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열일곱 번째 편지
선물님! 살아계셨군요?
먼저 살아있다는 소식을 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오랜만에 받아보는 편지네요.
많이 아팠다니 제 마음도 아프네요. 그 아픔이 단지 증상이 아니라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선물님이라면 다 관두고 일단 쉴 텐데.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세게 흔들어요. 그건 선물님의 처지를 잘 모르고 하는 생각일 테니까요. 어차피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누군가의 삶이 좋은지 나쁜지 타인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그만큼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토록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니 제 마음이 그러네요.
너무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뭐라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방금 이 문장을 앞으로도 여러 번 쓰게 되는 건 아닐까, 시즌2와 같은 이번 편지는 얼마나 잘 지속될까, 하는 염려도 일어나요. 무슨 말을 하면 제 마음이 잘 전달될까요? 어떻게 하면 이번 편지를 계기로 끝까지 쉬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까요? 결국 이 편지를 모아서 책을 내자는 게 우리의 속셈 아닙니까. 부디 이번에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길!
선물님이 자기 자신을 파울로 코엘료와 비교하신 대목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그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와 자기를 비교하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다니! 농담이고 이미 선물님이 파울로 코엘료 소설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것 같아서 흐뭇해졌답니다. 길을 잃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어떻게든 자기 길을 놓지 않고 끝까지 가는 주인공들. 그 모습이 바로 선물님의 모습이지요. ‘운탄고도 1330’를 쓰기 위해 선물님 스스로 그 길을 걷고 그 길 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겠지요. 그리고 자기 삶을 녹여내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걸 테고요. 그렇다면 그게 바로 ‘순례자’이자 ‘연금술사’ 아닌가요? 그게 바로 꿈꾸던 바를 이루고 있는 모습 아닌가요? 선물님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언젠가 이루어 질 머나먼 것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죠? 그게 거만하고 거창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결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없을 거예요. 진정한 연금술은 타인을 향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니까요. 세상의 연금술이 실패로 남은 것은 내면이 아니라 외부를 바꾸려 했기 때문일 거예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 것은 그 이야기가 우리 내면을 곧장 가리켜 잊고 살던 나의 무언가를 진하게 감각하도록 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내면에 있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고 내면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우리는 진실해지지요. 그 진실함이 나를 선한 존재로 보이게 할 거예요.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 하지 않고 그저 선한 존재가 될 때, 즉 세상과 타인의 요구에 충실하려 하지 않고 나에게 진실로 진실로 솔직할 때, 선한 척 하지 않고 내 욕구에 충실할 때, 우리는 애쓰지 않고도 세상 앞에 선하게 존재할 거예요.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잖아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 존재의 이유를 따질 수 없는 거지요. 삶이 있고서야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 삶의 목적이나 의미가 있기에 삶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냥 나를 적당히 만족시키며 살 줄 아는 사람이 정말 행복하고 선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선한 영향력을 주려 하지 않아도 늘 주고 있어요. 존재하는 세상 만물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선할 수밖에 없듯이. 선한 영향력이 발휘되어야 할 최우선의 대상은 세상이나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에요. 모든 것이 나에게서 출발해서 나에게로 돌아와요. 그게 순례의 길이지요. 순례자는 외부로 떠나지 않아요. 그건 출발하지도 않은 순례의 길. 진정 내면을 향해 떠날 때 그는 비로소 순례자라고 불립니다. 아마도 선물님의 아픔과 고통은 그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세상 사람에 대해서는 그만 신경 끄라고, 세상에 기여하려는 마음도 잠시 접어두라고, 나의 영혼과 이야기하자고. 그렇게 마음이 떠드는 걸 외면해서 아픈 게 아닌지요? 아뿔싸. 또 순식간에 상담사 병이 도졌네요. 미안해요. 선물님이 지난 편지에 묵묵부답으로 농땡이 핀 기간을 생각해 이 정도는 웃어넘겨 주세요. (반성과 함께 앞으로 편지는 꼬박꼬박 쓰겠다는 결심은 하시고!)
