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학의 정석

by 별사탕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로 스쳐지나간 행적들이 시간 안쪽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숙제같은 소망으로 낡은 책의 한 페이지 속으로 숨었다.

기억의 이쪽 지평을 너머, 망각의 저쪽으로 눈을 돌리면 컴컴한 동굴 속처럼 축축한 냉기가 몸 속으로 스며든다. 입구에는 봉인된 시간이 넘어간 페이지처럼 켜켜이 싸여있다. 조심스럽게 한 꺼풀씩 봉인을 풀고 그것들을 꺼내볼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은퇴하면 뭘 할까 생각 중이다.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잘했다. 안 풀리는 문제를 풀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풀이를 해주곤 했고, 문제집을 들고 와 풀어달라는 애들도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잘 했다기보다, 푸는 걸 좋아한 것이 맞을 듯하다. 풀렸을 때의 그 희열을 즐거워했으니까, 생각해보면 꽤 순수한 즐거움을 누린 듯하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첫 시험을 봤다. 60점이라고 날려 쓴 점수가 표시된 시험지를 받아 들고 당황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알에 뻘건 핏발이 선 수학선생님이 시험점수가 엉망이라고 교탁을 두드리며 화를 내고 있는 교실이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대학시험이 끝나면 서울대학을 100명씩 보냈다고 신문 1면 톱을 장식하던 학교 중 하나였다. 그래서 당시 소문에 의하면 본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본 동경대학의 문제를 베껴서 시험문제를 낸다고 했으니 시험문제의 수준은 말해 무엇하겠나 싶다. 어떤 참고서에도 없는 생판 보도 못한 주관식 문제만 10문제였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야단 소리 속에서 나는 숙였던 고개를 슬그머니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처럼 주눅 든 친구들이 역시 고개를 숙인 채 시험지에 고개를 박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게 눈에 띄었다. 세상에! 주변에 앉은 모든 애들의 시험지에 빨간색 색연필로 죄다 빵점이 채점되어 있는가 하면, 그나마 받은 점수라곤 10점 20점이 다였다. 내 점수가 밑바닥 점수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고, 더구나 60점은 전교에서 드물 정도의 점수였던 것이다.

잠시 우쭐하는 마음이 생겼고, 2학기에 접어들자 문제가 생겼다. 대학시험제도가 바뀐다는 것. 예비고사 본고사 체제에서 학력고사 체제로 바뀐 것이다. 푸는 과정이 즐거웠던 내게는 치명적이었다. 정답이 똑 떨어져야 하는 객관식 체질이 아니었다.

대입제도가 바뀌었고, 교내 시험도 찍기 시험으로 바뀌었다.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그 책에서 가장 자신 없는 파트가 확률, 무한급수, 수열 등이 나오는 마지막 단원이었다. 어림짐작, 가늠할 수 없는 분야였다. 은행이자를 복리로 했을 때 10년 후에 원금이나 이자를 계산한다든가, 어떤 물건이 일정비율로 계속 늘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몇 시간 후, 며칠 후 이 물건의 총합의 개수를 물어본다든가 하는 수열, 이런 문제는 가늠되지 않는 소위 말해 해골을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들이었다.


학력고사를 봤다. 수학은 25문제에 개당 2점씩 총 50점이 만점이었다. 시험지를 받고 1번을 풀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2번으로 넘어가면서 이 정도면 확률문제만 빼고 다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답을 내야 하는 마지막 정리 끝에 답이 안 나왔다. 먼 길을 돌아 집에 다 와서 문이 잠겼는데 비번이 생각이 안나는 경우! 1번 넘기고, 2번 넘기고, 3번 넘기고... 하다 보니 어느새 10번을 넘기고 있었다. 점점 블랙홀 같은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평점심을 잃었다. 시간은 벌써 20분이 지나고 있었다. 이걸 처음부터 다시 푼다고 했을 때 또 20분이 걸릴 것이고, 나는 아직 한 문제도 못 푼 상태였다. 그렇게 40분이 지나면 주어진 시험시간 50분에 망했다는 생각이 혈관으로 스며들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처음부터 다시 풀었다. 딱 열 문제를 풀었다. 시계를 보니 5분 남았다. 망했다. 그날 저녁 집에서 각 방송국마다 일제히 송출되고 있는 해설방송을 보면서 답을 맞혀보니 정말로 딱 10개를 맞혔다. 10개 풀고 딱 10개 맞은 것이다. 망했다. 우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나 자신에 대한 감정 내성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대학에 떨어지고 종로학원에 갔다. 재수학원이 시험을 본다는 사실에 놀랐다. 돈 내고 내가 다니겠다는데 시험을 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봤다. 시험지를 받아 들고 풀기 시작하는데, 나 자신에게 더 놀랐다. 공식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충격적이었다. 아, 난 이때부터 기억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막 스무 살이었던 때, 뭔가가 조금씩 머릿속에서 새나가기 시작한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더 열심히 기억하며 살았을 텐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몸으로 익히는 것이 애써 더 중요하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것이 습병이 되어 지금도 책이름, 저자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고, 뭔가를 이야기할 때 단 한 줄로 말할 수 있는 지적 여유와 유희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수학을 20점 받는 바람에, 나는 인생이 망한 사람이다. 대학을 못 갔고, 재수도 실패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학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나마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 욕구불만은 평생을 괴롭히며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로 작용했다. 그래서 펼쳐진 내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수학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수학을 탓하지는 않겠다. 여전히 수학이 좋다. 풀어내지 못한 확률과 수열이 있지 않았던가.

어느 한적한 골목 끝을 비추는 버려진 소파에 파묻혀 한 문제 한 문제의 수학문제를 풀고 싶다. 따뜻한 햇살 아래 졸고 있는 고양이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차가운 골방 한 구석에 피워놓은 화목난로 곁에 졸듯이 사각대는 연필소리를 내며 한여름밤도 좋고, 한겨울 밤도 좋을 그런 날들을 수학과 함께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냥 무작정, 이것 다음에 오는 그 다음의 문제를 풀어내며 수학이 주는 시간과 함께 그렇게 나는, 무념한 세계로 흘러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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