요일을 정한 것처럼 정확히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요일과 시간, 사생활을 공유하지 않는 직업 정신 같은 것들이었다. 여자들은 나와 함께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그래서 아무하고도 공유해서는 안 되는 비밀작전을 하는 것처럼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녀갔다. 가슴을 졸이는 그런 긴장들은 여자들의 불안을 조성했고, 그런 강박된 긴장은 안도의 공간이 확보되는 순간 밖으로 터져 나왔다. 긴장의 정도는 욕구의 무게와 일치했고, 그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구속을 풀어헤쳤다. 그 순간 내밀하고 사적인 것들은 둘이 함께 하는 공적인 교합으로 질적변화를 가져왔다.
정해진 요일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여자들 사이로 혜연이 문화센터에 나타났고, 식사를 했고, 커피를 마셨고, 술을 한 잔 하는 과정을 겪으며 우린 함께 가야 할 곳이 어디라는 걸 너무 잘 아는 사람들처럼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철호 씨, 나 말고 다른 여자들 있어?"
"왜, 물어요?"
"응 여기 칫솔이 여러 개 있잖아."
나는 알코올로 풀어진 머릿속을 진정시키느라 잠시 혜연 앞에서 망설였다.
"누구라도 안 좋아할 거야. 내 공간에서 내 물건을, 나 모르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쓰고 있다고 생각해 봐. 상식 아냐? 매너라고."
혜연은 특별한 여자였다. 내게 방향을 잡아줬고, 분별력을 보여주었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나애게 그었고, 당당하게 요구할 자기의 선 역시 분명히 그었다.
"모든 관계는 선이야, 그래야 서로가 편하거든. 상대가 원치 않는 것을 안 하는 게 예의이듯이 예의를 존중하는 게 우리가 지켜야 할 일종의 상도 같은 게 아닐까? 나는 우리 관계가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 당신도 할 도리를 다 하고 당신의 선을 내게 요구하란 말이야."
그 말을 남기고, 혜연은 이주간 연락을 끊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여자들을 정리할 시간을 준 것이었다. 그렇게 사무실을 드나들던 여자들이 모두 정리됐고,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혜연은 다른 여자들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철저히 상대를 믿는 것이 상대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장 그녀와 함께 남도를 돌며 한 주를 보냈다.
혼자 지내야 하는 기러기 생활에 안정이 찾아왔다. 혜연이 내게 준 평화였다. 일에 집중했고, 정시에 퇴근해서 혜연이 차려준 밥을 함께 먹었다. 그녀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녀가 즐거워할 일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화답하듯 몸을 열었고, 나는 그녀를 안는 데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그녀 속으로 들어간 만큼 나는 점점 그녀의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 사이의 친밀함과는 별개로 아무도 모를 비밀스러운 행위를 한다는 동류의 공유와 소통의 쾌감을 서로에게 주었다.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생활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살아갈 에너지가 된다는 걸,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그들의 몸이 강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눈빛 하나와 손 끝 한 번이 만들어내는 생의 존재감, 그것이 그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각자의 배우자에게 자신을 숨기고, 모른 척, 서로의 파트너와 몸을 섞었고, 더 이상 배우자에게서 찾을 수 없는 매력과 즐거움을 타인에게서 찾는 행위, 그것을 불륜이라고 부르든, 외도라고 부르든, 이름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들은 한껏 서로를 팀닉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를 찾았다. 그걸 뭐라고 이름 붙일 단어가 있었다면, '사랑' 그 외는 다른 어떤 적합한 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욕구, 만족, 쾌락의 같은 의미의 다른 이름이었으니까.
이제 '그들'이 '우리'가 되는 시점이 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내 정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정혜와는 우리만의 섹스가 되지 못 했던 것, 그것이 혜연과 정혜를 통해 느끼는 두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였다. 누구를 탓하거나, 누구의 잘못으로 인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성향, 취향, 개성, 타고난 선천적 외모와 성격이 주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그런 다름이었다.
발견된 문장들 속에 p교수의 존재가 있었다. 보건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과정을 다닐 때였다. 잦은 실습으로 원생들과의 모임이 잦았고, 그 모임을 주도하는 교수가 있었던 걸로 기억했다.
'그를 선택하면, 남편과는 어떻게 되는 걸까?'
