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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에 대하여

by 지푸라기



나는


잊고 싶은 기억이 있어.


내 마음속 깊은 곳


아무도 못 보는 장소에 두고


오다가다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꼬깃꼬깃 숨겨놓았던


소름 끼치게 싫은 기억


그 기억이


자의던 타의던


밖으로 끄집어 나와지면


그날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곤 해.




나는


그 소름 끼치는 기억을


잠으로 잊으려 해


그냥 버릇이야


잠은


나의 근심 걱정을


다 잊게 만들어 줄 것만 같거든


그런데


아무리 단잠을 잔들


악몽은, 그 기억은


깨고 나면


늘 그 자리에 있어.


슬프게도 말이야...




그 다음에


내가 그 악몽들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다시 그것들을


원래 장소였던


기억의 구석 틈바구니로


가지고 가서


요령 있게 다시


묻어 버리는 것


늘 해왔던 거라


익숙하지 이제




그리고


처음부터 악몽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최면하고


다시 또 살아가지


나는 성실한 사람이라


내가 가던 길을


꾸준히


계속 걸어야 하거든




난 어른이기에


제대로 살아내야 하기에


내가 가진


상처나 트라우마는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거


그런 거란 거


나도 알아



그런데


멀쩡한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살다가도


꼭꼭 숨겨놨던 그것들이


오늘처럼


나도 모르게 삐져나올 때가 있더라


그럴 때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힘든 감정들을


들킬까 봐


두렵고


그것들이 어떨 때는


나를 갉아먹기에


고통스러워




그거 알지?


나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


내 실수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허점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나를 의지하는 자식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절대로 보일 수 없다는 생각...




그래 맞어~


누구나 갖고 있는 삶의 무게


그 무게가


내가 좀 더 무겁다고


징징댈 수는 없는 거거든




그렇게


나 또


이겨 보려고,


내색 안 하고


아등바등거리면서


하루를 버텨냈다~


잘했지?




언젠가는


오늘같이


고통이


그런 기억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


그런 날이 오겠지?


아니


오늘같이


고통의 기억이


내게 찾아온다고 해도


내가


아무렇지 않은 날이 오겠지?




그렇게 해서


하루를 잘 버텼다고


누가 알아주지는 않아


하지만


수고했다고


나한테


칭찬 한번 해 주려고



수고했다 이 자식아~










아 참...


그리고 나 실은


그것도 알고 있어


나 혼자만의 얘기는 아닐 거라는 것도








당신도


오늘 수고했어~


당신이 가진 힘듦을


잘 이겨내 온 거


꿋꿋하게 매일매일을


살아내고 있는 거


묵묵하게 오늘 하루를


잘 버텨낸 거


아무도 몰라도


오늘만큼은


내가 알아줄게~


그렇게


우리 내년에는


잊을 거는 다 잊어버리고


행복하자


오늘을 이긴 넌


분명히


내일 더 멋질 거야~


그렇게 그렇게


매일매일을 살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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