해외 영사관과 한국문화원에 메일을 보낸다는 이야기에 우리가 같은 선 위를 함께 지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정도로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저도 전보다 바깥으로 나가려 하고 있고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만나려 하고 있어요. 극 내향인 제 성격을 생각하면 큰 시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안 하던 짓을 하며 살자! 올해는 이런 모토로 살려 한답니다. 얼마 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미 마흔도 넘었다. 언제까지 눈치나 보며 살 텐가. 세상과 남의 기준에 맞추다가 내 인생은 언제 살아보나.’ 선물 님, 함께 해요. 스무 살의 패기로 골방에 박혀 쉰내 나게 살아온 날들 패대기치고 사십 대는 새롭게 살아보아요. 얼마 전 일흔 넘은 분이 마흔이 넘었다는 제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마흔이라. 참 좋은 때네요. 뭔가 시도하게 참 좋은 때네요.”
묘한 일치로 저도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전에는 독학했었는데 이번에는 기초부터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에 아예 과외를 받고 있어요. 중국어 선생님이 수업 시작할 때마다 따라하라고 읊어주는 문장이 있어요.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아는 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는 것만 못하다. 우리도 각자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마음껏 즐겨 보아요. 삶에 대해 알려하지 말고 다만 즐겨 보아요. 알려 하면 궁색해지고 즐기면 만사형통하나니.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백만 년 만에 토익도 보았네요. 파릇파릇한 이십대 사이에서 반백이 된 머리털로 수험장에 들어 앉아있는 건 어떤 금기를 깨는 느낌이었어요.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오랜만에 필기시험이라는 걸 본 터라 점수는 많이 낮아졌을 거 같아요. 십여 년 전에는 시험 마감 10분 전에 다 풀고 검토를 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 종칠 때까지 문제를 풀다가 답을 찍어 버렸어요. 아 그래서 어른들이 예전에 젊었을 때 공부하라고 했던 거 같아요.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않는 느낌에 반성했답니다. 내가 노자의 무위자연설을 앞세워 머리에 녹이 슬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다시 정신을 벼리며 살자고 생각이 들었어요. 시험보고 나서 바로 도서관에 가서 냉큼 토익, 텝스, 영어 관련 책들을 빌렸어요. 그때부터 요새는 ‘영어 공부’라는 걸 하고 있어요.
할 일을 제쳐두고 편지를 먼저 썼다고 하셨죠? 저도 실은 텝스 교재를 옆으로 치워 두고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가지런히 쌓인 책들 위에 비뚤게 던져진 텝스 교재가 가슴을 찌르며 말을 건네고 있어요. ‘글쟁이 흉내 그만 내고 공부 좀 하지?’
편지를 쓸 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선물님에게 하는 이야기가 결국 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아요. ‘외부가 아니라 내면을 향해 있는가, 정말 내 욕구에 충실한가, 진정 나의 길을 가고 있는가.’ 답 없는 물음이지만 이 물음이 살아있으니 내 삶도 살아있는 거겠지요. 어폐가 있지만 ‘죽은 삶’은 질문할 수도 없는 삶이겠지요. 살아있는 사람만 고민하고 질문하고 아파하고 갈지자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잖아요. 우리가 편지를 쓰고 주고받음도 살아있음이니, 우리 함께 어쨌든 살아가고 있음에 건배를! 사실 술은 잘 못하니, 봄꽃이 피는 이 계절에 선물님과 그윽한 차 한 잔하며 영월 풍경에 빠지고 싶네요.
방금 산통 깨는 카톡이 왔어요. 오늘 낮 12시에 토익 점수가 나온다고 하네요.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 당분간 나의 질문과 공부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그럼 이만.
2024.03.27. 오전 9시 25분. 대전에서 상담사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