'노래방에서 사람들 몰래 터치가 오가는 걸 사람들은 알까? 진짜 재밌었어...'
'p교수 은근히 은밀해. 비밀이 많은 사람.'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는 건 종일 그 사람이 눈에 밟힌다는 거야. 종일 그가 보고 싶은 걸...'
p교수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아마도 그가 결혼을 하자고 제안을 했던 듯 보였다. 총각이거나 돌싱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유부남 교수가 이혼을 전제로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학과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몇 마디 물어보면 누가 싱글로 살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교수중 한명일 것이다. 대학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p이니셜 교수를 검색해 보면 표적은 분명하게 좁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알려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마지막으로 정혜는 미국으로 떠났다. 어떤 강박이 작용했고, 불안을 떨칠 수단으로 선택한 미국행, 정혜는 미국에서도 역시 남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어딜 가든, 남자와 여자는 뒤섞여 살기 마련이라고 한번 접어두고, 철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남자는, 전화 속의 그 남자 하나였다. 철호는 자신이 주인 없는 집을 침범당한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샤이아르가 된 기분이었다. 정혜는 부정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왕의 손아귀로부터 멀리 달아나야하는 왕비가 되어 있었다.
그게 어떤 캐릭터이건, 배신의 밑바닥에는 시기와 질투가 또아리를 틀었다.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더러운 걸레같은 덩어리가 철호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떤 떄는 비애로, 어떤 때는 북수심으로, 분노로 치솟는 감정으로 나타났다. 샤이아리가 3년간 여자들의 목을 벤 것 처럼, 그에게도 여자들의 목을 날려버릴 정도의 원망과 분노가 들끓었다. 그런 심정으로 혜원의 집에 연거푸 전화를 해댔던 거였다.
내 가정이 파탄이 난 것처럼 너희들의 가정 또한 무사하지 못하리라, 이런 식의 복수심이 행동으로 옮겨진 첫번째 대상이었다. 그 복수심 속에는 자신을 던져버리는 독한 마음까지 내재했다. 나를 던져 너를 파괴할 것이라는 생각,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생각을 철호는 실천에 옮긴 첫 사례였고, 그 결과는 오히려 자신이 깔끔하게 정리당하는 것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허망한 결말이었다.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에 철호는 좌절을 느끼고 무대에서 내려와야했다.
스스로가 생산한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결별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정혜가 가지고 있었다고 철호는 확신했다. 정혜가 철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상황을 믿게 만드는 증거가 되었다.
"그런 당신을 믿지 못하겠어. 당신이 나를 용서할 것 같아? 두고두고 내가 한 일은 당신에게 죄가 될 거고, 난 당신 앞에서 죄인으로 남은 여생을 살게 될거야."
정혜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차분하고 똑 떨어지는 정제된 목소리였다. 아무리 긁어도 상채기 나지 않을 투명하고 단단한 수정구슬 같은 정혜를 보는 듯했다.
이런 것들이 정혜가 한국에 있을 때, 헤쳐나가야 했던 저간의 생활이었다. 복잡한 생활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미국으로 떠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빠르고 정확한 불가역적 손절, 그것에 대한 믿음의 방식으로 선택한 미국행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리가 가능했다. 동시에 나 또한 나름의 고통 속에 쌓여 있었다. 차라리 모든 걸 털어버리고 외도의 부정으로부터 스스로 떳떳한 존재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 쪽 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정혜의 생활을 상상하며, 메모와 낙서를 근거로 개연성 있는 설정과 그에 부합하는 구체성을 띠는 묘사로 가득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서로의 파트너와 감정, 들끓는 욕망의 세계를 한껏 그려냈고 마치 내가 본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서술자인 내가, 나를 흥분시켰다. 일주일 만에 30회를 써내려갔다. 빠른 속도로 연재는 이어졌고, 한 회의 조회수가 4,000회를 넘어갔다. 처음에 계약을 주선했던 플랫폼 담당자의 주의가 사라졌다. 성행위의 직접적인 묘사가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수위를 조금 낮추고 직접적인 성행위에 사용되는 어휘선택에 주의를 기울여달라는 소리가 쑥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작가님, 제가 작가님을 뵙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담당 MD가 보내온 개인 카톡 메시지를 받은 건, J가 두 명의 동창과 조우하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을 구상하고 35회 연재를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